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이면 오산미군기지 쇼핑몰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거기는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는 송탄이 아닌 ’ 송프란스시코‘라고 부른다.
신장쇼핑몰 입구에는 오산 미공군기지를 상징하는 두 대의 커다란 비행기가 하늘 위로 이륙하며 나를 반긴다.
’ 그래~ 여기서부터 송프란시스코구나 ‘ 라며 나도 박찬호처럼 ’Um, 암~~‘하며 혀를 꼬아본다.
그 옆 건물은 송탄의 3대 버거집인 미스진 버거집이 있다.
송탄은 오래전 미군기지가 형성된 이후로 미스리, 미스진, 송쓰버거 등 다양한 햄버거 가게들이 들어섰고 그중에 미스진 버거는 외국인과 동네토박이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외지인들이 송탄에 놀러 오면 꼭 들러서 햄버거 도장 깨기를 한다는 가게이다.
20평 남짓의 가게 안은 줄을 서서 햄버거를 포장하는 사람, 메뉴판을 보며 어떤 햄버거를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오픈 주방 안은 60대의 아주머니, 그 아들과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 등 4~5명이 한 명은 패티를 굽고 한 명은 소시지, 양배추 등을 자르고, 다른 분은 홀에서 주문을 받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테이블은 4인석 2개, 2~3인석 5개로 그리 크지 않으나, 외국인들과 한국 사람들이 뒤섞여 맛있게 햄버거를 먹고 있다.
햄버거집을 뒤로하고 신장쇼핑몰 중간쯤에 내가 좋아하는 오픈형 가게인 블루오페라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 테이블에는 주황색에 파란색, 흰색 줄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특유의 곱슬머리, 노란 염색을 한 흑인여성과 빨간색 반바지, 나이키 모자, 짙은 선글라스라그를 쓰고 그녀와 대화를 멋들어지게 이어가고 있었고, 가끔 그 여성은 ”really? sure? “ 등을 얘기하며 남자의 말에 집중한다는 맞장구를 쳐 준다.
그 뒤로는 L.A. 캘리포니아비치의 시원한 바다와 모래사장 위의 야자수가 그려진 티를 입고 있는 건장한 백인 남성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잠시 뒤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을 배경 삼아 내가 좋아하는 ’ 필스너‘ 생맥주 500ml와 감자튀김을 시켜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어린 시절 베르사유 장미의 여주인공처럼 금발머리에 160m가량의 하얀색 얼굴을 한 중학생처럼 보이는 백인 여자아이가 앞서 걸으며, 뒤에 따라오는 남동생에게 얼른 오라며 손짓을 한다.
그 반대편으로는 남색 반팔에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팔뚝에는 여성의 초상이 문신으로 그려진 백인남성이 걸어가고 있으며, 길 중앙에는 가죽점퍼에 붉으스럼 한 수염, 귀걸이까지 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국인 남성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안장 위에 앉아 옆에 여성과 대화를 나눈다.
그곳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Hi, Hello, How are you? “라고 짧은 인사를 건넨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옆에 백인남성에게 인사와 안부를 물으며 송탄에 왜 왔는지, 현재 직업이 무엇이며, 누구를 기다리는지 등을 묻으며 스몰토크를 한다면 그와 친해질 수도 것 같지만 나는 영어 울렁증이 있어 그만 포기한다.
평소 아이들, 사람들과 여행, 액티 비티 등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 지산동에는 시간이 나면 언제든 둘러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주 다니던 길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건 아닐는지 괜스레 미안해진다.
차를 타고 앞만 보며 오고 가며 들어오고 나가던 빌라 주차장, 항상 바쁜 걸음으로 종종걸음 쳤던 그 길... 고개를 돌려 걸으면서 보면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과 꽃과 식물들이 나를 반겨주는데... 왜 그렇게 나 혼자만 바쁜 거였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