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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Apr 25. 2022

14. 나를 좀 먹는 사람들과 작별하기

손절 말고 안녕


 고의적인 것이던, 아니던 관계없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좀 먹는 수많은 말과 행동들. 아무 생각 없이 한 당신의 한 마디가 나에게는 혹은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내가 나의 과거를 글로 풀어내며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이런 나의 과거들과 작별을 고하자'였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과도, 과거의 생각들과도 영원히 작별을 고한다는 것은 사실 저 한 마디로 모두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 때는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그때의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며 그들에게 쌍욕과 함께 저주를 퍼붓기도 했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인생 참 X 같다'는 말로 나 스스로를 연민했고 그런 그들에게 '네들이 이렇게 하고도 네들 인생은 순탄할 것 같으냐'며 하루하루 그들을 지옥 구덩이로 밀어 넣을 저주를 퍼부어댔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저주를 퍼붓고 있는 내가 그들 대신 지옥 구덩이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자기 연민조차 바닥이 났던 작년의 봄은 내게 지옥 그 자체였다. 첫째에게서 보이는 나의 어린 시절을 보고 난 후 줄곧 느껴온 무기력함은 어느덧 나를 무기력과 우울, 그 자체로 만들어 버렸다.

 목욕탕 속에서 너무 오래 앉아 있었을 때처럼 이명이 생겼고, 눈앞이 뿌옇게 흐린 날들의 연속이었으며 그것은 내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물에 푹 젖어 불어버린 듯한 몸뚱어리가 이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아이가 스스로 학교 갈 채비를 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아이의 행동을 따라 눈동자만 굴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내 무기력함을 보며 당혹스러워하던 첫째는 그렇게 한 달 여 정도가 반복되자 이내 체념한 듯, 스스로 학교 갈 채비에 익숙해져 갔다.

 아직 어린 둘째는 어린이집 차량에 직접 태워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뚱어리를 일으켜 머리만 간신히 추스른 채 둘째의 손을 붙잡고 내려가 차량에 태우고, 그 노란 차량이 내 눈에서 서서히 점처럼 사라지고 나면 이유도 없이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릴 때도 많았다. 남의 시선을 유달리 많이 의식하는 내가 그때만큼은.. 오전 일찍부터 잠옷 차림으로 산발이 된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그 길을 걷던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미친년 같았을까? 측은해 보였을까?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울고 있나, 궁금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야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나를 좀 먹는 사람과 생각은 꽤 여러 가지였다. 이미 이 전에 써 내려갔던 글 속에서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그랬고,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이 일도 나를 지금까지 괴롭혀온 나의 오래된 트라우마이다.

 2000년도 10월 초, 내가 12살 때였다. 지금은 큰아버지와 이혼을 했지만 당시 내겐 큰엄마가 있었다. 키가 크고 눈매가 사나웠지만 말투만큼은 아주 부드럽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큰 엄마가 나를 "미주야~" 하며 끝 음을 길게 늘어뜨려 부를 때마다 아랫배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는 게 너무 좋았다. 아무도 나를 그런 식으로 상냥하게 불러준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시는 큰아빠와 큰엄마가 결혼을 한 지 1-2년쯤 지났을 때였고 한 달 뒤면 나의 사촌동생이 태어날 예정이었다. 처음 시집을 올 때부터 큰엄마가 키우고 있던 몰티즈 '코코'는 마당에서 막 풀어놓고 키우는 우리 집 강아지들에 비해 '고급스러워 보였다.' 당시 나의 표현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애지중지 기른 티가 나던 강아지였다. 계절마다 귀와 꼬리털을 염색하던 코코는 여느 몰티즈들보다 몸집이 좀 큰 편이었다. 큰엄마가 있으면 당연히 큰엄마의 품에만 안겨있었고, 큰엄마가 없을 때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안기지 않고 문 앞에 가서 큰엄마의 소리가 나기만을 기다렸다.

