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가지의 절대 규칙이 있다.
“해가 떠있는 동안은 물을 포함한 어떠한 음식물의 섭취도 금지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바로 무슬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달, ‘라마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마단이란 *이슬람력으로 9번째의 달로, 무슬림들은 이 달을 천사 가브리엘이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에게 코란(무슬림 경전)을 가르친 매우 신성한 달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라마단 한 달 동안은 금욕을 하면서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물을 포함한 모든 음식물의 섭취를 금지한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인터넷 검색을...)
우리에게 음력이 있듯이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라마단은 이것을 기준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매해 라마단의 달이 다르며, 라마단의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입사했던 2014년도에는 아주아주 더운 여름이 라마단이었는데, (참고로 카타르는 여름에 50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폭염을 선보인다.) 점점 빨라져서 올해는 4월 초가 라마단이 되었다.
물론 노약자 및 병이 있거나 임산부, 어린이 등은 금식에서 제외되며,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금식이 면제된다. 하지만, 몸이 쾌차하거나, 여행을 끝낸 경우, 라마단이 끝났더라도 금식을 하지 않았던 기간만큼 다시 금식을 해서 정해진 날짜를 채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고로 요즘 젊은 세대 중에는 (무슬림계의 MZ 세대라고나 할까...) 금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금식 해제를 ‘이프타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경우 오후 6시-6시 반 정도부터 금식이 해제되어서 새벽 2시-4시까지 먹을 수 있다. 이게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일몰 상황에 따라서 매일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무슬림들도 매번 인터넷으로 오늘의 금식 해제 시간을 찾아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 즈음, 아잔 소리와 함께 이프타르 즉, 금식 해제가 선언되면, 무슬림들은 식사를 시작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빈속에 갑작스러운 식사로 인해 탈이 나거나 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추야자, 라반(요거트) 등으로 속을 달랜 후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는데, 하루에 허용된 유일한 식사시간이기에 사람들은 천천히 그리고 많은 양의 음식을 새벽 늦게까지 즐긴다. 그래서 외려 라마단에 살이 찌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라마단과 이프타르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행사이기에, 나는 라마단이 시작되면 무슬림 친구들에게 항상 먼저 라마단 축하 인사를 건네고,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그들과 이프타르를 같이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내가 하루 종일 굶고 가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프타르를 같이 신나게 즐길 정도의 식사 텀은 지키고 간다.)
나는 호기심이 매우 많은 편이라서 무슬림의 금식을 한번 따라 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하고는 바로 포기했다. 사실 금식보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다. 특히나 가만히 있어도 목이 마른 사막 땅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라마단 동안은 공공기관을 포함한 거의 모든 회사들은 단축 근무를 한다. 카타르는 원래 아침 7시-오후 3시 정도가 일반적인 근무시간인데, 회사마다 유동적이지만 자체 단축 근무를 하거나,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여서 교대 근무를 시행한다.
지상직 시절에는, 회사에서 라마단 동안 무슬림 아이들을 주로 오후 시간으로 배정해서, 근무를 조금 한 후 이프타르를 맞을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오전 근무 시, 근무 내내 굶으면서 일을 해야 하므로, 그들에게는 더욱 힘든 라마단이 될 수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라마단 기간 동안 공공장소에서 물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행위, 음악을 트는 것을 금지하고, 레스토랑과 카페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등 꽤나 엄격한 분위기의 라마단을 보냈고, 그래서 나도 200ml짜리 조그마한 물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화장실에 가서 몰래 물을 마시고, 같이 지냈던 플랫 메이트 중 한 명이 무슬림이라서, 라마단 동안 최대한 조심해서 (음식 냄새 철저히 환기, 음소거 모드로 요리, 음악소리 들리지 않기, 지나다니는 길에 물병 보이게 두지 않기 등) 지내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문화도 있구나,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게 즐겼던 기억이 난다.
또한 라마단 시작 바로 전에 늦게 장을 보러 가면, 물건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휑한 진열대를 볼 수 있을 만큼, 다들 라마단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렸다. 그래서 지상직 생활 4년 동안은 항상 라마단 일주일 전에 대대적으로 라마단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나의 라마단 준비는 금식 준비가 아니라, 굶지 않겠다는 준비이다. 이프타르 전까지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을 것을 대비, 비스킷, 라면과 같은 음식 및 물을 미리 사서 캐비닛과 냉장고에 그득그득 쌓아둔다.)
이렇게 라마단 맞이 장 보기가 습관이 된 나는 2022년 라마단 시작 전에 장을 보러 갔다가 조금은 새롭고 낯선 변화를 마주했다.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라마단 동안의 새로운 영업시간을 입구에 부착해두었는데, 꽤나 많은 곳이 라마단에도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금식 시간에 음식 배달도 가능하다!!!!)
얼마 전, 같이 비행했던 크루가 사우디에서 라마단 규제들이 완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었는데(참고로 사우디는 이슬람교의 메카(이슬람교의 성지)라서 매우 엄격한 룰을 따른다.) 카타르도 그 변화에 동참하는 것인가 싶었다.
뿐만 아니다. 비행 서비스의 경우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손님들에게 나가는 서비스 카트에 술을 올리지 않았는데, (요청하신 분께는 제공했지만, 카트 위에 올리지 않고, 안 보이는 곳에서 따라서 서빙했다.) 올해는 라마단 기간에도 평소와 같은 서비스 카트가 나간다. (이 소식을 들을 우리들은 정말 진심으로 놀랐다.)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조금씩 완화를 해주는 것인지,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니 조금씩 규제를 풀어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변화들이 새삼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라마단 문화가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중에 내가 파파 할머니가 되어 카타르에 다시 놀러 왔을 때 즈음에는 라마단 금식이라는 문화 자체가 아예 사라져 있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도 되면서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올해는 조금은 여유로운 라마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도 라마단이 끝나기 전에는 꼭 친구들과 이프타르를 함께 하며, 라마단 분위기를 즐겨야겠다.
라마단 카림!!! (‘평안한/은혜로운/즐거운 라마단 되세요’라는 의미의 라마단 인사말입니다.)
라마단 기념해 라마단 장식을 한 쇼핑몰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로 라마단 장식을 했다.)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