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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 Oct 17. 2024

비엔나 소매치기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비엔나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다

10여 년 전 비엔나에 간 적이 있다. 그때는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의 단원으로 갔었는데 공연을 하고 일정 중에 남는 시간에 비엔나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쇤부른 궁전, 시민공원, 벨베데르 궁전, 오페라하우스 등을 구경하였다.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이고 세계인이 가장 살기 좋아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귀국하기 전 날 나는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 혼자 따로 움직이기로 하였다. 목적지는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상궁(상궁, 하궁이 따로 있다)
쇤부른 궁전

     

우리가 묵은 숙소는 지퍼스트라세(Zippererstrasse) 역에 가까운 심스호텔이라는 곳이었는데 바로 앞에 트램도 있어서 교통이 좋았다. 숙소에서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는 지하철(U- bhan)을 타고 내리면서 나는 곳곳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였다. 처음 가는 길이라 혹시 돌아올 때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Volks-theater 역

                                                          

지하철(U-bhan)을 타고 Volks-theater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이 마주 보고 위치해 있다. 자연사박물관의 물량은 엄청났다. 선사시대의 유물이나 화석부터 시작하여 현대 우주의 암석까지 인류역사에 있어 모든 과정을 총 망라하는 박물관이었다. 차근차근 보려면 며칠 걸릴 것 같았다. 묄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기억에 남는다. 비엔나 인근 묄렌도르프 지역에서 발견된 비너스 모양의 작은 물체가 무려 B.C 30000년 전의 것이라고 하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밀로의 비너스 같은 팔등신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작은 인형처럼 생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이다.

묄렌도르프의 비너스 (사진출처, 위키백과)


미술사 박물관 전경(당시 외부 공사 중이었음)
자연사 박물관(공룡뼈)

                                                                                                                

자연사 박물관(수성의 암석)

참으로 좋은 것은 영국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처럼 인파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관광객이 너무 많아 차근 차근히 살펴보기 어렵다. 그런데 비엔나 자연사박물관이나 미술사 박물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렇게 유명한 박물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직 여행 시즌이 아니거나 평일이어서 그럴까, 나는 비엔나에 가기 전에 ‘뮤지엄아워스(museum hours)’라는 영화를 보면서 미술사박물관의 분위기를 미리 살펴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비엔나미술사박물관을 배경으로  중년  남녀의 만남을 스토리로 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미술사박물관의 안내원인 남자가 박물관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 속에서도 박물관 안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영화를 촬영하느라 다른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하였는지도 모른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몇몇의 관광객이나 아이를 동반한 엄마인 듯한 모습이 보일뿐 단체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단체 관광객이 오기에는 선호하지 않는 장소일 것이다. 어디를 가나 단체관광객이 많으면 북적되게 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구경을 마친 후 빌린 휠체어를 반납하고 박물관 문을 나오는데 한 여자 직원이 배웅을 나온다. 나는 배웅하않아도 된다고 하니 그녀는 ‘나의 의무’라고 답변한다.


그날 오후 나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분한 일을 당하였다.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하였던 것이다. 그날 나는 일찍 오후 5시경에 박물관을 나섰다. 저녁에 숙소 앞에서 일행들과 저녁을 먹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조금 걸어서 Volks-theater역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좀 비좁은 편이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아랍계 계통의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묻는데 ‘슈테판 성당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라는 의미 같다. 나는 이 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바로 슈테판 성당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치 이 동네 지리를 잘 안다는 듯이 '여기서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승강장으로 내려왔고 내가 타고 갈 방향의 전철이 바로 도착하였다. 그 방향의 전철은 슈테판 성당으로도 간다. 그는  나에게 또다시 ‘이 전철이 슈테판 성당으로 가느냐’고  묻는다. 나는 또 친절하게 그렇다고 답변해 주었다. 그런데 그는 이 전철을 타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는 에스켈레이터를 타지 않는가!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멍해졌다. 슈테판성당으로 가는 길을 두 번이나 물은 사람이 그 전철을 타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간다? 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가슴 앞 목에 걸린 작은 가방을 미친 듯이 뒤졌다. 스마트폰도 안 보이고 여권도 안 보인다! 나의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그가 소매치기한 것이 틀림없다. 지금 그는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클러치를 짚은 몸으로 따라갈 수가 없다. 성급히 따라가다 에스켈레이터에서 구르면 나만 위험하다. 너무나 먹먹하여 입에서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어... 어... 어..."


나는 침착하기로 했다. 스마트폰은 포기해야 하고 혹시 여권이라도 숙소에 있으면 다행이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소매치기범이 유유히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상황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데  제정신이 아니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억누르고 정신없이 숙소에 와보니 다행히 여권은 호텔에 있었다!


그날 나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나서 스마트폰 화면에 로그인되어 있던 네이버, 다움, 카카오 등의 접속을 log out 하는 일이 급했다. 호텔 카운터에서 태블릭피씨를 빌려서 그 작업을 하느라 입이 바짝 마르기도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시 엘리베이터에 탄 아랍계 범인은 2인 조였다. 한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걸어 주의를 다른 데로 분산시키고 다른 사람은 슬쩍 손을 내밀어 내 가슴 쪽에 걸쳐 있던 가방을 뒤져 바로 눈에 띈 스마트폰을 훔친 것으로 생각되었다.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한 덕분에 그때 찍은 사진은 몽땅 사라져 버렸다.(당시 가져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몇 개의 사진만 남아 있다.) 스마트폰을 돌려주지도 않아도 사진 만이라고 돌려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 부근의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였지만 경찰관들은 하루에도 그런 일이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난다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매치기를 당한 이후 나는 외국에 나가면 걷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용 가방이나 주머니를 만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들이 언제 귀신같이 나의 물건을 빼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엔나 소매치기는 참으로 공평하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던 차별하지 않고 덤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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