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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호 Feb 15. 2024

내 삶에 시어머님이 들어왔다.

시어머님의 독립선언에 며느리는 할 말이 없다.

"나 혼자 살련다."

"네?"

"혼자 살아 보겠다고 다른 할매들은 다 혼자 사는데 나도 혼자 살 수 있다."


올해로 83세 되신 어머님의 폭탄선언 같은 독립 선언을 하셨다.

어머님의 도립선언은 몇 년 전부터 계속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말뿐이고, 외로워서 혼자 못 살겠다. 무서워서 못 살겠다. 아 봐줘야 해서 안 될 것 같다고..

그때 하셨으면 걱정이 안 될 텐데 어머님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하셨으면 이리 마음이 쓰이지는 않는다.

"이 집가도 안 편하고 너 그는 너 그끼리 찌찌고 볶고 살아야지 그걸 내가 다 보니 늙은 엄마 때문에 싸우는 것 같고 내가 짐이 되는 것 같아서 싫다."


어머님은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우셨다.

먼저 어머님이 일을 하고 계시는 동네의 집들을 물색하신 후 친구들이 추천해 주는 집들을 몇 군데 가보시고 여기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1만 원이라더라 또 다른 곳은 보증금 100만 원에 20만 원이라더라를 작년부터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친척 집이 비어 있어 그 집도 가보시고 화장실 사용이 안 돼서 안 되겠더라 하신다.

"정말 혼자 사실 수 있어요?"

"혼자 살 거다."

파킨슨, 당뇨병, 심혈관 질환등 지병도 있으시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으신데 어찌 혼자 살 수 있을까?


이번엔 아무리 말려도 꿈쩍도 않으신다.

계속 안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기어이 방을 얻으셨다.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10만 원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혼자 살기에는 괜찮은 방이라고 하신다.

'한부모는 열 자식을 거두어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건사하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자식이 많은 데 어머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방법이 없다.

어디를 가시던 안 편하다고 하시니

아직 어머님이 독립하시려면 자식이라는 넘어야 하는 산들이 많이 남았다.

뜻대로 해 드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쉽게 결정을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머님의 독립 선언은 너무도 강력해서 꺾을 수가 없다.


금요일 저녁 막내딸을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랑 집에 가는 길인데 나와서 저녁 같이 먹자."

"집에 애들도 있고 갈려면 같이 가야 하는 데 애들이 갈련지 모르겠네요?"

"그럼 혼자 나오던지"

"왜? 무슨 일 있어요?"

"엄마 방 계약한 거 막내한테 같이 얘기하자"

"도련님한테 간다고 얘기하셨어요?"

"이제 얘기해야지 너거 신랑도 부르고"

이 시간에 미리 전화도 하지 않고 올 때까지 기다린다니 그 말에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그렇지만 약속을 하지 않고 집을 방문하면 동서도 당황할 것이다.


"그럼 알았다. 다음에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마라"

이미 결정된 일 며느리인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휴일 예정대로 어머님은 막내아들 집을 나오셨다.

일단은 일을 계속하고 싶으니 일터 근처의 방에서 살고 일이 없으면 막내아들집으로 가서 생활하신다는 생각으로 간단히 옷 몇 가지랑 약만 가지고 나오셨다.


어머님이 구해 놓은 집은 정말 형편이 없었다. 싼 가격에 들어가는 거지만 방에 형광등 불도, 보일러도 돌아가지 않는 집이었다.

고모와 같이 전기도 수리하고 보일러도 수리해서 방도 따뜻하고 불도 들어왔다.

왜 그런 집을 얻어서 나가는 건지 자식 입장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일단 하루 이틀 살아보시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괜찮은 집을 다시 얻어 드리기로 했다.

아직 나도 그 집을 가보지는 않았다.

그 집을 보게 되면 어머님을 당장 나오게 할 것 같아서 가는 게 망설여진다.


이사한 다음날 아침 어머님이 전화가 왔다.

"며늘, 나 이사 잘했다. 방도 따시고 잠도 잘 잤다."

"주무시기 괜찮았다니 다행이네요"

"아구 새벽 4시부터 일하러 오라고 전화해서 갔다가 4,000원 벌어놓고 아침 먹으러 왔다. 집이 가까우니까 왔다 갔다 편하고 좋네."

그 일이 무엇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그물 짜는 일을 하는 게 좋다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그만했으면 한다.

"아침은 드셨어요"

"이제 막 먹고 전화한다 아니가 시간 날 때 놀러온나. 일거리 없을 때 놀러 오라고 전화 하꾸마"


자식 된 도리로 이게 잘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밝은 걸 보면 혼자 친구들과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걱정도 되고 한다.

이번 주 내로 어머님 사시는 곳을 들여 봐야 할 것 같기는 한 데 선뜻 용기가 안 난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라서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저리 좋아하시니 어쩔 수도 없다.

이따 어머님께 전화나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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