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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Feb 07. 2022

12. 나에게 더이상 엄마는 필요하지 않아요.





 생모에게서 처음 연락이 온 건 2008년 4월? 5월? 봄쯤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벚꽃이 피던 그 봄에. 

 나는 아주 정직하게 싸이월드에 내 생년월일을 기재해두었었다. 가입 시에 설정해두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1989년 5월 26일. 4개월 정도 출생신고가 늦게 되어 나는 진짜 생일인 1월 26일을 두고 5월 26일생으로 살았다. 그래도 내 생모이니 주민등록번호 앞자리쯤이야 기억하고 있었겠지. 

 싸이월드 인물 검색창에 이름과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같은 이름과 같은 생일자의 사람들이 떴고, 그 당시 내 이름에 내 생년월일과 같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고 나의 생모는 나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내 사진을 확인한 뒤, 내 방명록에 글을 남긴 듯했다. 


 보낸 사람 : 이경은 

 [내가 누군지 알겠니?]


 왜 모르겠는가. 듣고 싶지 않아도 친척들의 입에서 수도 없이 오르내린 나의 생모 이름인데. 

 갓 스무 살이 된 그 해 봄, 나는 나를 찾아주는 나의 생모에게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지 모를 고마움을 느꼈다. 친척들의 말처럼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니구나, 나를 이렇게나마 찾아주었구나, 나를 보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덤덤하려 애썼다. 


 [왜 모르겠어요.]


 단 여섯 글자 안에 얼굴도 모르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도 나를 낳아준 사람이니까, 나를 찾아주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새엄마에게 알게 모르게 치여왔던 머지않은 내 유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생모의 답장은 조금 늦게 돌아왔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긴 장문의 방명록이 적혀있었고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자신이 날 버리고 떠난 이유와 싸이월드를 통해 본 내 사진을 보며 '예쁘게 잘 자라주었구나',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보낸 쪽지에는 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처절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어린 나이에 나를 낳고 감당할 수 없었던 책임감과 당시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던 우리 아빠의 무능함, 폭력 등등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다른 말들은 모두 거두절미하고 나를 보고 싶다는 그 한 문장에 꽂혀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생모에게 답장을 보냈다. 


 [어디 계세요? 한 번 봬요. 저도 궁금했어요.]


 내가 먼저 만나기를 청했고, 그녀의 방명록에 답글을 단 후 3일 동안 그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확인을 안 한 건가? 아니면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망설이는 걸까? 초조한 마음으로 싸이월드를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리며 방명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정확히 4일째 되던 날 아침, 그녀의 방명록이 남겨져있었다. 


 [볼일 보러 강릉에 와 있어. 내일 12시에 oo에서 만나자.] 


 장소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자고 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밥이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 내가 장소를 바꿔 시내의 한 카페에서 보자고 했었던 것 같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고 분명 노발대발할 가족들에게 철저히 비밀로 했다. 어차피 연세가 드신 할머니는 싸이월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실 테고, 삼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컴퓨터로 접속했던 모든 사이트 기록을 지워버렸다. 

 아마도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감격적이고도 비밀스러운 모녀 상봉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연민하던 시기였어서, 아빠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았던 나에게 그녀가 어떤 보상이 되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비록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날 두고 떠났지만 그녀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이렇게나마 날 찾아주는 것에 기쁘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생각했던 것도 같다. 


 다음 날, 오래전 아빠의 앨범에서 꺼내져 불태워진 사진 속 그녀의 어렴풋한 모습만 가지고 약속 장소 근처에서 서성일 때 조용히 내 곁에 선 한 여자가 있었다. 

 두껍고 커다란 뿔테 안경, 잔머리 하나 없이 이마에서부터 쓸어 올려 묶은 긴 머리칼, 두꺼운 입술. 어렴풋하지만 그녀였다, 나의 생모. 생각보다 감격스럽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슴은 벅찼다. 내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속아 넘어가기 좋은 스무 살의 아이일 뿐이었다. 

 막상 마주 앉고 보니 방명록으로 내게 길고 애처로운 변명을 하던 나의 생모는 어디로 가고 어색한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더군다나 그녀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나는 더더욱 그랬다. 이제와 반갑다고 부둥켜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기억나는 것이 없으니 그리웠단 얘기도 나오지가 않았다. 초조하게 보냈던 어젯밤과 다르게 아주 덤덤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그녀였다. 


 [올해 스무 살 됐겠네, 그렇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내 나이를 묻는 여자에게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학교 다녔어?] 


 오랜만에 만난 자식에게 묻는 것이 고작 어느 학교 다녔냐는 말 밖에 없느냐 묻고 싶었지만 공중으로 흩어진 시간들이 너무도 많아 그 시간의 부재를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메우지 못하는 그녀의 말솜씨가 좀 웃기기도 했다. 


 [검정고시 봤어요.] 

 [왜? 네 아빠 재혼했다는 얘기 들었는데, 그 여자가 그랬니?]

