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디언 Jul 12. 2024

까시에 누메로 카트르

(caissier numéro 4)

벌써 오후 1시다.

오전에 9:30부터  빈속에 정신 차린다고 고작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시작된 전화통화가 이제야 마무리가 되었다. 

퀘벡 정부로부터 3개월에 한 번씩 기다리는 중요한 서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감무소식이어서 사방팔방으로 수소문을 한 결과 이제는 더 이상 메일로 서류를 보내지 않고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온라인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의 편리함이야 누군들 모르랴마는 컴맹인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퀘벡 정부 사이트는 모두가 불어로 도배가 되어있으니  눈이 있어도 까막눈인 나에게는 구글 트랜스레이트를 사용해서 문서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야 해서 시간은 두 배 이상이 걸릴 것이다.

다른 도리가 없으니 일단 컴퓨터를 켜고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서 어찌어찌 계정을 만들고.. 

아! 만드는데 뭐 그리 필요한 서류와 번호와 인증절차가 많은 지 … 

벌써 지친다.

계정을 만들어서 필요한 서류를 다운 받으려고 하는데 빨간색 느낌표의 경고가 떴다.

아직은 우리가 엑세스 할 권한이 없으니 내일 전화로 확인을 해야 한단다.

요즘은 나이 들어서인지 조금만 신경을 쓰고 집중을 해서 일을 하면 금세 지친다. 

일단 여기까지 



다음날이 되어 어젯밤 웹사이트가 알려준 번호로 통화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기계음이 주절이주절이 설명을 한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불어 연속

그 인내의 끝에 반갑게 영어로 안내를 해 주는데  내용인 즉 법안 96(Bill 96)으로 인해 더 이상 영어 서비스는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예외( Exception) 조건이 있다며 해당 사항을 이야기했다. 내게 해당되는 것은 없었어서 그대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웨이팅(waiting) 음악이 나오고 간간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안내 방송이 불어로 나오고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봉쥬르(Bonjour)” 인사하며 드디어 휴먼(Human)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번엔 입이 있어도 벙어리 신세이다.


할 수 없이 불어를 못하니 영어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물었더니 쿨 하게 다른 사람을 연결해 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러기를 4번이나 반복했다.

마침내 “봉쥬르(Bonjour)”하길래 재빨리 ‘하이(Hi)’ 했더니 이 사람 “하이(Hi)를 받아준다.

반가운 마음에 사정 얘기를 하고 영어로 나의 문의 사항 말했더니 자기는 이 문제를 영어로 해결해 줄 실력이 안된다면 다른 사람을 연결해 준다고 했다.

 맙소사!

그렇게 또 하염없는 기다림 끝에 앞에 나왔던 영어 서비스 방송이 한 번 더 나왔다.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하루 종일 전화통에 붙어 있어야 될 것 같아 예외( Exception) 조건해당 사항은 1번이라고 해서 1번을 눌렀더니 조금 후에 여성 휴먼이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 분은 영어 서비를 제공해 주겠다고는 했으나 그녀의  불어악센트가 너무 심해서 도대체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친절한 그녀는 열심을 다해서 설명을 했고, 나는 거의 나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여 추측해서 절반만 이해했다. 마침내 ‘메르시 복구(Merci Beaucoup)’ 연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 전화기와  머리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기계도 사람도 과부하가 걸린 것일까?



불어(French)!

까짓 껏 배우면 되지 뭐가 어렵냐고 말하실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배우면 되지.

근데 12년이 되도록 그 언어와 친해지기가 나는 참 어렵다.

그래서 이런 불편함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에서 갑자기 뜨거운 액체가 흐른다.

힘들었나 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은퇴하면 퀘벡을 떠나리라!

부단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한 번은 남편과 비즈니스 세무보고를 위해 레브뉴 퀘벡(Revenue Québec:퀘벡 정부 기관으로 모든 주정부 세금업무를 보는 곳이다.)에 찾아갔다. 

“봉쥬르(Bonjour)! “

입구에서 안내원(receptionist)이 관례적인 인사를 하고 무슨 일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 

물론 불어로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하이 (Hi)!라고 인사를 하자

 안내원(receptionist)은 바로 언어를 영어로 바꾸어 주었다.

 세금 보고서 작성, 세금환급, 세금 내는 횟수 등등 여러 관련 업무를 보러 왔다고 하니 들어가서 중문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전광판에 번호가 나오면 창구로 가서 담당직원에게 말하면 된다고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었다.  대기실에 앉자마자 전광판에 4번(caissier numéro 4)이 번쩍거렸다. 4번 창구(caissier numéro 4)로 가니 30대 흑인 여자자 우리를 퉁명스럽게 맞이한다.

 “봉쥬르(Bonjour)! “

나는 영어로 나의 업무를 설명하자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불어로 자기는 영어를 못하니 번호표를 다시 뽑아서 다른 창구로 가라고 했다.

난감한 건 그 창구 직원만이 아니라 우리도 당황스러웠다. 할 수 없이 다시 가서 번호표를 뽑았다. 

이번엔 5번(caissier numéro 5)이다. 우리는 당연히 다른 사람의 창구라고 생각했고, 다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처음처럼 곧바로 전광판에 5번이 번쩍거렸다. 

창구에 가보니 다시 그 4번 창구직원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당황스러운 눈빛을 마주쳤다. 

그러기를 3번이나 반복하고 마침내 나는 영어로 말하고 그녀는 불어로 말하고 해서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눈이 있어도 읽을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으며, 입이 있어도 벙어리 신세로

아! 계속 이곳에서 살아야 하나?

불어로 살아남기 정말 어렵다.


오늘 수고한 나를 위해 건배!

이전 11화 까막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