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감정은 언제나 제 할 일을 한다. 성실히 또 묵묵히 맡은 바에 임한다.
우울한 얼굴, 침묵, 눈물, 한숨은 우리 주변으로 하여금 토닥임을, 끌어안음을, 안타까운 표정과 눈물을 불러일으켜 함께하도록 한다.
함께 머물며 슬픔을 다뤄내도록 한다. 슬픔이 일하는 방식이다. 모이게 하고, 묻게 하고, 마음을 돌보도록 한다. 살피도록, 보듬도록, 궁금해하도록 한다.
괜찮아?
요즘 통 안 보여서
어떻게 지내?
그 관심으로부터 위로로부터 우린 마음속 상처를 다루고 한 걸음씩 슬픔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슬픔이 무겁고 깊어 더욱 침묵하고 주변의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모두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더 깊이 슬픔에 삼켜져, 슬픔의 입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복해야 한다.
그 홀로인 시간 캄캄한 시간 안에서 우린 우릴 더 깊이 끌어안게 된다. 내 팔로 나를 가득 안고, 고독과 같은 깊은 웅덩이에서, 내가 나의 편이 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내 좌절을, 내 실패를, 내 상실을, 내 허무함을 모두 끌어안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슬픔은 그렇게 내 주변이 나에게 오도록 하고, 나를 살피도록 하며, 나아가 나 스스로 나를 보도록 한다.
그 끝에 내가 이토록, 슬프도록 바라던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그 무언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갈망했는지 깨닫기도 한다.
슬픔이 일하는 법을 알았다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슬픔이 충분히 일하도록 두자. 자꾸만 슬픔을 무시하면 그는 분노가 되어 일할지도 모른다.
슬프다는 것은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안겨서 엉엉 울 대상을 찾는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안아 줄 준비가 되었는가? 누군가의 슬픔에 품을 내어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