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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02. 2024

오늘,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쿠라이 미나 / 빈페이지


외할머니가 유산을 남기셨다고요?

유산은 손쉽게 얻을 수 없었고 모두 골치 아픈 문제를 풀어야 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우리가 왜 같이 살아야 하는 거죠?

결국, 우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p46

"괜찮고 자시고 간에 안 하면 이 집이랑 땅을 못 받잖아?"

"네. 그리고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만, 앞으로 모든 상속이 끝날 때까지 모두 이 집에서 살아주셨으면 합니다."

p67

"그 사람은 잔소리가 많았고, 생활은 규칙적이었고, 돈도 있으면서 별로 쓰지도 않았어.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었고 빈 상자 같은 것도 수선해서 수납 상자로 쓰곤 했어. 이제 됐니?"

p112

"그 할망구랑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히니까."

마사코는 점잖고 무게 있는 생활을 했다. (...) 하지만 너무 단정했다. 리사코는 같이 있으려면 숨이 막혔다.

p285

다마키는 부엌으로 갔다. 서두른 탓에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다마키는 복도에서 웃음소리를 들었다. 봄이 오면 끝나버릴 이 시간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사는 데 서툴렀던 외할머니의 유언장이 공개되는 날.

할머니 마사코 손녀 가에, 마사코 친아들 고타로, 재혼해서 얻은 딸 리사코, 고양이 리넨, 유언집행자 다마키까지 모두 모였다.

엉뚱한 유언을 남긴 할머니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구제불능 아빠가 왔다 갔다. 어김없이 숨겨놓은 돈만 챙겨서 나간 아빠. 최악이다.

가에는 또다시 아르바이트비를 받기 전까지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설상가상 집주인은 1년 치의 집세를 받지 못했으니 반년 치를 내고 살던가, 아니면 일주일 내로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가에는 갈 곳이 없다고 사정하던 그때, 다마키가 나타났다.

다마키는 가에 에게 외할머니가 유산을 남기셨고 유언장 내용을 집행하기 위해 자신을 따라가겠냐고 물었다.

갈 곳도 없었던 가에는 그렇게 외할머니 집으로 갔고, 고타로, 리사코를 만나게 된다. 빨리 유언장을 공개하라는 그들의 성황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마키는 유언장을 읽었다.

가에 에겐 고양이 리넨을 남긴다는 할머니의 유언.

고양이를 남기셨다고?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족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고 가족 간의 정을 돈독하게 하는 결말의 드라마.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우선 외할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는 말에 처음 본 사람을 따라온 가에.

뜻대로 되는 일도 없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왔지만, 그곳은 나름대로 또 엉망진창이었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라진다.

할머니가 남긴 미션 같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


자신을 피해 다니는 고양이를 상속받은 가에.

집 안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3.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상속받은 고타로.

땅과 집을 상속받았지만, 먼 친척 16명과 유산분할 협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리사코.


외할머니의 유언장이 공개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라,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 콧물 짜는 이야기를 예상했지만 전혀 달랐다.

과거 회상씬은 자녀들의 입을 통해 들은 할머니의 고집불통 성격, 올곧은 성격 때문에 답답했다는 증언들 뿐이었다.

할머니는 남편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엄격한 잣대로 자신과 자녀들을 다그쳤고, 결국 자식들은 모두 그녀를 떠났다.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모인 그들.

서로를 비아냥대고 헐뜯고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 외할머니의 죽음까지 의심하는 그들.

끝내 확인하지 못할 진실과 의도적으로 숨긴 비밀들이 공존하는 할머니의 집.

1년이란 시간은 뜻하지 않게 서로의 아픔도 알게 했다.


그들이 결국 서로를 가족이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를 욕하고 추억하는 일은, 그들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설령 그것이 미움과 원망이었더라도.

감정의 싹이 자라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게 하는 소설.


눈물, 콧물 빼는 감동적인 서사는 없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아끼게 되는 서사는 개인주의가 판치는 요즘을 생각해보게 하는 여운을 남겼다.


따뜻한 휴먼 드라마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ㅡ사람 사는 이야기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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