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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Bankers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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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Apr 01. 2022

인터뷰

소설 The Bankers_희극과 비극


‘정말 알 수 없는 양반이라니까.’     



박 이사는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햇살에 눈이 시렸다. 원래 밖에 나오면 이렇게 눈이 시렸나. 낮에 햇빛을 직접 보는 일이 드물다 보니 알 수가 없었다. 노안이 온 것일까…. 어쨌든 휴대폰을 켜고 전무가 지도에 찍어준 위치를 확인했다. 여의도공원 비행기 근처의 벤치라고 했다. 전무는 그곳에서 새로 뽑을 부장 면접을 보겠다고 했다. 멀쩡한 사무실과 수많은 카페를 두고 왜 대낮에 여의도공원 한복판에서 면접을 보겠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 전무는 IFC에서 일정이 끝나는 대로 나올 것이라고 했었다.


     

“어! 박 이사!”     



비행기가 눈에 들어올 때 즈음, 김 전무도 나타났다. 김 전무와 박 이사는 서로 먼발치에서도 알아차릴 만큼 함께 일한 세월이 꽤 되었다. 김 전무는 오늘도 활력이 넘쳤다. 김 전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박 이사는 뛰어갔다.


      

“전무님, 일찍 끝나셨나 봅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그래. 좀 알아봤어? 어떻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이력서를 살펴보던 김 전무는 그가 내 고등학교 후배라고 하면서, 혹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겠냐고 했다. 멀리 있는 듯해도 한 다리 반 만 건너면 여차여차 다 알게 되는 좁은 세상 아닌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네. 이력서에 쓰여 있는 것만큼 똘똘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그래? 비범한 캐릭터야?”

“대학 수석 졸업에 조기 졸업도 맞는 것 같구요. 일도 꽤 잘하는 모양입니다. 나름 유명하더라구요.”

“성격은 어떻대?”

“별말 없는 것으로 봐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흠…. 도대체 왜 홍콩에서 들어오려고 할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어린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애들 키우면 오히려 외국에 남으려고들 하는데 말이야. 저기 앉자.”     



박 이사는 김 전무의 구두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하다고 생각했다. 나무 그늘에 앉으니 사무실 공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참새 대여섯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산책하는 어른들과 킥보드와 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전무님, 공원에 나오니 사람들의 일상이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거 알지?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잖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각자의 삶은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 거라고.”

“하하하. 생각해보니 제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저기 노부부 봐. 서로 건강을 챙겨주는 다정한 삶처럼 보이지? 그런데 누가 알겠어. 자식이 속을 썩이고 있을지. 아니면 저 여사님은 옆에 계신 부군께서 은퇴 후에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닌다고, 운동할 때조차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며 속으로 짜증 내고 있을지 말이야.”

“전무님, 소설가 같으십니다. 하하하. 저희 부모님 모습 같네요.”

“박 이사가 칭찬해주니 재미있는데? 하나 더 해 보자고. 저기 유모차 밀고 가는 엄마 보이지? 아기는 얌전히 유모차에 타고 있고 엄마는 여유로워 보여. 아름다운 모자지간이지. 그런데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 마음은 수십 번도 더 바뀌었을 거야. 산책하러 갈지 말지 말이야. 아기 데리고 외출하는 게 얼마나 전쟁이라고. 차라리 집에 있는 게 훨씬 편한데 굳이 나온 이유는, 말도 안 통하는 아기와 집에만 계속 있으니 그것도 너무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지.”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전무님.”  


   

김 전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박 이사도 사람들을 조금 더 관심 있게 쳐다보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박 이사나 내 인생도 뭐 그런 거지. 멋있어 보일 수도 있어.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자 짊어진 무게가 있고.”

“전무님도요? 저는 전무님께선 정말 걱정 없으신 줄 알았어요.”

“하하하. 그런 인생이 어딨어. 내 눈에도 박 이사가 잘 나가는 멋진 뱅커로 보인다.”

“아이코 그렇습니까. 요즘 고민 많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 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그렇다고 신나게 노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잔소리도 많이 하시구요. 저도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박 이사, 그거 알아?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좋은데, 어렵다? 박 이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은 뭐야?”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아내와 지지고 볶으며 사는, 뭐 그런 삶이요.”

“그거 엄청 어려운 거 알지? 하하하. 어! 저기 오는 것 같다. 박 이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사는 비범한 캐릭터. 우리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한번 들여다보자고.”


     

저쪽에서 한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초록빛 잔디밭을 지나고 햇살 가득한 나무 사이를 스치는 그 길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 이사는 문득 김 전무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왜 좋으면서도 어려울까. 평범한 듯 비범한 저 후배는 도대체 어떻게 해 내고 있는 것일까.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이 일찍 끝나서 먼저 와 있었어요. 여기 앉아.”     



인사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박 이사는 생각했다.

일로 만난 사이, 일이나 잘하면 되지 뭐.

연봉과 직급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는 그냥 Banker니까.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저희는... 결국 모두 코로나에 걸렸답니다 T_T 일상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랍니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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