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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Bankers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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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Mar 29. 2022

Dark Chocolate

소설 The Bankers_강을 스친 바람이


“아빠! 이제 다 왔어? 저기 배가 보여!”

“그래! 내리자.”     



이십 분 남짓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아이는 다 왔냐고 열 번도 더 물었다. 도착하기 직전에 큰 소리를 낼 뻔했지만 겨우 잘 참다. 좋은 날인데 들어가기도 전부터 아이를 울릴 수는 없었다. 아내는 아이들 등에 화환에나 있을법한 긴 축하 리본 달고 갈지 삼일 밤낮으로 고민하더니 안 하겠다고 했다. 개업식인데 최 대표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아이들이 받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벤처 회사의 대표가 된 최 대리는 한강에 있는 어느 유람선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는 여섯 명 정도 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비공개 개업식을 하려고 한다며, 동료인 우리 팀원들도 불러주었다. 외국의 가족 초대 파티가 늘 탐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개업식은 가족 동반 파티로 개최하겠다고 했다.


     

김 전무는 딸과 사위를 데려와서 인사시켜주었다. 지난번에 결혼식을 가족끼리만 진행해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김 전무의 딸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사위는 행사의 사진기사로 재능기부를 해준다고 했다. 김 전무의 기분이 꽤 괜찮아 보였다. 박 이사는 아내인 인사팀 황 대리와 손을 꼭 잡고 왔다. 오랫동안 비밀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손잡고 다니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황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참, 최근에 최 대리 후임으로 팀에 합류한 나 대리도 왔다. 본인이 참석해도 되는 자리인지 고민하던 나 대리에게, 최 대리는 인수인계할 것이 남았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나 대리는 어머니와 함께 왔다.


     

오랜만에 만난 윤 전무는 한눈에 봐도 체중이 많이 줄어 보였다. 투병 생활이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아들이 성공적으로 창업을 했으니, 그리고 어머니를 위한 상품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뿌듯할 터였다. 윤 전무와 김 전무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 대리는 정신과 의사인 친구와 공동 창업을 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그 친구를 다들 한 대표님이라고 부르길래 나도 그렇게 불렀다. 축하받아 마땅한 최 대리 회사의 동료들도 각자의 부모님이나 친구, 자녀와 함께 왔다. 비공개 개업식을 어떻게들 알았는지 배달 기사들이 축하 난과 화분을 속속 가져다주었다.


      




“아빠! 저게 첼로야? 크다!”     



배 한쪽에서 현악삼중주단의 연주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 앞에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던 연주자들은 즉석에서 아기상어가 나오는 동요를 연주해주었다. 다준이가 뒤뚱뒤뚱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고 그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최 대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멋진 공연을 보여준 다준이와 연주자들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함께해주신 여러분들을 위해서도 박수를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참석자들이 모두 함께 최 대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최 대리는 뭔가 달라 보였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이곳에 계신 분들께서 도와주신 ‘다크초콜릿’이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 정도 흘렀습니다. 그동안은 정신없이 일하느라 감사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잘 부탁드립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최 대리의 말이 끝나자 공동대표인 한 대표가 마이크를 받았다. 일반적인 개업식과 달리 참여 희망자들을 위한 ‘마음 바라보기’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음식 자유롭게 즐기 프로그램 참여도 마음껏 하라고 했다. 보드게임 형식의 가벼운 내용이라는 설명이 신선했다. 몇몇 참석자들이 손을 들었고 게임 진행되었다. 나는 옆에서 구경하다가 한 발 뒤로 물러서 아내를 찾았다. 아내는 반대편에서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있었다. 나는 배의 난간 쪽으로 갔다. 강물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여기 계셨네요!”

어떻게 알고 최 대리가 찾아왔다.     



“축하해 최 대표. 고생도 많았고. 앞으로 더 고생하겠지만 하하. 멋지다.”

“아닙니다. 강 부장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강 부장님 말씀처럼 월급 받을 때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네요. 그래도 보람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투자도 받게 되었구요.”

“안 그래도 소식 들었어. 그것도 잘 되었고.”

“참, 지난번에 댁에서 뵈었을 때 여쭤봤던 것 말이에요. 혹시 어떻게 결정하셨을까요?”

“오늘 대답해 주기로 했었지? 나보다는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럼 지금 가서 뵙겠습니다.”

“그래.”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우리 집으로 찾아온 최 대표는 내가 아니라 아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최 대리의 우울증 예방 앱은 아직 초기 단계였으나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멕시코의 한 의료 기업이 적극적이라고 했다. 최 대리는 앱의 활용 방법과 발전 방향에 대해 해당 기업에 설명을 해주고 투자유치를 진행하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갑자기 아내가 생각났다고 했었다. 언젠가 내가 아내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했었다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고 했다.


