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안녕하세요, 안정호입니다.
하키토브를 집필 후, 약 6개월 동안 다음 소설을 위한 자료준비로 글쓰기가 늦어졌습니다. 집필의 결심은 생각보다 두렵습니다. 다가올 약 2년의 시간 동안 매 순간 소설의 방향을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성격상 멀티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에, 본업이 우선이기에, 차근차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소설의 캐릭터와 나아갈 방향을 씨름할 생각에 두려움은 앞서지만, 그래도 묵묵히 제가 그려가는 비전을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부족한 필력으로 글을 읽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작은 즐거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시작할 소설의 가제는 "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눈을 뜬다.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다시 뜬다. 몇 시지?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찾는다. 휴대전화는 손 닿을 거리에는 없다. 귀찮다. 다시 눈을 감는다. 헉? 몸이 뜨겁다. 다시 눈을 뜬다. 커튼과 커튼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광선은 침대와 내 몸을 반으로 가른다. 이대로 몸이 두 동강 난다면, 보험회사로부터 천재지변 사유에 속해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대로 죽는다면, 보상받을 수혜자[1]는 있던가? 그나저나, 친족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인 가족이 내게 있던가? 그래, 나에게는 그런 존재도 없거니와 보험에 가입한 기억도 없다. 즉 슨, 몸이 두 동강이 나, 아방가르드를 온 방에 표현한, 심미적 선혈[2]의 마지막 몸부림을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리라. 눈을 다시 감는다. 세상이 말하는 시간의 개념은 의미가 없어서다.
쾅쾅쾅, 쾅쾅쾅, 쾅쾅쾅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지?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무시하자.
쾅쾅쾅, 쾅쾅쾅, 쾅쾅쾅
“저기요, 김준서 씨 댁에 안 계세요?”
오랜만에 듣는 내 이름이다. 그래, 난 김준서다. 한 번만 더 불러다오. 내 이름을.
쾅쾅쾅, 쾅쾅쾅, 쾅쾅쾅
“저기요, 김준서 씨 댁에 안 계세요?”
“네, 제가 김준서입니다.”라고, 김준서가 당신 앞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100~150Hz(헤르츠)의 주파수를 지닌, 깊고 낮은 톤으로 무게감을 느끼도록 진지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다. 누군가와 대화한 게 약 한 달 전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그 한 달이 오늘이다. 문을 두드리며, 애타가 나를 찾는 이 사람. 내게 유일한 말벗[3]이다. 이제 말벗에게 답할 차례다. 폐에 힘껏 공기를 불어넣는다. 공기가 기도를 지나 후두 안에 숨은 성대를 자극한다. 성대는 공기와의 만남으로 진동을 만들어 성도의 터널을 지나 혀와 턱에 뇌의 명령을 전달한다. 지휘소의 지시를 하달[4]받은 혀와 턱은 자음과 모음을 생성한다. 자, 이제 마지막 과정이다. 입술을 뗀다. 그렇게 나의 반가움을 외부로 힘껏 내보낸다. [5]
“누구세요? 김준서는 더는 여기 살지 않아요.
작년에 마을을 떠났어요.”
2. 완벽하다. 완벽해. 늘 같은 시작이지만, 이렇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게 좋다.
“그럼, 댁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아, 전, 이름은 비슷한데요, 김서준입니다. 하마터면, 저라고 착각할 뻔했네요.”
완벽하다. 완벽해.
“죄송합니다, 김. 서. 준. 씨. 다른 집을 방문했네요.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아닌데? 이게 내가 기대한 반응은 아닌데? 저번 달하고 반응이 다르잖아.
“잠시만요, 뭐 그리 급하게 가려고요? 왜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김준서, 그 양반한테 큰일이라도? 제가 그 사람 이사한 곳을 아니까, 말해 보세요. 들어보고 중요한 일이라면, 흠.”
“아니에요, 김. 서. 준. 씨. 타인의 개인정보를 말하기 어렵네요. 안녕히 계세요.”
이대로,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소중한 대화를 끝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또다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친구 삼아 망상[6]을 나누는 우울함을 오늘은 견딜 자신이 없구나.
“장난이에요, 장난. 저번 달은 받아주더니만, 오늘은 왜 이리 예민하게 구세요.”
“김준서 씨, 매번 그러시면, 공무[7]를 보는 제 입장은 난처[8]해요, 아시잖아요, 일이 많아요. 앞으로 자제[9] 부탁해요.”
오늘은 기분이 안 좋은가? 느낌이 싸하다. 현관문을 열어 그녀를 마주[10] 본다.
“김준서 씨, 독신세가 벌써 몇 달째 연체[11]세요. 만 45세까지 결혼하지 않거나, 양육[12]할 아이가 없으면, 모든 대한민국 시민권자는 독신세를 내야 해요.”
잘 압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독신세. 공무원님. 그런데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보시다시피 못 하는 겁니다. 못 한다고요. 그리고 결혼을 안 했는데, 아이를 어디서? 하늘에서 따오나요?
“정말 미안한데요, 독신세를 내고 싶어도, 특별한 벌이가 현재 없어서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무언가 독신세를 대체할 수 있는?”
매번 대화의 흐름은 비슷하다.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면, 매달 같은 이야기를, 마치 한 문장만 외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내 현실이, 그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겠지. 재미도 없을 테고. 한심하게 보일지도. 그렇게 보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난 아니다. 신난다. 즐겁다. 이 대화를 오래 끌고 싶다.
“김준서 씨, 그래서 저번 달에도, 그 전 달에도, 그 전 달에도, 이미 수차례 말씀을 했어요, 구청에 가서, 독신세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봉사 일을 찾으라고요. 저도 매번 이런 이야기하기가 불편해요.”
“자원... 봉사... 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공무원님은 눈치챈 것인지, 나머지 말은 듣지도 않고 뒤돌아 발걸음을 서두른다. 저번 달은 즐겁게 오랫동안 대화했는데, 나만 느끼는 감정이었던가? 시야[13]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한참을 바라본다. 이번 달은 더는 나를 찾아올 사람이 없음을 알아서다.
“잘 가요, 다음 달에 만나요.
오늘 즐거웠어요.”
to be contiuned....
[1] 수혜자(受惠者):혜택을 받는 사람.
[2] 선혈(鮮血): 생생한 피.
[3] 말벗: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 친구. 말동무.
[4] 하달(下達): 윗사람의 명령·지시·결정이나 의사 따위가 아랫사람에게 미치어 이르거나 이르게 함.
[5] 출처: 교육부
[6] 망상(妄想):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따르지 않는 믿음
[7] 공무(公務): 국가나 공공 단체의 사무.
[8] 난처(難處):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 처지가 곤란하다.
[9] 자제(自制): 자기의 감정이나 욕망을 억제함.
[10] 서로 똑바로 향하여
[11] 연체(延滯): 금전의 지급이나 납부 등을, 기한이 지나도록 지체함.
[12] 양육(養育): 아이를 보살펴 자라게 함.
[13] 시야(視野): 시력이 미치는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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