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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delion Oct 23. 2022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무뎌질 거라 생각했다. 다른 상처들이 그랬듯이…

하지만 부모와의 이별은 그게 아니었다..

물론 매일 통곡하듯이 울진 않는다. 문뜩문뜩 찾아오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은 이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슬픔이었다. 마음 한편에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가 훅 하고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 슬픔은 짧게 머물기도 하고 길게 머물기도 한다. 후회와 함께… 여운이 너무 길 때는 일주일이 가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 슬픔이 올지 가늠이 안된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고 장례가 힘들어 장례가 끝나자마자 아파서 누워 있다 보니 몰랐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아빠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그냥 꿈만 같았다. 모든 일이.. 그냥 잊고 싶어서 그리고 나의 흔들림, 나의 슬픈 마음, 힘듦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하는 곳에서는 일에만 열중했다. 중간중간 울컥울컥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이런 마음들을 들키기 싫어 더 크게 웃고 더 힘차게 버텨 나갔다. 그러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자주 무너졌다.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다 퇴근길에는 하루 종일 주고 있던 그 힘이 풀어졌다. 어떤 날은 슬픔이 가슴에 한가득 차 있어서 아침부터 그 슬픔이 주체할 수 없어 출근길에도 눈물이 났다. 그땐 그냥 울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지 말든지 울었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었다. 퇴근길에 두어 달 동안 입원해 있던 아빠한테 전화를 했었다.  그 기억이 생각나서 또 퇴근길마다 눈물이 났다. 아빠와의 대화 내용은 매일 한결같았다. 내가 아빠한테 '아빠 오늘은 어때?',  아빠는 나에게 '저녁 먹었냐? 왜 이렇게 늦게 퇴근하냐? 힘들 텐데 집에 가서 얼렁 쉬어라' 이 말을 매일 했다.  1분 남짓 한 통화를 하고 끊고는 했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매일 울며 하나씩 아빠의 삶의 흔적을 지워 나가야 했다. 아빠의 핸드폰, 차, 은행계좌, 보험들 이런 것들을 정리하고 7월 여름휴가 기간 내내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모든 곳에 아빠의 흔적이 있었지만 그걸 애써 무시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안경이 말썽이었다. 올해 설에 아빠가 사준 마지막 선물인 그 안경, 그 안경테가 아빠 돌아가신 날 나사가 빠져 고쳐 썼었는데 이번엔 나사 끼는 부분이 아예 부러져버려 안경점에 가서 안경테를 새로 했다.  부러진 안경테는 그대로 가지고 왔다. 아빠가 준 마지막 선물이었기에.... 그리고 그날도 또 엄청 울었다. 


지난 8월 아빠의 생신이 있었던 달.. 아빠를 만나러 이모랑 엄마랑 동생이랑 아빠를 보러 갔었다. 유골함 앞에 마침 아빠 사진과 이름, 출생일, 사망일이 표기된 명패가 제작되어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아빠 사진과 유골함을 같이 보고 있자니 울컥하였지만 꾹꾹 목까지 차오는 슬픔을 누르고 있었다.  엄마와 이모가 아빠한테 보고 싶다고 하시며 우셨다. 그리고 이모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는 말과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하시며 우셨다.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고 현충원을 나와 저녁 먹으러 가는 길 내내 울었다. 

추석에는 아빠 생각이 너무도 많이 났다. 아빠가 좋아하던 고기 전을 부치면서 아빠 생각이 났다. 우리가 한참을 전을 부치고 있으면 아빠는 손으로 집어 드시고 했고 그럴 때마다 나와 동생은 '아빠'를 소리치며 부르며 손 씻고 드시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럴 사람이 없다. 조용히 전만 부쳤다. 아빠의 부재는 마치 송편을 사러 나갔다 오실 꺼라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빠가 송편 사 가지고  '송편 사 왔다'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밥을 먹으며 이번 추석에 부친 전이 맛있었다. 난 아빠가 많이 좋아했을 거다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아빠가 그리웠다. 커피를 사서 커피 케리어 담긴 4개가 아닌 한자리 비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빠가 또 생각났다. 그렇게 추석 준비를 하고 아빠를 만나러 가서 이번엔 좀 담담하려니 했지만 웃고 있는 아빠 사진을 보니 또 눈물이 나서 벤치에 앉아 동생과 아빠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또 울었다. 


벌써 아빠를 잃지 4달째 … 모든 건 그대로인데, 아빠는 안 계신다… 

이런 생각이 들 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간이 지나도 슬픔은 여전하고 아빠에 대한 빈자리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간다. 

그리움의 깊이가 계속 커져만 간다. 


나의 인생 중 너무도 힘들었던 폭풍과 같은 올봄, 여름을 겪고 나니 요즘 하루가 조용히 지나가는 게 어색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한바탕 휘몰아친 지난 몇 개월이 꿈같기도 하고,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넋을 놓고 그냥 무작정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폭풍 전야 같은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이렇게 평온한 하루를 보내도 되는 걸까? 또 얼마나 힘든 일이 오려고 조용한 걸까? 


그래서 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나 스스로 제안하고 내가 나를 자꾸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뭘 하며 지내야 하는지 모르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지 않고 어딘가 몰두할 무언가를 자꾸만 찾고 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매일매일 안고 살고 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안정된 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폭풍이 휘몰아치고 가고 나니 또 나에게 이런 폭풍들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건 아무 때나 나에게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드니 힘을 조금 빼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작은 것에 너무 연연하며 아등바등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제 뭐든 다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강풍이 불어와도 꿋꿋하게 걸어 나갔는데 모두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때도 위태롭지만 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못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강해진 거 같다.. 아빠가 나에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 강하게 살아 남기... 

지난봄 보다 여름보다 2022년 가을의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맞설 준비도 되어 있다. 



아직 아빠에 대한 그리움, 다정하지 못한 딸이었다는 후회가 있지만, 지나간 것 어찌 하리,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 밖에는.... 

괜찮아지는 대신 하루하루 무뎌져 가고 있는 것 같고, 이걸 잊으려 날 나 스스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또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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