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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실 관찰 보고서를 마치며

Outro

by 계쓰홀릭


연재 시작의 이유

마흔 살이 되던 해, 무턱대고 글이나 써보자 하고 시작했던 브런치였지만 마침 그 해 봄에 에세이교실을 다니기 시작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긍정적이고 밝은 아줌마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와 어린 시절에 대한 꽤나 세세한 기억들이 버무려진 글을 쓰면서 점점 글 쓰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글의 색깔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여름에 종강된 에세이교실에서 만난 몇몇 뜻있는 문우들과 정기적인 합평을 자체적으로 이어가며 언제까지 과거의 이야기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의 어린 시절과 가족사를 굳이 들추어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 지금을 살아가는 - 이야기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그들은 '직업이 선생님이니까 제일 잘할 수 있는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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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 이야기?


동료 교사들 중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고, 그들이 먼저 집필한 책들 중에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것이 많은데 굳이? 내가? 또? 만약에 한다면 어떻게 나만의 색을 입힐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운 좋게(?)도 2023학년도에 1학년 담임을 하던 내가 2024학년도에 갑자기 6학년 담임을 부탁받게 되었다.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초등학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기에 1학년 봄과 6학년 겨울의 아이들은 무척이나 다르다. 중고등학교에서도 "1학년이랑 3학년은 천지 차이예요"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6학년을 오랜만에 맡으면서도 … 이 아이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쓸 수 있는 말이 전부 6학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진다면 연재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6학년 아이들은 - 고맙게도 -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1학년들의 무대포적인 사랑스러움과는 격이 다른, 조금 쑥스럽게 천천히 다가오지만 은근히 정도 많고 의리도 있는 6학년만의 우아한 사랑스러움이 분명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 유명하신, 김영하 작가님도 어디선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정확한 워딩은 아님)

원고료와 마감이 없는 글은 쓰기 어렵다.

가뜩이나 원고료는 0원인 일개 브런치작가인 나에게 마감조차 없는 현실은 조금 잔인한데, 연재가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나마 2주마다 모였던 '소소한 에세이' 모임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새해를 맞이하여 월 1회로 모임이 축소되면서... 나의 글쓰기 열차는 동력을 조금 상실한 상태이다. (하하하)


연재 종료의 이유

처음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시간순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를 엮어보려고 했는데, 계절과 관계없이 상시적인 에피소드가 많아서 주제별로 대강 타이틀을 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1), (2) 편으로 나누기도 하다 보니 글 수는 늘어났지만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생겨서 수차례 탈고하며 고쳐나갔다. 이후 생각했던 에피소드는 상담, 현장체험학습, 운동회, 화장실, 졸업식과 종업식 등이 있었으나 요즘은 우리 학교는 안전상의 문제로 현장체험학습이 없어졌고 화장실 이야기는 '쉬는 시간' 에피소드와도 다소 겹치는 부분이 있을 듯했다. 졸업식은 2월 중순에 예정되어 있다 보니 아직 겪은 일이 아니어서 글로 풀어내기가 어려운데 그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매주 연재할만한 에피소드가 고갈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 겨울방학이기도 해서 재택근무(?) 중인 나는 내 아이들을 건사하기도 바쁘다는 게 솔직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졸업식 이후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한 편 정도 추가할까 한다. 아직 세상에 내어놓기에는 미흡하지만 놓치기 아까운 에피소드가 있다면 몇 편 모아서 '초등 교실 관찰 보고서 II'를 써볼지도 모르겠다.


매주 요일을 정해서 꾸준히 글을 써가는 것이 꽤 어려웠지만,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 나는 유익하고 스릴 있는 날들이었다고 기억하려고 한다.


인사

그동안 '초등 교실 관찰 보고서'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이 자릴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덧붙여, 꼭 1학년은 이렇고 6학년은 저렇다더라 하는 편견이 느껴져서 불편하셨다면 미리 사과드린다.어딜가나 어른스럽고 의젓한 1학년이 있을 수 있고, 아기 같은 6학년도 있다. 학군지와 비학군지 아이들이 다르고, 도심과 부도심이 다르며, 서울과 지방의 차이도 있겠으나 내가 다 겪어본 것은 아니다. 이 글은… 그저 내 경험 안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엮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내려간 지극히 개인적인 관찰기록일 뿐이다.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무척 좋아한다. 챕터마다 녹아있는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예쁜 마음씨와 멋진 태도 덕분에 나도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챕터마다 눈물을 훔쳤다는 나의 추천사를 믿고 따라 읽은 -아무래도 T인듯한-후배가 도대체 어디서 눈물이 났던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었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내가 글을 쓴다면 이렇게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독자분들에게 이러한 내 마음이 가 닿았기를 바라며, 소소하고 용감했던 나의 첫 연재를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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