 [아니요. 그냥 제가 다니기 싫어서 안 다녔어요. 재작년에 고졸검정고시 보고 그때부터 고모네서 일하고 있어요.]


 그녀는 내 말에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내가 동화 속에 나오는 신데렐라처럼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고 밝게 자란 캔디형 여주인공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친자식과의 차별, 나의 대한 염려를 가장해 내 자존심을 짓밟아놓는 말들, 그런 말을 듣고 있는 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 감고 귀 막은 아빠까지, 고난의 3종 세트였지만 때리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드라마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속에 누군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딱 봐도 이제 막 초등학생 정도 됐을까? 많아봐야 열 살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남자아이. 어디서부터 지켜보고 다가온 건지 모를 아이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곁에 앉았다. 뜻밖의 상황에 눈이 동그래지며 너는 누구냐, 물으려던 찰나 아이가 나타남과 동시에 그녀가 아주 노골적이고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네 동생이야. 엄마 결혼했어.]


 알고 있었다. 좁아빠진 동네에 그녀의 엄마, 나에게 외할머니였던 여자가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으니 소문은 삽시간에 빠르게 퍼졌다. 그 얘기를 할머니가 먼저 들었고, 심지어 할머니와 시장에서 마주친 외할머니란 여자는 '당신네 그지 같은 집구석보다 훨씬 좋은 집안에 시집보냈으니 미주 미끼 삼아 우리 경은이 앞길 막을 생각 마라'며 묻지도 않은 소식과 함께 으름장을 놓고 갔다고 했었다. 그것도 꽤 오래전 일이었다. 그리고 불과 1-2년 전, 그 좋은 집안이라던 내 생모의 남편이 자살을 했고 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언뜻 전해 들었었다. 그 아이가 이 애구나, 싶었다. 


 [사실은 미주야. 엄마가 부탁이 하나 있어.] 


 ... 내가 엄마라고 불러주기도 전에 나에게 당신 스스로를 '엄마'라고 불러가며 그 말을 미끼 삼아 나를 흔들어놓던 나의 생모. 태어날 때부터 구순구개열이 있어 언어 장애가 있다는 그 아이를 내 앞에 앉혀두고 구구절절한 자기변명과 지금 당신의 경제적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은 직업군인이었으며 자살을 했고, 그래서 연금을 제대로 탈 수가 없게 되었으며 이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어 잠시 강릉 친정에 와있다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얘기였다. 구구절절한 변명 모두를 제외하면 그냥 그것뿐이었다. 

 처음엔 참 당신 팔자도 더럽다, 싶었다. 당신의 엄마인 나의 외할머니는 나 하나를 죽이고 당신 딸 팔아 부잣집에 시집보내겠다며, 이 놈 저 놈한테 줘서라도 그 집 아들(우리 아빠) 보다 나은 놈한테 시집보낼 거라며 당신 딸을 술집 작부 대하듯 저급한 말들을 해대더니 겨우 시집간 곳이 군인이며 그마저도 자살을 했다고? 

 군인도, 장애아도 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갓 태어난 나를 베개로 눌러 죽여서라도 없애버려야 했다는 당신의 어머니의 욕심이 결국 당신 딸에게 칼이 되어 돌아갔다는 것이 너무 옛날 전래동화 같은 인과응보라 황당할 뿐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이 아이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찾지도 않던 친자식인 날 이제와 돈 몇 푼에 찾아와 울고불고하는 나의 생모까지, 이들을 모두 한 프레임 안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결국 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자식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내가 바라 왔던 드라마 같은 기적은 세상에 없다는 걸 알았다. 세상엔 아름다운 모녀의 재회도 없으며, 정다운 계모와의 관계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비뚤어진 가치관을 만들었고, 그것은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는 결국 그녀에게 남아있던 모든 돈을 털어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날 찾지 말아 달라 이야기했다. 당신이 한 줌의 재가 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찾지 말라고, 그리고 이 아이와 나도 엮지 말아 달라고. 당신의 품을 떠난 후부터 나는 당신과 남이었고 이 아이도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그리고 그녀는 그 후로도 몇 차례 싸이월드를 통해 내게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고 새로운 SNS들이 등장을 하며 자연스럽게 싸이월드와도 멀어졌다. 나의 추억이 가득 담겨있던 싸이월드와의 마지막은 아주 아팠으며 스무 살이 넘은 내게 성장통을 안겨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어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055로 시작되는 지역번호. 보통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지만 그 전화는 왠지 받고 싶었다. 


 [여보세요?]

 [아, 이미주 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여기 경남 oo경찰서입니다. 혹시 이경은 씨 따님 되십니까?]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그 전화 너머로 생모의 이름이 내 귓가에 전해질 때 잠시 머리칼이 쭈삣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딸은 맞으나 오래전 연락이 끊긴 사람이다, 무슨 일이시냐 물으니 경찰은 예상외의 대답에 당황을 한 것인지 머뭇거렸다. 


