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발견한 연대
청소년 쉼터에 입소한 지 몇 달이 지난밤, 나는 부친을 고소하기 위해 불철주야 발품을 팔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쉼터 친구가 이렇게 조언했다.
‘경찰 개무능하니까 기대하지 마.’
그냥 무능한 것도 아니고 개무능하다니! 당시의 나는 친구의 뼈 있는 말을 흘려들었다. 솔직히 막연히 잘 될 줄 알았다. 어머니도 내가 아버지를 고소하는 걸 도와주리라 생각했고,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다면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 부친을 불태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절망적인 현실만 알 뿐이었다. 가정폭력은 증거가 남지 않는 만큼, 고소가 쉽지 않다는 경찰관의 안내가 있었다. 경찰관이 더없이 인간적인 태도로 물었다.
“어렸을 때 쓴 일기 있으세요?”
어렸을 적부터 작성한 일기는 중요한 증거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이건 내 잘못이다. 미리 가정폭력을 당할 것을 예상하고 철저하게 일기를 작성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너무 어리석었다. 만약 주위에 어린아이가 있다면 조언해라, 일기를 미리미리 작성해 놓는 편이 나중에 고소할 때 도움이 된다고.
내 첫 고소는 좌절되었지만,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설득해 경찰서로 데려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증언에 소극적이었다. 다시 한번 실패했다. 증거가 없으니 당연한 이유였다.
어머니는 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거절했다. 본인의 인생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어머니에게는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인한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
부친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거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도적으로 부친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려했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인 만큼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최악일 테니까. 내가 부친을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하지도 않고,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도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들의 침묵 속에서 우리를 연결 짓는 커다란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리 중 누구도 죗값을 받아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