 내 사촌동생이 태어날 즈음이 되자 큰엄마는 강아지를 여러 마리 기르고 있던 우리 집에 코코를 맡겼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기도 하고 남의 집보다야 '시숙'인 우리 아빠에게 맡기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을 것이다. 집안에서 키우는 시츄 방울이와 코코보다 훨씬 작은 몰티즈 쁘띠, 마당에서 키우던 믹스견 꼭지와 깜순이, 진돗개 진순이. 다들 마당에서 흙밭에 뒹굴거나 집 안에 있어도 빗질 한 번 제대로 해주지 않던 애들이었는데 그 사이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털에 귀와 꼬리를 연두색으로 염색해놓은 코코를 데려다 놓으니 우리 집 강아지들은 참 영락없는 촌 강아지들 같았다.

 코코는 우리 집으로 오자마자 주인 없는 이 낯선 집을 아주 불편해했다.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잠도 자지 않고 샷시문을 박박 긁어댔다. 낑낑거리며 소리 내어 울거나 하울링을 하기도 하고 배변훈련이 잘 되어있던 아이가 갑자기 집안 곳곳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4-5일째 제대로 먹지도 않고 문 쪽만 쳐다보는 코코를 보다 못한 아빠가 큰 엄마에게 전화를 해 코코의 상태를 이야기했지만 큰엄마는 당분간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큰엄마의 입장도, 아빠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진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큰엄마는 건강한 딸을 낳았고 아빠와 새엄마는 아이도 낳았으니 한 달 정도만 있으면 코코를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그땐 집 안에 안전펜스를 설치해두고 아이와 분리해두면 되니 문제없을 거라며 그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열흘이 넘도록 하울링을 하고 눈 밑 털이 까매지도록 울던 코코는 체념한 듯했다. 더 이상 하울링을 하지도, 문을 긁어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정 배가 고플 때에만 사료 몇 알갱이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 게 다였고 그마저도 문 소리만 났다 하면 먹는 걸 중단하고 문 앞으로 후다닥 뛰어가곤 했다. 어린 내가 다 안타깝고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온종일 문 앞에 엎드려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전생에 형수랑 부부 사이였나"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일은 동생이 태어난 날로부터 열흘도 채 되지 않아 터졌다.

 한가로운 일요일, 일이 없던 아빠가 차를 손보러 잠시 밖으로 나가고 새엄마는 뒷마당에 쓰레기를 태우러 간 사이 집 안에 들어와 있던 꼭지와 쁘띠가 서로 싸움이 붙었다. 꼭지보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쁘띠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고 이내 꼭지가 쁘띠의 다리를 물자 쁘띠가 깨갱깽 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말릴 틈도 없었고 잔뜩 성이 난 꼭지에게 물릴까 봐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했다.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아빠를 죽어라 불렀지만 시동을 건 채로 차 보닛을 열고 엔진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빠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쁘띠는 계속해서 죽어라 비명을 질러대고 꼭지는 쁘띠의 다리를 놓지 않고 코코는 그 옆에서 덩달아 짖어대니 정신이 쏙 빠져버릴 것 같았다.


 "아빠! 아빠! 아... 어? 아빠 코코!!!"


 물릴까 봐 싸움을 말릴 수가 없었던 나는 무심코 현관문을 열어 아빠를 불렀고 꼭지와 쁘띠의 격렬한 싸움을 보며 짖어대던 코코가 어느 틈엔가 열린 현관문 사이로 후다닥 빠져나가 버렸다. 자유를 갈구하던 새처럼 현관문에 쳐놓았던 펜스를 필사적으로 비집고 나가 정신없이 내달렸다. 우리 집 앞을 내려 달리면 도로였다.

 그 잽싼 몸은 연두색 귀를 펄럭거리며 오지 않는 제 주인을 향해 길잡이도 없이 내달렸고 그마저도 얼마 달리지 못하고 달려오는 덤프트럭에 치여버렸다.


