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의욕의 반비례 현상
심부름의 범위와 쓸모
예전에는 학생들이 선생님 책상을 닦거나 찻잔을 설거지하는 등 허드렛일도 더러 했었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사용하지 않는 공간(교장실, 교무실, 행정실 등)의 청소는 물론 교실 청소도 별로 시키지 않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일들은 교사가 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도와주는 것이 훨씬 좋을 때가 있다.
검사가 끝난 20여 권의 공책이나 교과서를 친구들에게 돌려주는 일 : 친구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좋고, 교사가 일일이 하려면 수업 진행에 쓰일 시간을 빼앗긴다.
쉬는 시간에 다른 반에 어떤 문서를 전달하는 일 - 종이 몇 장을 갖다주느라 교사가 교실을 비운 사이에 교실에 남은 아이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함을 달래려 괜히 지나가는 친구를 툭툭 건드리거나 복도를 배회하는 아이들에게는 ‘심부름’이라는 처방이 오히려 반가울 때도 있게 마련이다. 선생님마다 가진 교육관에 따라 혹은 맡은 업무에 따라 입장이 다르겠지만, 나는 심부름이 가진 몇 가지 순기능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그것을 잘 이용하며 학급을 운영하고자 하는 편이다.
심부름 가고 싶은 사람?
1학년
선생님이 이렇게 물으면 1학년 아이들은 심부름을 하고 싶어서 "저요, 저요~!!" 하고 소리치면서 달려 나온다. 아직 누구에게 시킬지 정하지 않았는데, 벌써 심부름 거리에 손을 대거나 찜해놓기도 하며 아우성이다. 선착순 몇 명이면 슬쩍 새치기도 하고 어깨 싸움에서 져서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래서 별 것 아닌 일에 두세 명이 함께 보내지기도 한다. 전달해야 하는 물건이 비록 종이 한 장 일지언정…
아직 교문에서부터 우리 교실까지, 그리고 돌봄교실과 방과후교실 정도의 위치밖에 모르는 아이들이어서 심부름 갈 수 있는 장소는 극히 한정적이다. 그나마도 하교를 바로 집으로 하는 아이들은 자기 교실과 식당 밖에 모르니 말이다. 같은 학년인 1학년 1반, 2반, 3반까지는 한 층에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학교 규모가 큰 곳에서는 1학년 10반까지 있기도 해서 다른 층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믿기 어렵겠지만, 한두 층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에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1학년은 심부름을 웬만하면 안 시키려고 하지만, 우리 반에 통째로 온 전교생 몫의 가정통신문 같은 것을 각 반으로 전달해야 할 때가 가끔 있다. 교사가 일일이 전달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심부름꾼'이 필요하다. 너는 1학년 1반, 너는 1학년 2반, 너는 1학년 3반... 하며 눈을 똑바로 맞추고 갈 곳을 알려주어도 1학년 아이들은 종종 배달사고를 낸다. '저희 반에 두 묶음이 배달되었어요.' 하는 메시지를 받으면, 배달되지 않은 곳을 찾아내어 다시 보내야 한다. 10분 정도 지나서 다시 그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저는 어디라고요?" 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심부름을 보내기 전에 조금 귀찮더라도, 가정통신문 구석에 1-1, 1-2...라고 배송지의 주소를 적어두면 좋다. 예전에는 작은 포스트잇을 쓰기도 했었는데 그것이 이동 중에 날아가버려서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약간의 성가심을 극복하고 미리 주소작업을 해두면 배달 사고를 줄일 수 있다.
해당 교실에 선생님이 안 계시면 그곳에 두고 와도 되는데 꼭 다시 들고 와서 "아무도 없어요." 하는 아이들도 있다. 게다가 교실 문까지 잠겨있으면 임기응변에 약한 1학년 아이들은 '신발장 위에 두고 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내지 못해서 일단 교실로 도로 가져온다. 마치 수령인을 만나지 못하면 우체국으로 돌아가버리는 야속한 등기우편처럼 말이다.
