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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풍이다

- 오늘 한강은

by 명재신

내가 단풍이다



너무 일찍 나서는 길이어서

밤새 떨어져 쌓인 낙엽을 볼 수가 없었으리


너의 뜨거운 그 마음

나의 붉어진 이 마음


하루 내내 아름다웠을 시간에

가을볕 따사로웠으리, 벤치에 앉았다가

단풍빛 찬란했으리, 공원을 돌아보다가


너 마음에 물이 든다

내 마음에 단풍 든다


그새 두툼해진 사람들 사이를 오가면서

더러는 귀를 닫고, 심지어 귀를 막고서는

우리는 서로 찾아다니기만 했겠구나


누군들 허세만 일고 다니랴

누군들 허풍만 일고 다니랴

다만 하루는 그토록 바빴다는 것일 뿐


어느새 단풍 드는 줄도 모르고

이제는 단풍 지는 줄도 모르고

내 흰 와이셔츠가 주름이 졌구나


문득 찾아들었을 저 단풍같은 시 구절들

노오란 잎으로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고

저기 저 길바닥에 구르고 있구나


가을이여, 바람이여, 시월이여

오늘은 내가 단풍이다

곱디 고운 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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