 "코코야!"


 아빠가 코코를 부르는 사이 육중하고 높은 덤프트럭은 제 앞으로 달려 나온 작은 강아지를 보지도 못하고 그 아이의 작은 몸을 부서져라 밟고 지나갔고 그 뒤로 계속해서 다른 차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처참한 광경에 두 눈을 가려버렸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그 광경을 떠올리자니 키보드 위에서 놀던 내 손이 엉겁결에 그때처럼 두 눈을 다시 한번 가리고 말았다. 하얀 털이 피로 물들고 온 장기가 밖으로 모두 드러난 채, 얼굴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 작고 까만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 눈이 나를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왜 내가 이 험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었니.'

 '너는 왜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니.'

 '나는 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인데 너는 왜 나를 내 주인에게 데려다주지 않았니.'


 처참한 그 아이의 몸보다 그 얼굴이, 눈이 나를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차마 지금도 그날 그 모습을 글로 모두 담을 수가 없다. 그 눈이 너무도 또렷하게 날 보고 있었기에, 내가 차마 내지 못한 단말마의 비명조차 그 작은 강아지가 모두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잠시 도로 위가 고요해진 자리, 아빠가 도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의 얼굴에는 아주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로 위 피로 물든 자리에서 작은 몸을 안아 들어 내가 보지 못하게 도로가를 빙 돌아 마당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새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비명소리와 함께 자리에 주저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내가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어.'

 '물리더라도 꼭지를 내가 말려야 했어.'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아야 했어. 현관문을 여는 게 아니었는데.'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는 그 우주같이 새카만 눈과 마주친 날로부터 몇 날 며칠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아주 끔찍하게도 그 아이의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꿈을 꾸기도 했고, 덤프트럭 밑에 그 아이가 아닌 내가 누워있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유는 큰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코코가 차에 치인 그날 저녁, 아빠는 어두운 얼굴로 큰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초지종을 모두 이야기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큰아빠가 무어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빠와 큰아빠의 통화는 조용히 끝이 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큰아빠와 통화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었지만 악을 쓰는 큰엄마의 목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가만히 듣고만 있다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던 아빠의 입에서 불현듯 거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씨발 그게 할 소리야? 죄송하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개새끼가 밥을 안 먹는다고 데려가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들은 채도 안 하더니 씨발 그게 할 소리냐고!!"


 침울하고 난감해하던 아빠의 표정이 벌겋게 터져나갈 듯 달아올랐고 새엄마는 아빠의 입에서 거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자마자 방구석에 처박혀 퉁퉁 부은 눈으로 울던 나를 쳐다보았다.


 "입구에 펜스 쳐뒀는데도 튀어나가 버렸다고! 근데 뭐? 씨발, 미주가 죽었어야 된다고? 야 이 씨발 그게 할 말이야? 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뭐? 데려가랄 땐 씨발, 모르는 척하다가 이제 와서 개 대신에 내 새끼가 치여 죽었어야 된다고? 그게 할 말이야!!!"


 ... 다들 나더러 죽으라고 하는구나. 그래, 내가 죽었어야 맞는 거였구나.

 동물의 생명을 인간의 생명보다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큰엄마에겐 채 1-2년밖에 보지 않은 나보다 5년을 넘게 키운 코코가 소중했으리란 것도, 그런 아이를 잃은 상실감이 어땠을지 이해한다. 그렇지만.. 하지만..

 그 후로 나는 내 사촌동생이 돌이 될 때까지 큰엄마가 할머니 댁에 올 때마다 숨어있었고 아빠와 큰엄마는 만날 때마다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마다 장롱이나 창고에 숨어있던 나는 큰엄마의 저주를 들어야만 했다. 늘상 내게 친절하고 나긋하게 대했던 사람이 삽시간에 등을 돌려 내게 죽으란 저주를 퍼붓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등골이 서늘하고 두려운 느낌을 준다. 쥔 것 없이 내 목을 옥죄이고, 든 것 없이 서늘한 칼 끝으로 나를 찌르는 느낌.