교무실에 가서 우리 반 우편함에 있는 우편물을 가지고 오기
행정실에 가서 OO 선생님께 봉투를 드리기
과학실에 가서 작은 건전지 두 개 빌려오기
이렇게 낯선 장소에 가서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것은 1학년 1학기 아이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에는 아이들이 다 하교하고 난 오후 시간에 혼자서 돌아다니거나, 하루이틀 전에 미리 연락을 해두어 수업이 시작되기 전날에 필요한 물건을 다 빌려와서 세팅해두어야 했다.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비교적 차분한 아이들 서너 명을 뽑아 교사의 인솔하에 바구니 몇 개를 운반하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 교실에 남은 아이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잠시라도 교실을 비울 일이 생기면 마음이 불안하다.
1학년 2학기쯤 되면 눈치와 요령이 조금 생기기 때문에 1학기 때보다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다. 학습준비물지원실 같은 곳에 가서 필요한 준비물을 빌려오는 것은 - 그곳에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 비교적 할 만한 일 축에 든다. 미리 메시지로 '이런저런 것을 빌리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해두거나 학교마다 정해진 물품 대여 신청서 양식을 이용하면 편하다.
한 때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심부름을 시키고자, 번호순대로 날짜나 요일을 정해서 시스템을 가동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능력치가 무척 다르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가 하면 쉬는 시간에 조용히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고 싶은 성향도 있기 때문에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순서가 돌아왔는데 그 아이가 '저는 가고 싶지 않아요' 라며 거부하고, 활달한 아이들이 총알처럼 튀어나와서 "그럼 제가 갈게요" 하면 아무래도 원하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가게 된다. 그 후로 희망하는 아이들 위주로 보냈더니, 어느 날은 상담에서 "내성적인 우리 아이에게도 심부름을 시켜주세요."라는 부탁을 듣기도 했다. 선생님이 한 번만 더 권해주시면, 못 이기는 척할 테니 자기 아이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에게 한 번 더 권하거나 (무척 따라가고 싶어 하는) 친한 친구를 붙여주어 보내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1학년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난이도만큼이나 심부름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렬한 아이들이 바로 1학년이다. 나는 조금 복잡하고 어려운 심부름은 프로 심부름꾼들에게 은밀하게 부탁하고, 단순한 심부름은 그동안 많이 선발되지 못한 보통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개모집해서 보낸다. 1학년 심부름의 내용은 별 것 아닌 듯 시시해 보이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골고루 소소한 성취감과 자아효능감을 선물할 수 있다.
6학년
6학년 아이들은 학교의 구조와 교실의 배치에 대해 교사보다 오히려 빠삭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디든지 빠르고 신속하게 심부름을 보낼 수 있다. (유독 방향치인 몇 아이들은 제외) 다만, 가고 싶은가 가고 싶지 않은가 하는 개개인의 마음 상태에 따라 심부름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뿐이다.
