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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ug 24. 2024

전할 수 없는 위로

그리움 속에서

엄마가 아프시다는 전화를 듣고 염려 되어 찾아뵈었다. 안 그래도 인대를 다친 이후 한 달여간 뵙지 못했던 터이기에 꼭 가야 하는 걸음이었다.


병원을 다녀오신  엄마를 위해 삼겹살을 구워 저녁식사를 차려 드렸다. 모처럼 함께 하는 딸과의 식사가 마냥 행복하다며  좋아하시는 엄마. 부모님은 크고 대단한 걸 바라시는 것도 아닌데 정작 이 작은 식사 자리조차 자주 만들지 못했던 미안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기억에만 은밀하게 보관했던 아빠와의 얘기들을 하나씩 소환해 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섣불리 내놓을 수 없는 얘기들을 엄마와 함께일 때는  스스럼없이 나눌 수가 있어 좋다.


"너 그거 아니? 네 아빠가 옛날에 국밥 먹고 싶다길래 내가 나가서 사 먹으라고 돈 만원을 줬잖아. 그래서 그 돈을 들고 국밥집 가서 국밥을 실컷 먹었대. 그런데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돈이 없다는 거야. 분명히 들고 나온 기억은 있는데 돈이 없어져서 황당한 마음으로 계속 찾고 있는데 주인이 다가오더래."

"그런 일이 있었어? 주인은  뭐라 했는데?"


"글쎄, 아빠가 돈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다시 와서 꼭 주겠다고 하니까, 다짜고짜 멱살을 잡더니 '어디서 이런 병신이 와서 재수 없게 공짜밥 먹었냐' 하면서  다짜고짜 네 아빠  멱살부터  잡고 욕을 하더라는 거야.  목발과 함께 네 아빠를 그대로 밖으로  내동댕이 쳤다는데...."

얕은 한숨을 쉰 뒤, 엄마는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내가 너무 속상해서 그 식당 찾아가서 따지자고 했어. 그 인간 가만 안 두겠다고... 그런데 그 식당이 이미 문을 닫았더라고. 네 아빠가 나 속상할까 봐 좀 지나서 그 얘기를 했거든. 나중에 가보니  그 일대 개발을 하느라 정말 문을 닫았지 뭐야."

우리 둘은 한동안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입을 닫은 채 침묵했다.

아빠가 돌아가시는 순간에 계속 '이 불쌍한 사람...'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엄마의 표정,  눈물의 의미를 말해주는 아주 작은 일화.


생면부지의 남들 앞에서 오로지 장애 하나로 규정

돈 만원을 잃어버린 실수 하나로 재수없는 무전취식자가 되어 내동댕이 쳐졌던 그  모멸감 넘치는 폭력 앞에서 얼마나 비참하셨을지 상상조차  버거웠다.


"그래도 네 아빠가 정말 불쌍했던 건.... 이남에 하나뿐인 누나, 네 고모가 동생이 그토록 보고 싶다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결국 얼굴 한 번 안 보여 준거야."

엄마의 기억이 울먹이는 목소리에 담겨  이어졌다.


이북에서 피난 온 이후 아빠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고모였다. 90이 넘은 고모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그토록 보고 싶다고 사정했건만 결국 동생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찾아오지 않으셨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시는 동안도 왕래가 거의 없었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느라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찾아 오지 않았던  고모.  결국 그 다름으로 인해 동생의 마지막 길까지 끝내 외면하셨던 걸까.


가족에게 아픔을  함께 지우기 싫어, 당신 생전에 받았던 설움속으로만 삭이며  좀체로 말씀하지 않으셨던 아빠.


인간은 사별과 비애의 그늘에서 슬픈 순간에 참된 자기 자신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중-


아빠를 잃은 사별과 비애의 그늘에서 당신의 가슴에 새겨졌을 삶의 생채기를 소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참된  모습도  돌아본다.


나 역시  그 식당 주인처럼  내 안의 추악한 편견을  폭력적인 말이나 행위로 배설한 적은 없는지.


고모처럼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가족을, 친한 누군가를 서슴없이 외면하고 냉대하지는  않았는지.

아빠의 삶을 거울삼아 비로소 내 속의 참된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순간, 죽음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실존이 된다.


 오늘은 빠가 더욱 그리워진다.  손잡고 위로해 드리고픈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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