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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난지도 노을

by 목다올 Dec 13. 2024


   하늬바람이 분다. 바람결에 수풀에서 풋풋한 풀잎 냄새가 실려온다. 잡목과 칡넝쿨이 여느 시골 아낙네들끼리 머리끄덩이를 쥐어뜯고 싸우는 것처럼 마구 엉키고 설키었다. 나무는 몸부림치지만 언젠가 칡이나 나무, 둘 중 하나는 쓰러질 판이라, 어째 이리도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았을까.     


   언덕을 지나자 널따란 초원이 나오고 푸른 너울이 넘실대는 억새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파도 너머로 일렁이는 억새 물결은 청보리밭처럼 드러누웠다 다시 일어나고, 바람이 지나고 간 뒤 어린 억새는 키재기 하듯 고개를  삐쭉 내밀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어른 억새를 껴안는다.      


   억새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바람골이 파도를 일으키면 억새 너울은 다시 일렁거린다. 한차례 바람이 불고 드러누웠던 여린 억새는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알지 못할 그들의 수다와 몸짓을 지켜보다 풀밭 사잇길로 걸음을 옮긴다. 평원은 그림자처럼 내게로 다가오고 풍경은 거울에 비친 벽화처럼 춤을 춘다.     


   억새 평원에는 솟대가 자라고, 연이 내려앉고, 키다리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저녁이 되면 새들이 보금자리로 날아든다. 해질녘 억새밭에 햇살이 내려앉고 초원엔 반짝거리누런 솜이불이 펼쳐진다. 여름날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듯 억새 꽃대연 노란빛을 띠기 시작하고, 어린 억새는 해거름 햇살에 쑥쑥 자란다.     

   

   하늘공원에 저녁노을이 마중 나오는 시간이다. 자하문 노을은 수줍은 새색시 볼처럼 불그스레하고, 인왕산 범바위 노을은 용맹한 장수의 투구 감투끈처럼 구름에 휩싸여 펄럭이는데, 난지도 하늘공원 저녁노을은 맑은 선홍빛이나 어딘지 모르게 심심하다. 해가 지기 전에 활활 타오르는 하늘을, 붉은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    

 

   개화산에 저녁노을이 걸리고 행주대교 아래 한강은 낙조에 젖어 몸부림친다. 노을에 젖은 하늘과 빛바랜 낙조와 반짝이는 한강 윤슬을 보러 노을공원 전망대로 자리를 옮긴다. 공원 잔디밭에는 텐트를 친 야영객들이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 있는지 숯불에 고기 굽는 냄새, 밥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캠핑장을 지나 노을 전망대에 오르자 기다렸던 핏빛 노을이 까치산 위에 드러누웠다. 저녁노을은 혈기왕성한 이팔청춘의 끓는 피처럼 붉고 정렬적이다. 낙조가 구름 사이로 퍼지고 구름은 석양에 취해 벌겋게 물들었다. 취한 구름은 흙이랑처럼 주름 무늬를 길게 드리우며 저녁 하늘과 한강을 가득 채운다.     


   하늘은 연분홍 진달래꽃으로 물드는가 하면, 금세 붉은 동백꽃에서 요염한 명자꽃으로 흐트러지게 피어오른다. 노을은 연기처럼 서산마루에 드러눕고 강물에 낙조가 내려앉고 물비늘이 어른거린다. 한강엔 고향의 바다처럼 아름다운 윤슬이 남실거린다. 바람이 강 위를 스치면서 잔물결을 일으키고 구불구불한 이랑을 만들고, 이랑은 저들끼리 갈라지고 합쳐져 넓은 물길을 만들기도 한다.     


   행주대교 아래 강물은 붉게 물들어 찰랑거린다. 까치놀에 발갛게 물든 한강에 낙조는 깊숙이 내려앉는다. 석양이 고갯마루에 걸리자 하늘에 신기루가 나타나고, 태양은 마지막 숨을 토해내면서 점점 사위어간다. 하늘 가장자리에 다도해 섬과 바다가 그려지고 물결이 일고 돛단배가 지나가고, 어둠이 섬과 바다를 삼켜버리면 노을도 어둠 속으로, 도시의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도시에도 밤이 찾아오고 어둠이 모든 걸 삼켜버린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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