우리 반에서 6학년의 다른 반에 가정통신문을 배달하는 것은 쉽고 재미있기 때문에 가장 선호하는 심부름이다. 왜냐하면 작년이나 재작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혹은 학원에서 매일 만나는 절친들이 그들을 반겨주기 때문이다. "다른 반 갈 사람 N명만 나와봐~" 하면 해당되는 인원이 나와서 알아서 줄을 선다. 머릿수를 세어본 다음, "여기까지야. 뒤로는 탈락이야." 하고 교통정리도 알아서 해준다. 그런데 순서대로 장소를 지정하다 보면, "아.. 저 2반은 싫은데. 제가 3반에 가면 안 되나요?" 하고 입맛에 맞는 반을 고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럼 넌... 다음 기회에!” 라 외치고 추가 인원을 뽑았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자기들도 요령이 생겨서 가는 길에 원하는 주소지로 슬쩍 맞바꾸어서 배달을 완료해 버리곤 한다. 그렇게 하면 배달부만 바뀌었을 뿐 배달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그 반에 '전 남친'이나 '엊그제 절교한 아이'가 있다거나 하는... 어른인 나도 납득이 가는 사연들이 있었다. 2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마저도 귀찮아진 6학년들은 선뜻 심부름을 하러 튀어나오지 않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가는 심부름은 얼마든지 하겠지만, 선생님이 대부분 쉬는 시간에만 심부름을 시키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반에는 언제나 심부름을 갈망하는, 선생님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학기 초에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았는데, 몇 번 심부름을 시켜보니 제대로 된 일꾼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가정통신문을 가로, 세로로 스무 장씩 잘 쌓아서 주면 동시에 여러 반으로 배달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교실에 아무도 없으면 교탁 위나 선생님 책상 위 등 눈에 띄는 곳에 잘 두고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는 학생이다. 얼마 전에는 급하게 교무실에서 인쇄되고 있는 가정통신문을 아이들 하교 전에 배부했어야 하는데, 이 '오른팔'을 보냈더니 10여분 뒤에 교실에 한 반 치만 들고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교무실에 가서 중입배정 가정통신문 달라고 했더니 아직 인쇄 중이더라고요. 그래서 다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20장씩 해서 다른 반에 다 갖다 드리고 왔어요. 근데 3반은 벌써 하교했더라고요. 그 반은 내일 나눠주실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100점 만점에 1000점짜리 답변이었다. 키도 나보다 크고 힘도 세서, 웬만한 무거운 물건도 거뜬히 들어주는 든든한 오른팔 학생은 나중에 다시 저학년을 맡게 되면 가끔 그리울 것 같다.
1학년 아이들은 학습준비물실에 가서 단순히 바구니 채로 들고 오거나 반납하는 일을 처리했다면, 6학년 아이들은 더 복잡한 일도 곧잘 해낸다. 준비물실의 대출반납장부에 자기 이름을 써서 기록도 하고, 바구니에 섞여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다시 분류하여 제자리에 정리해 놓고 오기도 한다. 체육 시간에 체육관에 미리 가서 네트를 칠 수도 있고, 음악실 가는 길에 알아서 교무실에 들러 열쇠함에 걸려 있는 열쇠를 꺼내 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도 1학년 담임을 하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혼자 동분서주하며 힘겹게 네트를 치고 열쇠를 찾아다녔는데, 어느 날 - 체육시간이 1분이라도 줄어드는 게 아까웠던지 - 쉬는 시간에 먼저 와서 "선생님, 오늘 배드민턴 친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먼저 가서 네트 설치하고 있을까요?"라고 말해주어서 그 후로 네트는 쉬는 시간에 미리 치는 걸로 자리 잡혔다. 덕분에 수업 시작이 한결 편해졌다.
심부름에 대한 의욕만 넘치고 요령은 없던 어리바리한 1학년이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이루기까지는 약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잘하든 못하든 1학년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선생님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언제나 고맙고 사랑스럽다. 조금 귀찮지만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는 든든한 6학년 아이들은 이제 곧 중학생이 될 것이고, 한동안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초등학교에서 그랬듯 금세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 안에는 학습해야 할 다양한 과목과 활동이 분명히 존재하고, 목표도 명확하다. 반면, '심부름'이라는 것은 교육과정에 명시된 대단한 활동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사와 학습 활동들이 잘 굴러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선뜻 나서서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른들이 많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탁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려고 노력한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보상이 없어도 '뿌듯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마워, 수고했어, 애썼어."라는 말을 꼭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뿌듯함을 교육학 용어로 ‘내재적 보상’이라고 한다. 그런 작은 경험들이 모여, 심부름하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기쁨 이라는 노란 구슬이 생기기를… 그리고 그 구슬이 장기 기억 저장소로 이동하길 바란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의 나무가 자라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feat. 인사이드아웃의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