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천에 둘러싸인 아빠와 우리는 그렇게 이동을 했다. 흰 천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아빠를 바라보며 꿈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이건 현실이 아닐 거다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현실이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내가 상주이니까 이제 난 엄마를 동생을 아빠 대신 보살 피고 책임져야 하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상 주니까 정신 차리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동생은 빈소를 결정하러 갔고 난 안치실에서 흰 천에 둘러싸인 아빠가 우리 아빠가 맞다고 확인하고 서명을 했다. 아빠의 얼굴은 아까 사망 선고받았을 때와는 조금은 달리 실눈을 뜨고 있었으며 환자 복이 아닌 엄마가 미리 가져다 놓았던 체크 셔츠를 입고 계셨다. 그게 아빠의 마지막 옷이었다. 아빠를 확인하고 안치실 안으로 모시고 난 빈소로 왔다. 동생은 아빠 영정 사진과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갔고 나와 엄마는 장례식장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렇게 10분을 앉아 있었을까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재단에 놓을 꽃, 음식, 음료수를 결정하라고 사람들이 오고 간다. 넋을 놓고 앉아 있다 얼마 전 엄마를 잃어 나보다 먼저 장례를 경험했던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라고 너의 슬픔이 이용당할 수 있다고... 정신을 최대한 찾으려 하고 이것저것을 결정했다.
잠시 후 아빠와 엄마가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과 교회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영정 사진조차 없는 장례식 장에 제일 먼저 교회 분들이 와주었고 뒤를 이어 친척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빠 형제들도 왔다. 친 사촌동생들도 왔다.
둘째 작은 아빠의 아들들은 나한테 와서 말했다. 3일 내내 같이 상주 노릇 해주겠다고...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가 항상 이 둘에게 교육했었다고 했다. 아빠 형제들 중 아들이 있는 집은 이 둘째 작은 아빠 집이었기에 할아버지가 이 둘에게 항상 신신당부했었나 보다, 우리 집엔 지금 여자들밖에 없었기에 그래도 누군가 도와줄 남자들이 필요했다. 물론 엄마가 부탁한 이종 사촌 형부가 있었지만 형부는 말했다. 아무래도 친 사촌이 도와주고 앞장서는 게 나을 것이라고 그렇게 우린 사촌들의 도움을 받았다.
얼마 지나 동생이 아빠가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가져왔다. 그 사진을 보니 아까 임종할 때의 아빠와 안치실 들어가기 전의 아빠와는 다른.... 항상 우리 곁에 있던 아빠의 얼굴이었다. 그래서인지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사진이 오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이모들 사촌들을 맞이 하며 같이 울었다.
장례식 첫날이 지나고 있었고 밤에 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아빠를 보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앞에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한참 앉아 있다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썼다. 그래서 그날의 기분을 남기고 싶어서 몇 자 적었다.
모두가 잠이 들었던 그 시간 난 아빠를 생각했다. 난 어떤 딸이었으며 아빤 나에게 어떤 존재셨는지.. 그리고 오늘 왔던 사촌들 이모들이 기억하는 내가 모르고 있던 아빠의 세상에 대해 들었다. 아빠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한자 한 자 적어 나갈 때마다 눈물이 계속 났다.
아빠는 이제 내가 손 잡고 싶어도 전화하고 싶어도 같이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내 곁에 내가 원할 때 볼 수도 없는 그런 존재로 바뀌게 되었다. 다정했던 아빠는 더 이상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수도 없고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런 전혀 다른 존재로 남게 되었다.
아빠는 모든 것을 계획한 것 같았다. 내 워크숍이 무사히 진행되길 기다리신 것 같고 사촌들이 모두 올 수 있는 이번 주 일요일로 그렇게 날짜를 정한 것 같았다. 아들이 없는 우리 집 남자 상주 노릇을 해주기로 해 준 사촌 형부도 다음 주에 출장이 잡혀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사촌 오빠는 지난주에 일이 있었으면 본인도 출장 중 이어서 아마 못 왔을 거라고 했다. 또 다른 사촌 오빠는 본인이 상주 노릇 해 주려고 했었다고 하며 서로들 뭔가 해주고 싶어 했고 우리 둘째 이모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아빠를 만나러 와주셨다.
이모들은 아빠한테 너무 고마웠다며 아빠에게 인사하며 울고 계셨다. 나도 같이 울었다.
저마다 우리 아빠와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 었다. 다정했던 아빠는 먼저 남편을 잃은 엄마의 언니들을 모시고 이곳저곳 다니며 맛있는 것 같이 먹고 때 되면 꽃 보러 단풍 보러 가곤 했다. 아빠가 기사 노릇 하며 넷째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10년을 그렇게 3명의 이모들에게 잘했던 아빠였다. 그리고 외 사촌 오빠가 수술을 하고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고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아빠가 10일 이상을 아이들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왔었다고 했다. 외사촌 언니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집에 놀려오곤 했었는데 오는 손자들을 너무도 예뻐해서 20대가 된 아이들이 우리 아빠에 대한 좋을 기억을 가지고 찾아왔다. 아빠는 너무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 아빠의 마음이 나한테 도 왔는지 내가 이렇게 오래 아이들을 좋아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빠의 이 마음이 나한테도 전해져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난 이렇게 다정한 아빠를 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