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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Apr 19. 2024

만남(2)

서툴지만 한 걸음씩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는 것이 가장 즐거웠던 청소년기 나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온 첫 변화였다. 신발장에 마구잡이로 신발을 벗어두곤, 새로운 가족이 된 마음이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의 양은 생각보다 더 방대했다. 어린 강아지의 사료는 어떻게 배식해야 하는지, 배변 훈련, 산책,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을 위한 예방접종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등 알아야 할 것이 수십 가지였다. 

 

 다양한 지식을 검색해 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 포털이 현재만큼 발전되지 않았다. 적은 정보를 열심히 찾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한참 동안 웹서핑을 했다. 매주 일요일에는 온 가족 모두 이른 아침부터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 ‘TV동물농장’을 시청했다. 


 이 전에도 종종 보던 프로그램이었으나, 마음이와 함께 한 이후부터는 다른 시야로 바라보았다. 단순히 귀여운 동물들을 보기 위해 시청한 과거와는 다르게, 전문가들의 조언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찾은 정보를 사용하기 위해 당장 배변훈련부터 시작했다. 하얀 마음이와 어울리는 진한 핑크색 울타리를 작은 공간에 두르고, 아이 몸집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배변패드를 깔아주었다. 공간을 제한해서 배변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음이가 배변 패드 가까운 곳에 소변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칭찬해 주었다. 다른 곳에 소변을 보았을 때도 무작정 혼내지 않고 소변 냄새가 남아 화장실로 착각하지 않도록 식초를 이용해서 닦아주었다. 

 

마음이는 종종 식초로 닦은 바닥 냄새를 맡을 때면 기겁을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처음 맡는 시큼한 냄새에 놀란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또, 강아지가 일정 개월 수 이상 자라기 전까지는 사료를 불려주어야 한다. 사료를 불릴 때는 뜨거운 물로 불리면 영양소가 파괴될 수 있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뜨거운 물이 아닌 미지근한 물에 차분히 불려야 한다. 정성 들여 불려준 밥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마음이는 사료 그릇을 닦아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남김없이 해치웠다. 


 그 작은 몸집으로 어쩜 그리 잘 먹는지 신기하면서도 대견했다. 이후에도 마음이는 먹성이 놀라울 만큼 좋았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변을 보았는데 그 변마저도 퍽 예뻐 보였다. 



 마음이가 태어난 지 3~4개월이 되었을 무렵, 작은 목줄과 함께 첫 산책을 나섰다. 혹시라도 다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작은 목줄을 둘러주었다. 작은 얼굴에 목줄이 자꾸 빠지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만 산책을 하기로 했다. 


 작은 공간에서 큰 공간으로 나간 것이 그토록 새롭고 놀라웠는지 마음이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신난 모습을 보니 덩달아 신이 나서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 순간이 참으로 상쾌했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마음이는 처음 계단을 마주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그 짤막한 네 발로 용기 내어 계단 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첫 발을 떼는 것만이 어려웠다는 듯이 금세 적응하여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 모습에 대담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을 보며 앙칼지게 짖기도 하였다. 그 작은 것이 아이들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이들을 보면 마치 자신이 더 강하다는 듯 노려보며 짖어대서 창피하기도 했다. 늘 감정표현에 솔직했던 아이였다.



 새하얗던 털이 회색빛이 될 때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꼬질한 발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궁금해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몬드를 볶는 듯한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 발이 너무 귀여워 간직하고 싶었다. 사진을 몇 장 찍어두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발을 씻겨주었다. 


 발에 닿는 물길이 내심 싫지는 않았는지 마음이는 가만히 발을 올려주었다. 그러나 드라이기로 말리는 순간 표정이 돌변했다. 강한 바람이 몸에 닿는 것이 언짢았는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코에 잡힌 주름이 귀여워 으르렁거리는 것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살살 달래 가며 다 말려주고 나니 금세 뽀송뽀송한 솜털로 돌아왔다. 포근한 샴푸 냄새에 기분이 좋았는지 마음이는 집 사방팔방을 우다다다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언제 뛰어다녔냐는 듯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몇 초만에 이 모든 모습을 보여주는 마음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천사같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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