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관악 하이볼, 기억의 재구성
요즘에는 좋은 사람들과 등산을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혼자 산에 가곤 했다. 생각 정리가 필요했지만 일상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고 각종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말마다 첫 열차를 타고 서울 산으로 갔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산에서 사람들과 마주할 일이 드물었고 안부를 묻는 사소한 연락으로 핸드폰이 울릴 일도 없었다. 그렇게 자주 산에 갔지만 모든 산을 좋아하진 않았다. 관악산은 내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산이었다. 그 계절 관악산은 황량했고 몇 개의 봉우리는 나를 올리고 내리면서 내 진을 다 빼버렸다.
어느 날 J군이 관악산을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 '관악산'이 목적지라는 것이 굉장히 꺼려졌지만 J군과 함께 간다면 관악산에 대한 불호감을 호감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불호감에서 호감으로 혹은 호감에서 불호감으로 감정의 기억을 바꾼 경험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강원도 운탄고도를 뛰는 트레일러닝(포장된 트랙이 아닌 산이나 숲길을 뛰는 운동) 대회였다. 이 대회를 나갈 당시 운동으로 혼자 20km씩 달리던 나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고 혼자 트레일러닝 대회에 덜컥 신청한 것도 대단히 잘 못 된 선택이었다. 20km를 뛸 때는 고통이 따른다. 발목 부상이 있는 나는 발목부터 무릎, 골반까지 고통이 따르고 심폐지구력이 부족해서 오는 고통까지 수반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라톤의 기억은 호감의 감정이 불호감의 감정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에 다시 뛰게 된다. 목적 거리를 다 뛰었을 때의 성취감을 말할 것도 없으며, 운동을 끝낸 뒤의 개운함, 운동 중에 누군가 마라톤을 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멋있게 찍어주면 '마라톤 뛰는 나 자신 너무 멋져!'의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그날의 트레일러닝도 마찬가지였다. 트랙에서 뛰는 마라톤과 달리 산을 오르내려야 하고 비포장 길이기 때문에 굉장한 체력소모가 있었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토할 거 같았다'. 산에서 20km를 뛰는 내내 다시는 트레일러닝 대회를 참가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뛰었지만 코스 곳곳에 행사 측 사진작가들이 숨어서 참가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물론 대회와 상관없이 힘들어서 혼자 내뱉는 욕이었다) 뛰다가 '이 산에서 뛰는 내 모습이 얼마나 멋있게 나올까. 빨리 사진 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은 사진작가의 렌즈를 발견하고 몇 초의 지체도 없이 동시적이었다(이 날 사진이 멋있게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 사진들 때문에 트레일러닝 대회가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왜곡 될까 봐 뛰는 동안 욕을 하면서 동영상을 찍었다(지금도 이 동영상을 보며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여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마음을 잡고 있다).
J군이 제안한 관악산도 기억의 왜곡, 좋게는 기억의 재구성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관악산 기억 왜곡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