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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나팔꽃 모자

완전무결한 행복

by 그사이


“옥수수야, 반가워.”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옥수수 껍질을 뜯어낸다. 소금 한술과 뉴슈가 한술을 넣어 25분쯤 삶아주니 구수한 향기가 퍼진다.

뉴슈가라는 이름의 신박한 물질에 대한 여러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단맛을 안 넣기도 하고 설탕으로 대체해 보기도 했다. 맛없다.

결론은 옥수수를 삶을 땐 뉴슈가다.

버스 정류장 앞 맛있는 찐 옥수수를 파는 아줌마도 쓰고, 우리 엄마도 쓰고, 할머니도 쓰셨다.

어쩌다 한 번쯤 하얀 물질을 먹어도 괜찮다.

구수한 향기가 나는 지금 시간은 여섯 시 반.


올해 처음 만난 반가운 대학 찰옥수수 한 자루를 사 왔다. 옥수수는 따서 시간이 지날수록 당도와 맛이 흐려진다. 당장 삶고 싶었지만 실제 온도 36도. 체감온도 40도.

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는 판국에 습도와 온도를 더 높였다간 내가 삶아지겠다.

“혹시 가만 두면 익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가 김치 냉장고 속으로 얼른 넣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났다. 옥수수!


무럭무럭 구수함이 피어오른다.

옥수수 향기에서 완전무결한 행복이 떠오른다. 며칠전 집안 정리 중 옥수수가 찍힌 사진을 발견하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옥수수야, 반가워!”

옥수수가 대학을 나오고 참~^^


사진 1.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여자애가 웃고 서있다. 잔꽃무늬 소매가 없는 파란색 면원피스를 입고, 나팔꽃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하늘색 모자를 쓰고 있다. 한 손은 모자가 날아갈까 잡고, 오른손에 옥수수를 들고 하모니카를 불며 웃고 있다.

사진 속 열 살짜리 여자애의 정말 무결한 행복한 날이다.


해마다 동해바다로 가던 가족 피서는 인파를 피해 점점점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피서를 갔을 수도 있고, 불행을 피하기 위한 피서였을지도 모른다.

최종 피서지가 고성 송지호 해수욕장에서 멈추었을 즈음 여자애의 완전히 행복한 기억도 멈추었다.


사진 2.

바다인가?

바다처럼 넓고 큰 Erie 호수를 뒤에 두고 여자애가 웃고 있다.

잔꽃무늬가 있는 파란색 나팔꽃 모자를 쓴 열 살의 여자애가 실 같은 눈을 하고 옥수수 하모니카 여자애를 향해 해맑게 웃음을 지어준다. 나도 묻고, 너도 묻는다.

“너 행복하니?”

아이는 나팔꽃 모자가 호수바람에 날아갈까 걱정이 되는지 오른손을 머리 위에 대고 모자를 꽉 붙잡고 있다

시공을 넘은 두 얼굴이 매우 닮았다.

저 순간이 완전무결한 행복이기를 바란다.


카메라 작은 유리창에 눈을 대고 있는 과거의 옥수수를 물고 있던 여자애가 행복을 들여다본다. 저 애의 최종 행복지가 열 살을 넘어 아주 멀리 있기를 바란다.


벙거지 모자라 해야 하나? A라인 모자라고 해야 하나?

나는 나팔꽃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자가 좋다. 열 살에 느낀 완전한 행복을 담고 있을 것만 같다.

내 아이에게 나팔꽃 모자를 씌우니 참 예쁘게 보였고, 뜨개질이 취미가 된 후 이런저런 모자를 떴는데 내 모자는 언제나 나팔꽃 모양을 뜬다.

옥수수와 나팔꽃 모자는 내게 완전무결한 행복의 순간이다.

여름 모자와 겨울모자


“ 여러분의 그 순간은 언제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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