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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Jul 20. 2024

우리는 세상과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대구대 이범식교수의 방송을 보고



  우리는 다음 세상과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인생은 3부작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1부는 태어나서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의 학창 시절, 2부는 사회생활의 전반적인 과정, 3부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의 노년기로 나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연히 대구대 이범식교수가 유튜브에 나온 것을 보고 나서 나는 그를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2살에 직업을 갖고 전신주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고압에 감전되어 양팔과 한쪽 다리가 잘리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큰 사고를 겪고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그는 새로운 상황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에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의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간호를 받으며 그는 그때부터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회에 나가서 세상과 직면할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그는 결국 44세인가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계속적으로 공부하여 대학원을 가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마침내 57세에 대구대학교 재활의학과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다. 정말 준비의 중요성을 파악했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나도 인생은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기는 했었다.


  내 인생의 1부의 시작은 가난한 서울의 흑석동의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세상에 나가기 전에 무엇인가를 준비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빈부차가 심한 지역이었던 흑석동은 부자인 집은 엄청 큰 집이었고, 우리 집 같이 가난한 집은 그야말로 판잣집이고 일본말로 하꼬방이었다. 안타깝게 나는 판잣집동네였던, 연못시장이라는 가난한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누구나 그러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나는 가난한 집을 보여주기 싫어 초등학교 친구들과 집에 갈 때 삥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 번은 교회 동생이었던 여자애가 지나가다가 내가 우리 동네로 들어가다가 나를 보고 집이 그 동네냐고 물어봤을 때 나도 모르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가난한 동네의 초리 한 집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동네유지였다. 아버지가 통장님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난했던 동네사람들은 집안의 대소사를 아버지에게 의논했고, 아버지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수행하셨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간신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나는 1부의 인생을 살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오직 가난한 집에 태어나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나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고, 나는 준비를 치밀하게 하지 못하고 얼렁뚱땅하다가 사회에 나오게 되었다.  조경학과를 다니던 나는 이과였으며 대학에서 문과전공이 아니었음에도 친구를 따라서 은행을 준비하다가 남들은 지원하지 않는 공무원생활을 잠깐 해보자 하다 어떨 결에 선택하 35년이나 했다.


 다음 내 인생의 2부는 공무원 생활 35년이었다. 35년이란 생활은 지나고 보면 짧은 듯 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긴 세월이었다. 수많은 사건이 나라에 일어났고 개인적으로 수많은 사건과 경험들을 겪었다. 공무원생활은 원래 9시부터 6시에는 끝나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많이 생겼다. 처음에는 직원들과 술 마시고 당구도 치러 다니는 등 어울리다가 외국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석박사 학위를 공부를 시작했다가 법학, 사회복지학,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좋아서 하는 공부였지만 지치고 지겨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취미관련해서도 집중했는데 음악과 봉사활동이었다. 그래서 음악활동은 해금연주, 우쿨렐레, 진도북춤, 댄스, 가장 최근까지는 피아노를 배웠다. 체육과 관련해서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자, 합기도와 최근에는 복싱을 배웠다. 또한 봉사활동을 위하여 헤어미용사, 피부관리사, 네일아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2부도 1부와 마찬가지로 치밀하게 준비를 못했다. 다만 위안을 얻을 있는 것은 잡다하지만 여러 방면의 자격증과 공부를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2부의 인생기 중에는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 스스로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말은 못 하지만 집중하지 못했다는 시선을 보내는 같다. 실제적으로 강의를 하는 교수자리에 응모를 했는데 심사위원들은 내가 취득한 3개의 박사학위는 오히려 내가 집중하지 했다는 표정과 생각을 하는듯한 질문을 했고 나는 결국 탈락되었다. 


 드디어 3부의 마지막 인생이 시작되었다. 35년 했던 생활과 다른 일을 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하지 못했던 만큼 나의 인생도 그렇게 잘 흘러가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다양한 공부와 취미, 자격증은 나에게 다양한 자양분을 주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신선한 경험을 하고 있어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위안을 삼고 있다.


  어느 틈에 다가온 3부 인생, 마지막 종착역이 언제인지 모르게. 성큼 갑자기  다가올지 모르니 불안하기도 하다. 그냥 이제는 그냥 하루하루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인생 그까짓 거 뭐 별거 있어하는 생각도 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아주 치열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만 살 것 같이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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