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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20. 2024

주제 : 최악의 데이트 경험

미션 : 자주 쓰는 말 대신 다른 표현 찾아보기


큰 영화관이 잔뜩 모인 남포동 한복판.

늘 친구들과 어울려 만났던 우리는 마음먹고 둘이서만 만나기로 계획했다.

그러니까, 둘만의 첫 데이트였다.


한때 선생님 찾기, 동창생 찾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였다.

싸이월드로 처음 보는 아이디로 자신을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소개하는 쪽지들이 도착하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막 마치고 알음알음 모였던 초등학교 총동창회 이후 연락이 뜸했던 아이들이라 반가웠던 마음에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전교회장이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며 얼굴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왔고, 그 당시 여름 방학이라 심심하던 차에 고민도 없이 나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아니, 니들은 배려라는 게 없지?"

"해병대가 무슨 벼슬이라고 빨간 츄리닝 어쩔 거야. 아오..."

순화해서 작성했지만 짜증과 민망함을 잔뜩 품은 비속어들을 남발했다. 그런 첫 만남에서 그 애가 있었다. 회장 맞은편에 같은 해병대 선임이라며 소개하는데 어디서 본 얼굴이라 빤히 쳐다보게 됐다.

"어? 너 박땡땡 아냐?"

용케 알아본다고 둘은 시시덕거렸고 그렇게 친구를 가장한 만남은 시작됐다.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을 찾아뵙기추진한 회장 덕분에 박땡땡을 다시 보게 됐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그 애와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훗훗.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 만났지만, 틈틈이 둘만의 짧은 밀회를 가졌고 둘은 마음을 키워갔다.


그렇게 반년이 흐르고 박땡땡이 제안했다.

"우리 둘만 만나는 거 어때?"

"우리 남포동에서 둘만 보자."

어쩌면 그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더 늦었으면 내가 먼저 말했을지도 몰랐을 타이밍이었다.



은밀한 밀회 대신 친구들 눈치 안 보고 처음으로 만나기로 한 날.

박땡땡. 그 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핸드폰이 없던 나. 무전기 사이즈의 폴더폰이 있던 그 애. 공중전화로 그 애 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하염없이 연결음만 들렸다.

한 시간이 지났다.

내가 자리를 옮기면 길이 엇갈릴까 봐, 그대로 서서 기다렸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그 자리에서.

누군가 오길 기다렸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데도 그 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육두문자 섞은 욕지거리를 속으로 무한반복하며 집으로 가는 내내 다짐했다.

이 자식 가만 안 둔다고.

다시 내 눈에 띄면 밟아!#@##%$##^고!!


최악의 첫 데이트를 남긴 그 자식.

지금은 애들 아빠로 내 남편으로 함께 산다.

그때 그냥 깔끔하게 끝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속 끓이며 살고 있다.

어떻게 한 번 잠들면 깨어나질 못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연애하는 동안은 벨소리도 못 들었을 정도로 잠들었다는 말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말이 사실임을. 그래도 괘씸죄는 남아있어서 종종 엉덩이도 꼬집고 뒤통수도 때리면서 잊어보려 노력한다. 그래도 안 되면 한 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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