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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D BUTTON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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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Oct 30. 2022

제12장. 공지사항

소설 RED BUTTON


 “한성아, 오늘 뜬 공지사항 봤어?”

 친구가 하굣길에 한성이 어깨를 잡아끈다.

 “아니, 나 엄마가 핸드폰 어플 제한 걸어놨잖아, 집에서밖에 못해”

 “이것 봐봐.”

 친구 핸드폰 속에 뜬 공지사항은 한성이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한다.     



-공지사항-     


 유저님들께 안내 사항을 전달합니다.     


 최근 부모님의 명의를 도용하여 성인 버전으로 로그인하는 미성년자들이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부모들님들의 항의와 고소·고발로 저희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유저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성인 버전을 이용하고 계시는 미성년자분들은 계정을 삭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하여 성인 버전을 이용하는 미성년자를 적발할 예정이오니, 그전에 미리 계정을 삭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 캐릭터 설정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채팅창 검색을 통해 미성년자라고 판단되면 계정에 등록된 휴대전화로 전화하여 본인 여부를 확인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캐릭터가 좋은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회사에 힘을 실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ETAVERSE VILLAGE 운영진 올림.


 [끝]  



 “아, 왕 짜증이네. 애들 버전이랑 호환 안 되게 키워 놨는데….”

 한성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벌써 두 달 넘게 키워온 녀석들을 삭제해버리기가 너무 아깝다.

 “야, 나는 어저께 저거 보고 대충 옮길 수 있는 건 다 옮겨 놨어. 너도 빨리 집에 가서 처리해”

 “됐어, 난 어른스럽게 다 설정해놨어, 애같이 행동한 적 없어. 채팅도 거의 하지 않았고, 난 걸릴 수가 없어.”

 한성이가 배짱을 튕긴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한다.

 “너, 그러다가 다 날린다.”

 “난 졸보가 아니거든요?, 용감한 시민의 아들이거든요.”

 “알았어, 그럼 잘해봐. 난 분명 경고했다.”

 한성이가 피식 웃는다. 잠시 걱정하긴 했지만, 시련 앞에 당당해진 자신을 느낀다. 요 몇 달간 마음가짐이 성장한 기분이다. 덕분에 키도 조금 자란 것 같다.     


 윤미는 오전만 하고 퇴근했다. 밑에 직원 두 명도 같이 퇴근시켰더니, 둘 다 기쁜 표정으로 퇴근한다. 덩달아 뿌듯하다. 그래도 이렇게 사업을 함께 키워준 고마운 직원들인데 이렇게 기뻐한다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일찍 퇴근시켜줘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오늘은 용대의 기일이다. 제사를 올릴 식구는 한성이와 윤미 단둘뿐이지만 그래도 손수 제사상을 차리는 건, 용대에 대한 존경심이기도 하다.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것만큼은 평생 잊지 않으려 한다. 시장에서 가장 좋은 과일을 고르고, 나물을 무치고, 조기의 살이 떨어지지 않게 잘 굽고, 전을 부치고, 닭을 삶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기분 좋은 부산스러움이다.   

  

 ‘드르르륵 탁’

 “한성이 왔니?”

 “어, 엄마 오늘 일찍 왔네.”

 “오늘 아빠 기일이잖니, 밥은 학교에서 먹고 왔지?”

 “네, 와, 고기전 이거 맛있겠다.”

 “원래 제사상 올리기 전에는 안 되는데, 아빠도 분명 먹으라고 할 거야, 먹고 싶은 만큼 집어먹어, 너가 집어 먹을 줄 알고 여유 있게 부쳤어.”

 “역시 엄마야, 엄마 그럼 고생해요.”

 한성이가 고기전 몇 개를 손으로 우걱우걱 집어 먹더니 가방을 던져 놓고,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얘, 엄마 좀 도와줘!”

 “나 지금 바빠!”

 윤미는 한성이가 게임하러 들어간 걸 알지만, 오늘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싶지 않다. 용대가 지켜보는 날이니 그냥 웃는 한성이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엄마, 오늘도 울어?”

 제사를 시작하는데 윤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성이는 곧바로 알아차리고 물어본다.

 “엄마 안 들키려 했는데, 역시 우리 아들 바로 알아차리네? 이럴 때 울지 언제 우니?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자, 제사 지내자”

 윤미는 눈물이 제사음식에 떨어지지 않게 옷소매로 훔치고 조용히 향을 피운다. 그리고 절을 한다. 한성이도 따라 절을 한다. 밤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가고 있었다.    

 

 “엄마, 엄마는 왜 그 사람 용서해줬어?”

 윤미 품에 안긴 한성이가 넌지시 물어본다.

 “누구?”

 “아빠 친 사람. 술을 먹고 운전한 사람 말이야”

 “아…. 음,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까?…. 음, 물론 술을 먹고 운전한 건 잘못된 거지. 그런데 경찰들 말로는 술은 마셨는데 아주 인사불성은 아니랬어. 거기는 자동차 전용 도로였었고,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도 그 상황이었으면 사고 낼 수 있었을 거래. 아빠가 앞에 사고 났던 차 운전자 구하려고 따로 표시한다거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구조하다가 2차 사고가 난 거잖아. 아빠가 살아있더라도, 아마 아빠는 그 사람 용서해줬을 거야. 어쨌든 아빠가 잘 못 한 부분은 있는 거잖아. 아빠는 넓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어.”

 “엄마도 아빠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그럼 비슷하니까 결혼했겠지?”

 한성이는 따뜻한 엄마 품에 더 깊이 와락 안겼다. 아빠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엄마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성인 버전 게임을 걸리더라도 엄마는 너그러이 용서해줄 거라고 속으로 미리 안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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