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부 언니가 개인전 3위로 승급하던 날, 나는 예선 탈락했다.
예선은 4명 리그전이고, 조 1, 2위가 본선에 올라간다. 3명이 2승 1패로 물렸지만 나는 세트 득실로 탈락했다. 아쉬울 법도 하건만 나의 조 3위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공이 빠르게 오든, 느리게 오든, 심지어 적당히 올 때조차 내 오른쪽으로 올 때면 모두 날렸다. 상대가 공을 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코스를 바꿔 보내면, 자연스레 다리로 연결 동작을 하며 오른쪽으로 오는 공을 쳐야 한다. 이것이 포핸드 스윙이다. 늘 연습하는 동작이지만, 여전히 허덕이고 있었다.
대회 전 몇몇 회원이 나의 ‘포핸드 스윙’의 특이점을 말했다. ‘공칠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점, 공치는 속도가 일정치 않은 점, 스윙이 가슴으로 말리는 점, 허리를 제대로 못 쓰는 점, 스윙 후에 서 있는 점’ 스윙하나에 생각해야 할 것이 왜 이리 많은지. 이번 대회는 포핸드 스윙만 잘해보자 마음먹었건만, 공이 오른쪽으로 올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 어깨는 움츠러들고 다리는 굳어버렸다. 그 조그마한 공조차 내가 못 칠 거라는 걸 아는지 유유히 내 옆으로 지나갔다.
대회가 끝나고 개인전 시상식이 열렸다. 8강에도 올라가 본 적 없는 난, 언니의 3위 상패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상패 속에는 언니의 미소와 기쁨, 땀과 여유가 담겨있었다. 시상식이 끝나자 비로소 느껴졌다. ‘아! 이제 언니와 한 달 전 대회에서 승급한 동생은 나와 다른 금강부구나’
벌써 일 년도 넘게 우리 셋은 주말 오전, 탁구장을 전세 낸 듯 연습했다. 아이를 맡기기 어려운 날이면 동생은 어린 공주님을 위해 조용한 탁구장 한편에 매트를 깔아 주었고, 공주님은 엄마가 연습할 때마다 “엄마! 이겨라!”를 외쳤다. 심지어 기계랑 할 때도 그랬다. 두 사람이 연습을 주고받는 동안 다른 한 명은 탁구장을 뛰고, 서브를 연습하며, 기계가 주는 공을 받아쳤다.
땀범벅이 돼서는 시원한 음료를 벌컥 마시며, 벌써 점심때가 됐다며 김밥,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밖에 나가 간단히 허기를 달래고 돌아와 다시 연습하기도 했다. “국가대표도 아닌데 우리가 왜 이렇게 연습하는 거야?” “맞아! 연습은 국대급이야” “무슨 소리! 유니폼도 국대야” 우리의 웃음소리는 탁구장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 가끔 주말에 나온 고수 회원들이 우리의 동작을 봐줄 때면 갖고 싶은 굿즈를 득템이나 한 듯 연습이 신이 났다. 대회가 있을 때마다 8강, 4강 3명이 동시에 승급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누구도 16강에 들지 못하고 일찍 경기가 끝난 날, 우린 탁구장 근처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기울였다. “오늘 내가 백핸드가 안 됐어. 연습했는데 경기에서 하나도 안 나오더라”, “저는 오늘도 폴짝폴짝 뛰었어요. 자세 잡고 정확히 꽂아야 하는데”, “난 박자가 꽝이야. 공도 오기 전에 쳤어. 모든 공이 좋은 공 같아.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걸까?” 그날의 대회 복기로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성토와 자기반성, 상대 분석까지 이어지며 이렇게 끝이 났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 다 아니까 더 열심히 연습하자. 다음 대회 시나리오는 어때?” 더 이상 오름부가 아닌 언니가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을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마치 어제 같은 장면들이 착착 지나갔다.
작년 12월 ‘제주시체육회장배 탁구 대회’에서 우리는 오름부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개인전에서는 미약했지만, 단체전에서 셋이 뭉치자 결과는 우승이었다. 한 명씩 시상하는 상장을 받으며 어쩔 줄 몰라했던 우리였다. 그런 우리를 축하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언니를 축하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날처럼 내가 언니 옆에 있을 수 있었다면’ 이런 날이 올 거란 걸 알았으면서 괜한 생각이 스쳤다. 동호회 간식 상자에서 꺼내든 초코 과자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옆에 있던 이온 음료도 단숨에 마셔버렸다. 또 다른 과자봉지를 뜯고 입안 가득 씹고 있었다. 나는 허기를 느꼈다. 대회가 끝난 후 사람들은 뒤풀이 장소로 갔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마침, 다음 날 아침 일찍 서울행 출장이 잡혀있었다.
‘승급할 실력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지금 못하는 건 별문제가 안된다. 다시 시도하고 연습하면 그뿐이다. 문제는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었다. 폭설로 밤새 쌓인 눈의 무게만큼이나 그곳에서 나는 가장 무거운 사람이 되고 있었다. 6월의 무더운 날,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온 것 같았다. 그녀들과 같이 뛰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로는 ‘프리 패스 승급권’이 있다 해도 올라갈 수 없다. 포핸드 울렁증을 잡아야 한다. 내가 공을 두려워한다는 걸 공이 모르게 해야 한다. 탁구 대회는 때마다 돌아올 거고 실력만 제대로 쌓는다면 걱정할 건 없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가 나를 토닥이며 말했다. “나 이제 너 승급할 때까지 너랑 연습할 거야. 연습할 준비 해” 동생도 거들었다. “언니 공치는 거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요. 계속 우리랑 치면서 연습해요.”
이제 내가 할 일은 두 가지다. 자세를 낮추고 다리가 버틸 수 있게 하체의 힘을 기르는 것. 자연스레 동작이 나올 시간 동안 시시한 나를 견디는 것.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