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전화도 안 받고 얼굴을 보려 해도 피해서 집을 부술 듯이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다.
지수와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 먼산만 보고 있다가 서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캐러멜 마키아또 두 잔 주세요." "오빠,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야지?" "인생에는 쓴맛만 있는 게 아니야. 단맛도 있어." 삶을 이해하려면 커피의 쓴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런 사람이 나와 만나며 변했다.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또와 느끼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먹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함께 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렌지빛 향기 중에서/한서연>
지수가 돌아가고 서연은 <오렌지빛 향기>를 열어 놓고 반짝이는화면 속에서 승우와의 시간들을 되짚고 있었다.
함께 한 시간보다 승우가 떠나고 홀로 지켜내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서연은 문득 승우가 원망스럽다가 보고 싶어졌다.
"오빠, 나 어떡해?"
서연은 속도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승우 앞에 서서 답이 없는 물음을 되풀이했다.
"오빠, 나 어떡해? 이제 오빠 없이도 살아질 것 같아."
멍하니 승우를 바라보다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밖으로 나오니 하얀 안개 같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옷이 흠뻑 젖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을 오후 서늘한 햇살도 숨어버려서 좀 으슬으슬할 것 같았다.
그때 저만치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잘 있었어요?"
거의 한 달만에 서연은 하진과 마주했다.
지난번 공원 산책으로 서연은 기억 속 엉킨 퍼즐을 조금씩 다시 맞춰야 했다.
잊고 싶은 기억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기억이 조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바다로 향하던 서연을 끌어내 준 사람이 승우와 마지막 저녁을 함께했던 식당 사장인 줄 알고 있었다.
큰 키에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남자가 이하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기억을 재확인하는 동안 승우와의 마지막이 몇 번이나 스쳐서 매일 전화로, 회사 앞으로 걱정의 눈빛을 하고 있는 하진을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