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으로 같이 달리자.'
'매일 몇 시에는 밖으로 나오자.'
'늙어도 우리 달리기는 포기하지 말자.'
'비 올 때만 빼고 우리 꼭 달리는 거다?'
뭐 이런 다짐이나 약속으로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은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퇴근한 나와 달리기 위해 거래처에 보낼 이메일을 임시저장해 놓고 노트북을 닫았다.
무릎 통증으로 맘껏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남편은 걷다 뛰다를 반복하고, 나는 매일 3~5km를 뛴 후 동네 술집 테라스에 앉아 안주 없이 생맥주를 한 잔씩하고 걸어 들어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아직은 더운 초가을이라서 저녁에 밖으로 나가는 것에 부담이 없지만, 날이 추워지면 유혹이 생길 듯하다. 최근 며칠 사이 러닝 후 맥주를 마실 때면 제법 추워진 것이 사실이었다, 오늘은 테라스에 앉은 우리에게 점원이 담요를 내어 준 날이었으니까.
화요일 오후 네 시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날이다. 퇴근 후 편하게 소파에 기대 공개 된 에피소드를 몰아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에피소드는 다음으로 미뤄놓고 우리 부부는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오빠, 우리 지금 같이 달리지 않았다면 소파에 앉아 티브이나 봤겠지?'
'그럼, 같이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겨서 너무 좋아.'
달리기를 연습한 지 3주가 넘어서자 나에게는 이제 5km는 가볍게 뛸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남편의 무릎 통증은 병원에서 7만 원짜리 주사를 맞은 직후를 제외하고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무릎 통증이라는 숙제는 남았어도 대회까지 아직 한 달 넘게 남았으므로, 천천히 대비하기로 했다. 나는 계속 달리고 남편은 계속 걸었다.
매일 1km씩 1주일을 달리다가 3주 차부터 5km를 7분대로 달리는 페이스를 유지했다.
숨이 차는 게 두려웠던 초보 러너도 어찌어찌 5km를 달리게 되었다.
저조한 기록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어차피 나아질 수밖에 없는 숫자일 뿐이니까.
우리는 흑백요리사 에피소드 오픈을 이겨내고 달린 부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