 "죽더라도 미주가 죽었어야지!! 네 딸년은 살인자야, 살인자!!"

 "뭐 이 씨발 X아?"


 할머니와 큰 아빠의 만류로 싸움이 중단되고 큰아빠가 흥분한 큰엄마를 데리고 집 밖을 나설 때까지도 큰엄마는 계속해서 내가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코코 대신 내가 죽었어야 하는 거라고, 대신 죽지 않은 나는 살인자라고. 그 말들을 내가 고스란히 들었을 것이란 걸 어른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네 탓이 아니야. 사고일 뿐이야."라는 말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특히나 새엄마는 내게 그러게 조심했었어야지, 돌봐준 공도 없이 이딴 말을 들어야 되느냐며 나를 다그쳤다. 아빠는 당신의 딸이 죽었어야 한다고, 당신의 딸이 강아지를 죽인 살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에 매우 흥분하며 내 편을 들어주었지만 정작 내겐 아무것도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다. 나는 큰엄마에게 코코 대신 죽었어야 했던 살인자일 뿐이었다. 나는.. 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현관문을 열어 강아지를 죽인 살인자였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야만 했다.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에도, 첫째를 낳고 기르고 있을 때에도 나에게 십수 년이 지난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내 사촌동생이었다.

 나 때문에 코코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날 내가 현관문을 열지만 않았더라면 코코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내 사촌동생은 오래전 남겨둔 코코의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야, 코코. 언니가 죽였어."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엄마로 인해 동생은 내게,


 "언니,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 언니가 죽였어?"


 라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받아야 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차마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문을 열었던 것이 죄라면, 내가 죽인 것이 맞으니까.

 사실은 이제 제발 그만해달라고,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고, 나도 그 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어서 수도 없는 악몽을 꾸었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차마 그 어떤 대답도 꺼낼 수가 없어서 웃었다. 울 수도 없어서 그저,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작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스무 살이 넘은 동생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그 질문을 하지 않지만 내겐 늘 그 기억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내게 따뜻하게 위로해 주지 않았던 열두 살의 내 마음 이곳저곳에 계속해서 생채기가 나고 있었지만 약을 발라주는 이보다 상처를 더 깊게 쑤셔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문 줄 알았던 자리는 이미 곪아 터져서 감각이 없었을 뿐이고 더 이상의 생채기는 이제 이골이 나서 그것을 조용히 묻어둘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날의 그 까만 눈을 잊을 수가 없고 그 비슷한 강아지들만 봐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온몸이 다 짓이겨져도 나를 돌아보던 그 눈이 대체 내게 무엇을 바랐던 건지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하고 그 아이를 대신할 사람은 나를 여전히 살인자로 보지만 나는 이제 나를 좀 먹던 그들과 안녕을 고해야 한다.

 너의 까만 눈을, 하얀 털을, 그날 보이지 않는 너의 주인에게 달려가던 팔락이는 연두색 두 귀를 잊진 못하겠지만 나는 너를 죽인 살인자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던 열두 살이었을 뿐이다.

 나는 너를 대신해 죽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너의 마지막을 유일하게 본 단 한 사람으로, 네 눈이 얘기하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겨우 강아지 때문에 인생을 좀 먹혔느냐 말하겠지만 나는 강아지 때문에 일부를 좀 먹힌 것이 아니다. 열두 살에게 가혹했던 어른들에게 좀 먹힌 것이고, 나는 22년이 지난 이제야 그들과 안녕을 고한다.

 이 글로 말미암아 나를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과 모든 과거들과 오랜 안녕이 되기를 바란다. 살아가면서 다시 한번 떠올릴 일이야 있겠지만 더 이상 그들이, 그 말들이 나를 좀 먹게 두진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당신들에게 좀 먹혀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그럴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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