     

아내는 망설였었다. 일을 그만둔 지 오래되어 예전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고, 아이들도 걱정이라고 했다. 최 대리는 신생 벤처기업의 특성상 자금이 부족하고 현재로서는 단기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부탁해야 하니 개업식 때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했었다. 최 대리가 말한 일자리는 어쩌면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격적으로 뛰어들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아내에게 좋은 기회다. 아내는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잠든 후 한동안 접어 두었던 스페인어 책을 펼쳤다.


     

“하하하하”     



하늘에는 솜사탕 모양의 구름이 떠 있었고 안쪽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대표가 ‘마음 바라보기’ 게임을 꽤 재미있게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슬쩍 들여다보니 윤 전무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최 대리는 본인의 ‘다크초콜릿’ 앱이 우울증 환자들에게 쓰지만 달콤한 초콜릿이 되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정신과의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앱으로 처방받은 약을 게임처럼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환자가 입력한 정보에 따라 음악 추천해서 틀어주고, 환자의 동의가 있다면 위험시에는 환자와 의료진에게 각각 알람이 뜨도록 구축했다는 그 프로그램이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기를 응원했다. 벤처사업가로서 최 대리는 앞으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될 것이었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는 미소 되찾았으니 아마도 ‘다크초콜릿’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갈 것이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최 대리의 후임으로 입사한 나 대리와 외부 일정에 참석하느라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나 대리가 갑자기 물었다.  


   

“부장님, 우리는 을이에요?”

“우리? 우리는 병쯤 되잖아.”

“진짜요? 그래서 최 대리님도 나가신 거예요?”

“하하하. 나 대리도 창업하려고?”

“친구들이 외국계 투자은행은 워라벨이 없다고 하도 겁을 줘서요….”

“창업도 워라벨은 없을걸? 일단 일을 조금 더 배워보는 건 어때?”

“네…. 부장님은 이 일이 적성에 맞으세요?”

“나? 나는 그냥 직장인이야. 대출에 애 둘에. 하루하루 살아. 그런데 있잖아. 은근히 배우는 것도 많아. 나 대리도 한번 해보고 또 얘기하자고.”


     

강변북로에는 차가 많았다. 그날 내가 박 이사에게 물었던 것같은 마음으로 나 대리는 내게 말을 걸었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김 전무는 나 대리 채용 전에 면접을 보고 상당히 만족해했었다. ‘내가 뽑는 첫 여직원인데, 당차고 성실해 보여. 때깔도 좋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잖아’라고 하면서. 박 이사와 나는 도대체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김 전무의 안목이니 나 대리 또한 방황하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어느 날 아내는 일주일 동안 멕시코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며 땅이 꺼지도록 걱정을 했다. ‘한 여자가 일하기 위해 다른 여자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 현실이 속상하다면서도 별다른 수가 없다며 장모님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그런데 장모님께서는 그 전화가 반가우셨던지, 다 큰 장인어른과 처남, 처제는 알아서 잘 지낼 것이라고 하시며 아내의 출국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일찍 상경하셨다. 아내는 각종 목록을 길게도 적어서 장모님에게 인수인계했고, 장모님께서 대충 훑은 후 쿨하게 주머니 속으로 쑤셔 넣는 장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아내가 처음 자리를 비운 동안 아이들은 할머니 품에서 사탕과 초콜릿을 마음껏 먹고 텔레비전을 실컷 보며 행복해했다. 장모님 ‘자가 성격이 모나서 부탁할 줄도 모르고 좀 내려놓을 줄도 모르고 지 혼자 아등바등 산다. 왜 저 카나 모른다. 강 서방이 고생이 많네’라고 말씀하시며 아내 흉을 보셨다. 나는 ‘아마도 장인어른 닮은 것 같지요?’라며 함께 농담할 정도의 사위는 되어있었다.


    




오늘도 나는 광화문 어느 사무실의 23층에내려 옷깃이 스치는 소리조차 모두 삼켜버리는 것 같은 검붉은 카펫이 깔린, 어둡고 긴 복도를 부지런히 걸었다. 김 전무가 정성껏 꽂아둔 화병 앞에서 꽃향기를 맡고 정수기에서 물을 한잔 받아 든 후 유리문을 열고 내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일정을 확인했다. 제안서 작성, 투자자 미팅 준비, 로펌 연락, 해외 거래소 상장 확인, ESG 심사 자료 준비…. 컨퍼런스콜은 네 개고 다행히 외부 일정은 없는 날이다. 매일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비슷한 일상. 다행히 좋은 동료들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이만하면 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나 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창밖에 보이는 오늘 하늘도 새파랗다.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사진은 Pexels에서 검색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아직 마지막 회는 아니랍니다.

찾아주시고, 소중한 흔적도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잘 낫고 있다가 다시 교대로 고열이 나곤 합니다. 적응의 3월은 역시 쉽지 않습니다. 아직 한 분 한 분 브런치에 찾아뵙지도 못하고 댓글도 못 드리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곧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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