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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18. 2024

주말 주제 : 이어 쓰기 (장르 : 소설)

미션  :  제시된 글 다음을 이어 쓰시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아침 산책길에서였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나이를 가늠하긴 어려웠지만,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바닷길 오솔길을 그녀는 단발머리를 하고 서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눈인사를 가볍게 했다.
남편은 여행 온 후로 쭉 기분이 나빠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별 반응이 없었다.
ㅡ어? 저 여자 나를 쳐다보네? 자기야, 저 여자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이제 숙소로 가야겠다며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결혼하고 10년 만에 떠난 우리 둘만의 여행.
그렇게 원하던 아기가 생기지 않아 울고 화내며 지냈던 지난 10년.
남편은 이제 둘이서 재밌게 살자고 하지만, 아직 다 포기할  없다는 내 맘을 왜 몰라주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도 지친 나를 위해 계획해 준 여행이 고마워 지금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뭐 산거도 없는데 짐이 더 많아진 거 같네."
짐을 싸며 황당해하는 남편을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ㅡ그래, 이렇게 둘이서 시작했으니 둘이서 재밌게 살면 돼. 우선 지금은 그러면 돼.
마음을 다잡는 나였다.

두 번째 여행지에서 우리는 터질 듯 부푼 여행가방을 풀었다. 테라스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한껏 느끼고 있는데 남편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요!!"
다급한 목소리의 남편은 불안해 보였고, 나는 가만히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남편은 밥 먹으러 나갈 차비를 했고 나도 서둘렀다.
미리 예약한 식당.
식당으로 들어가던 남편이 멈칫했다. 식당을 휙 둘러보더니 다시 뒤돌아 나가려는 남편.
왜 나가냐고 물으려던 그때, 산책길에서 본 단발머리 그녀가 남편의 등 뒤에서 보였다.
남편이 예약한 식당, 남편이 예약한 시간에 나타난 그녀. 뒤돌아 나가려는 남편.
온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 남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남편의 행동은 합리적인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었고, 나는 물었다.
ㅡ그 여자 뭐야?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 흔한 변명도 없었다.
ㅡ그 여자 뭐냐고.
ㅡ어제 산책길에서 본 여자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잖아.
남편은 여전히 인상만 쓸 뿐 아무 말 없이 내 뒤에 있는 식당만 바라보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는 남편.
ㅡ이 와중에 핸드폰을 꺼내? 미쳤어? 미쳤냐고? 저 여자 누구야?
내 말을 무시한 채 남편은 등 돌려 걷기 시작했다. 차에 올라타는 남편. 누군가와 통화하는 목소리.
"어떤가요. 정말 아내가 저와 함께 있나요?"
두 눈을 꼭 감고 눈물을 흘리는 남편.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10년 전,
"이제 더 하기 싫댔지. 왜 내 의견은 무시하는 거야?"
"난 너 닮은 아들이 낳고 싶어."
"난 이제 됐다잖아. 그냥 우리 둘이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면 안 돼?"
"아니. 난 포기할 수 없어."
"....... 난 이제 모르겠다. 니 맘대로 해. 난 이제 불임 병원 안 갈 거니까. 니 맘대로 해. 애들 낳든. 애들 만들든. 다 니 알아서 하라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두 사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도한 시험관시술도 실패하고 말았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는 남편에게 다음 시술은 언제 하는 게 좋겠냐고 의논했고 남편은 모진 말을 뱉어냈다.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 남편은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고, 숨 막히는 적막이 힘들었던 나는 베란다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남편의 모진 말도 못난 딸 때문에 늘 죄인처럼 사과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도 다 사라지는 듯했다.
한 발만 더 나가면 모든 어두운 감정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방울.


남편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내가 흘린 눈물방울과 겹쳐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 말은 미정이가 내 옆을 있다는 거죠? 흑흑흑."
"네, 그녀는 항상 당신 바로 옆에 있더군요. 파란 기운이 느껴졌어요."
"어제 그래서 산책길에  나타난 거군요. 흑흑흑"
"네, 평소와 다르면 눈치채고 나타나지 않는 영혼도 있거든요. 당신의 아내는 한시도 당신을 떠나지 않더군요."
"파란 기운은 미련입니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남은 미련이 있어 맴돌고 있나 봅니다. 미련을 털고 떠날 수 있도록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미련..... 흑흑흑."
울면서 통화하던 남편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조수석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은 눈물에 젖어 촉촉했고 빨갰다. 그런 남편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미정아. 미안해. 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날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어도... 정말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다 잊고 편히 쉬어."
그제야 나는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나는 그저 남편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ㅡ 난 그저 당신에게 아들을 꼭 낳아주고 싶었어. 당신이 항상 말했잖아. 일요일마다 아들 손잡고 목욕탕에 가고 싶다고. 그 꿈을 이뤄주고 싶었던 거야. 힘들게 해서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해.

남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마친 나는 공기처럼 점점 이 가벼워졌다.
납덩이같던 마음을 꺼낸 순간, 점점 몸이 떠올랐다. 남편이 탄 자동차가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계속 떠올랐다. 한결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2024년 1월 27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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