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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Jul 05. 2023

지금 못하면 평생 못 해요

일 년 살기를 떠나게 된 이유



내 인생에서 가장 용감했던 때는 언제일까


서른아홉을 반년 앞둔 어느 날,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코비드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나는 회사로 출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에 익숙해지면서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년 반 만에 가을부터 복직이 가능하다는 회사의 연락을 받았다. 코비드라는 긴 터널에서 이제야 출구를 찾은 것 같은데, 정작 내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야근도 불사하던 회사생활의 전성기는 아이들을 낳은 이후로 사라졌다. 퇴근시간만 되면 제때 집에 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회사를 퇴근해도 집으로 다시 출근하여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새벽에 잠드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지난 14년의 삶이 다시 기다리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결혼, 출산까지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난생처음으로 그 모든 것들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대에 생각했던 사십이란 나이는 내게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숫자였다. 이대로 사십이란 나이를 맞이해야 한다는 게 불현듯 억울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그 무엇도 스스로 결정한 게 없었다. 졸업을 했으니 취업을 해야 했고,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해야 했고, 아이를 낳아야 했다. 평범한 우리 부부에게 맞벌이는 당연한 것이었고 워킹맘은 본래 힘든 것이라 생각했다. 주어진 상황들에 순응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본 적은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던 미드 “길모어 걸스”를 보는데 이런 대사가 나왔다.


‘지금 못 하면 평생 못 해요’


주인공이 새로운 길을 갈망하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해 고민하던 장면이었다. 그 대사를 본 순간,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용감해지고 싶다.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낯선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고심 끝에 나는 가장 나답지 않은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알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인생이 끝나버리는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란 것을. 어쩌면 나는 차마 회사를 그만둘 용기가 없어서 뜬금없이 캐나다로 가겠다는 핑계를 생각해 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떳떳하고 그럴싸한 이유로 그동안 쌓아온 나의 이삼십 대를, 땀방울이 가득한 퇴직금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엄마랑 같이 캐나다 갈래?


나는 마음을 먹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결정으로 혼란에 빠졌다. 아이들은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기러기 생활을 해야 했다. 아빠 없이 가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지만, 아이들은 엄마와의 긴 여행이 될 거라는 말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남편은 갈 수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편 없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캐나다에서의 일 년은, 나 홀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여정이기를 바랐다. 남편 없이 힘든 순간들이 많겠지만, 그 자리를 아이들이 채워줄 것이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리라.




그렇게 서른아홉을 한 달 앞둔 12월의 어느 날, 나는 밴쿠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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