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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Oct 22. 2023

삶에 지지 말고 춤추며 살아가기로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마지막


어느 날 눈빛이 선명해졌다.라는 이야기를 가족에게 들었다. 자신감이 생긴 느낌이라고도 했다. 늘 자신 없고 우울했던 지난 시간들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게 눈으로도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올해 들어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내 속은 편안했기에 아마 그 마음이 태도로도 드러나는 것 같다.라고 답변을 했지만 실제로 모든 생활이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피부염이 여름 지나면서 심각해져서 밤에 많이 울었다. 내 외모에 대한 수치심과 영원히 이런 상태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몇 번을 마주했는지 모른다.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데 조심스럽고,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는' 상태에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던 나날도 많았다.


돈은 또 어떤가. 당장 내년엔 집안에 변동이 생길 예정이고. 한 푼 한 푼 모아 임용고시 공부하는 데 쓸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늘 돈은 쪼들린다. 다달이 가계부를 써도 부모님한테 지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돈을 벌어야 하나 막막할 때도 많다.


내가 아주 체력이 튼튼하면 몸 쓰는 아르바이트라도 할 텐데.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해가며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터라 나는 몸이 아플까 내 컨디션에 자주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입장이다. 늘 건강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 없이 정기적인 월급 받으며 주말에 멀리 놀러 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신적으로는 늘 건강했다. 실습용으로 실시했던 심리검사 결과는 당신의 정신은 문제없이 건강하다고 말했다. 내가 힘든 사실을 꾹 참고 모른 척 숨겼다면 결과에선 한 두 가지 힘든 마음을 누르고 있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건강하고, 성숙하며, 심리적 자원이 많은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질적으로 나는 관계와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타입이고, 환경적으로 내 적성을 이해받지 못하는 집안에서 컸다. 혼자 잡다한 생각도 많고, 그 생각이 만들어낸 우울과 열등감 속에서 허우적 대기도 쉽고, 나보다 남 일에 무심한 형제를 보며, 그런 형제를 늘 좋게 평가하는 부모님을 보며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해서 지금 내 삶이 괴로운 거라며 삶을 리셋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근데 그게 다 뭐 어떤가. 내가 이런저런 아무리 땅굴을 파고 있다 한들. 내가 피부가 안 좋아서 슬프고 괴로운 밤들이 있었다 한들. 당장 돈 걱정, 몸 걱정에 마음이 초조하다고 한들. 아직 그 걱정은, 최악의 결말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에겐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가 펼쳐진다. 내가 주의를 고민에 두지 않으면 그 고민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고민하는 괴로움도 이 세상에선 사라진다. 이제는 그걸 알고 있다. 머릿속 또 걱정과 근심, 열등감이 찾아오면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바라보고 놓아주면 된다는 걸. 그리고 내게 주고 싶은 일, 내가 행복한 일로 내 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을. 내 머릿속을 새롭게 채워나가는 것을.


매일 아침 오늘 나는 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니? 명상을 하며 묻는다.

뿌듯함, 즐거움, 명랑함, 사랑, 다정함.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가치를 하나 정한다. 그것으로 나의 하루는 이미 충분하다. 생각이 많을 땐, 짜증과 불만이 올라올 땐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마음은 절대 대단한 걸 원하지 않는다. 아주 잘생긴 애인도, 고층의 넓은 평수 아파트도, 수억 현금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좀 쉬고 싶다. 햇빛을 보고 싶다.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이 마음을 이해받고 싶다고 답해준다.


'내가 원하는 성격'이 되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지금 내가 추하게 생각했던 나의 여러 면모들이 있어도 나는 꽤 개성 있고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내면으로 알아차린다. 나는 힘을 빼는 게 그렇게 어렵다. 지금까지 늘 삶과 치열하게 싸워왔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닥친 고난을 나는 극복해 내고야 말겠어.라는 불굴의 의지를 안고 살았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몸과 마음에 힘을 뺀다.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을 무찌르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언젠가 지나갈 비바람이고 폭풍인 것을 안다. 때로 뒤로 물러섰다가, 조금 옆으로 비켜섰다가, 걸음으로 앞서 걷다가 하면서. 춤을 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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