 [아, 저희가 가정사를 알 수는 없다 보니 이경은 씨 가족관계를 확인하다가 이경은 씨 자녀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으셔서 혹시 이경은 씨랑 연락이 되신다면 저희 oo서로 출석 좀 해달라고 설득해주십사 연락드렸습니다.]

 [보통 같은 거주지에 등록되어 있는 자녀나 남편에게 먼저 연락해보지 않나요? 왜 굳이 경상도와 관계도 없는, 뻔히 강원도 주소지로 되어있는 저한테 전화를 거신 거죠?]


 내 질문에 경찰은 다시 머뭇거렸다. 


 [아.. 말씀드리기가 조금 곤란한데.. 저희가 가정사를 모르고.. 아.. 정말 죄송합니다.]

 [다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다만 오래전 헤어진 저한테까지 전화를 하셨을 때에는 보통 일이 아닌 거잖습니까.]


 경찰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나의 생모가 경상도 모 지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중, 물건 값을 갚지 않고 현재 등본상에 함께 있는 다른 남편과 아이 둘을 모두 데리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었다. 나와 만났을 때 그 아이가 초등학생쯤이었는데, 그 새 아이가 또 하나 생겼으며 남편이 또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십몇 년 만에 나에게 전한 소식이 겨우 사기죄로 고소를 당해 출석 요구를 하는 상황이라니. 너무 황당한데 이런 여자가 나의 생모라는 것이 너무 비참해서 눈물이 펑펑 흘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당신의 밑바닥은 도대체 어디까지 인 것이냐 묻고도 싶었다. 

 수화기 너머의 경찰은 갑작스레 펑펑 우는 나에게 어떤 말도 전하지 못하고 아주 난감한 신음소리만 연신 내뱉었다. 괜한 곳을 들쑤셔놓았다는 듯. 가까스로 진정한 나는 수화기 너머 경찰에게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그 분과 연락이 되시거나 출석을 한다면 지금 제가 선생님께 메일 한 통 보내드릴 테니 좀 전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경찰은 잠시 생각을 해보곤 알겠다고 했다. 그저 가족관계 증명서만 보고 내게 연락을 해왔고, 사실상 생모라는 이름만 있을 뿐 나완 관계도 없는 사람 때문에 애먼 내게 전화를 한 미안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경찰은 내게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고 나는 그곳으로 편지를 한통 보냈다. 


반갑지 않은 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녕하시냐는 안부로 인사드리지 않겠습니다.

제 나이가 이제는 서른 하나 되었으니 생모인 당신께서는 이제 오십쯤 되셨겠네요.

당신께서 남겨둔 사진은 모두 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당신께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저는 엄마라는 존재 없이도 당신이 기억하는 나의 할머니와 나의 아버지 곁에서 평안히 잘 자라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당신과 같이 7살, 3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넉넉하게 살진 못합니다.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며 살고 있지만 그런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진 않습니다. 얼마 전, 7년 만에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이 정석대로 이루어 낸 가정은 아니지만, 나는 남편과 최선을 다하며 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남겨두고 가신 상처 때문인지 나는 내 가정에 책임을 다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스무 살 언저리, 당신께서 물어준 안부가 무척이나 반가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당신께서 제게 다른 목적이 있어서 연락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당신을 만났던 그날을 마지막으로 내 기억 끝에서조차 당신의 이름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들어도 생경한 '이경은 씨 따님' 되시냐는 질문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게 경찰서라는 사실이 더더욱 유감입니다. 

부디 당신이 두고 떠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지금 당신 곁에 남겨져 있는 그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나에게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내 전화번호를 알려드려도 괜찮다고 했으나 이제와 당신과 내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편지로 인사 전합니다. 

열아홉, 나를 낳았던 당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언제라도 당신께서 전해 듣게 될 내 소식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행복하게 내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떠난 사람은 떠난 대로,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 대로 각자의 인생을 잘 살면 그만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전해주신 이 소식이 나를 조금은 울적하게 만듭니다. 당신께 딸로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좋지 않은 일에 관련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나를 포함한 당신 주위의 모든 분들께 당신의 치부를 보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매일이 행복할 순 없지만 사는 동안 불행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도 도덕적 범주 내에게서 당신의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랑스러운 아내이자 엄마가 되길 바랍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되시길 바라며,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그렇게 나의 편지는 3년 전 이맘때 쓰였고 이 편지가 최근 나의 생모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면.. 그녀가 이 편지를 들먹이며 나에게 인스타그램으로 다시 연락을 시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나는 엄마의 정이 그리웠던 스무 살의 내가 아니기에, 그녀와의 인연은 그녀가 나를 낳았던 그 당시만으로 끝내고 싶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구의 딸도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벅차다. 그들에게 더 이상 속고, 짓밟히는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엄마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다. 여태껏 없었던 엄마를 이제와 찾고 싶은 마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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