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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엄마 숙제 아닌가요?

by 계쓰홀릭 Dec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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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제는 영어로 homework. 집에서 하는 공부라는 뜻이 되겠다.


  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학교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연계되어야 학습 능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자명하다. '학습(學習)'이라는 말에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 함께 있는데, 배우는 곳은 학교요 익히는 곳은 가정이 아닐는지? 예전에 비해 맞벌이 가정이 많아져서인지, 요즘은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1학년 담임을 했을 때 내가 내주는 숙제는 각종 시험 대비 공부해 오기, 받아쓰기 틀린 것 써오기, 수학 문제 틀린 것 다시 풀어보기, 주 1회가량의 일기와 독서기록장 정도에 불과했다. 6학년도 받아쓰기에 관한 것 말고는 대동소이하다.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조사해와야 하는 경우에는 1주일 간의 준비 시간을 주는 편이다.


  미술 숙제

  미술은 대부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끝나서 따로 숙제는 없었지만 '낙엽 모아 오기' 나 '재활용품 준비해 오기'처럼 학교에 있는 것으로만 하기 힘든 활동이 있을 때 미리 알림장에 올려 준비를 시켰다. 1학년 아이들(과 부모님)은 급한 마음에 등굣길에 주운 축축한 낙엽을 가져오기도 하고, 엄마가 출근길에 편의점에서 사서 들려 보낸 콜라를 한 병 가져오기도 한다.


  낙엽의 경우는 '주말에 가족과 낙엽 모으기 -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로 5개 이상. 두꺼운 책에 끼워 넣어 일주일 이상 빳빳하게 말려오세요'라고 자세하게 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화지보다 큰 플라타너스 잎을 가져오기도 하고, 덜 마른 낙엽을 가져와서 아이가 만든 작품이 꼬부라지면서 까맣게 썩어(?) 버리기도 한다.

  '악기 만들기' 시간에 필요한 음료수병 같은 것이 필요해서 교과서 - 당시에는 ‘즐거운 생활’이었음 - 에 나오는 참고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알림장에 올린 적이 있다. 이런 악기를 만들 예정이니, 작은 음료수병과 안에 넣을 쌀이나 콩류를 가져와달라는 설명을 함께 덧붙였다.

  며칠 후, 아이들이 기다리던 만들기 시간! 맞벌이 엄마가 급하게 준비시켜 준 콜라를 따서 신나게 마시고 있는 아이를 보고 1차 멘붕,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휴직한 상태로 아이 준비물에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거의 완제품 상태의 악기를 보내신 걸 보고 2차 멘붕이 왔었다. "콜라는 학교에서 먹으면 안 돼!“라는 말에 아이는 "엄마가 시간 없다고 학교에서 마시랬어요."라고 대답했고, "다 만들어오지 말고, 재료만 가져오는 건데…”라는 말에 아이는 "다 만든 거 아닌데요, 스티커는 내가 붙이라고 엄마가 그랬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 나는 재활용품 같은 준비물이 필요할 때 아이들에게 두세 개 더 준비해 와서 나눠 쓰면 좋다는 말도 꼭 덧붙이고, 우리 집에서 나온 재활용품도 씻어서 여분으로 챙겨가게 되었다. 때로는 급식에서 다 같이 후식으로 요구르트를 먹을 때가 있는데 그것을 잘 모아서 헹궈두면 똑같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5~6학년 미술에는 디지털 사진을 이용한 단원도 있어서 학교에서 패드를 이용하거나 개인 휴대폰으로 찍어야 할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주말에 이런이런 사진을 모둠별로 찍어서 선생님이 열어놓은 *패들렛에 올리라며 주소를 알려주면, 별다른 부모님의 간섭 없이도 자기들끼리 잘 찍어서 올리곤 한다.  아직 휴대폰이 없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별로 한 명이 올리라고 하면 적당히 역할을 나누어 할 수 있다. 조별로 영상을 찍어 편집해서 올리라고 하면 선생님도 모르는 편집툴을 이용해 재치 있는 영상을 올리기도 해서 이제 완전히 ‘엄마숙제’의 그늘에서 벗어났음을 느낄 수 있는 6학년이다.


  일기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1학기 국어책 마지막 단원에 ‘그림일기 쓰기’가 나와서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일기 숙제를 하게 된다. 최근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그 내용이 2학기 초반으로 미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많은 아이들이 유치원 때 이미 그림일기를 접하기도 해서, 사실 1학년 아이에게 그림 하나 그리고 해당되는 일기 몇 줄 쓰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과제는 아니다. 부모님이 조금만 신경 써주시면 좋은데, 방학 때 그림일기를 4~5편 써오라는 숙제에 "이건 다 부모 숙제 아닌가요?" 하고 불만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일기 쓰기의 교육적 의미가 재평가되고, 학생들의 인권 존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일기 검사를 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일기장'이라는 표현 대신 '끄적긁적' '글똥누기' '생각공책' 등 다양한 이름을 만들어내어 조금 변형된 방식의 글쓰기 지도를 하고 계신다. 그만큼 '일기 쓰기 = 생각을 글로 풀어내기'는 아이들 교육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나는 6학년 아이들과 함께 '글똥누기' 공책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침에 칠판에 적혀있는 시를 필사한 뒤 느낌을 쓰기도 하고, 학교에서 중요한 행사를 한 후 소감을 쓰기도 한다. 주말에는 집으로 보내어 '주말일기, 감사일기, 반성일기, 효도일기' 등 그때에 맞는 글쓰기 주제를 정하고 숙제로 내주기도 한다.

  글똥누기 숙제가 있었던 주말을 보내고 난 후, 월요일 아침은 모처럼(!)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다. 주말숙제라고 딱히 집에 가져가서 해 오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에 앉아서 숙제를 급하게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칠판에 적혀있는 '글똥누기 장(주말일기) 제출하기'라는 글씨를 보고 바로 가방에서 꺼내어 제출하는 아이는 2~3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글똥누기 장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주말에 뭐 했더라?" 하며 숙제를 하는 아이는 양반이다. 재촉하지 않으면 아예 내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아이들도 꼭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자습 시간, 열댓 권가량의 글똥누기장이 교탁에 쌓여 있으면 "지금이라도 해서 내는 아이들! 훌륭해!"라고 칭찬해 준다. 야단을 맞을 줄 알았던 아이들은 머쓱해하며 웃는다. 쓰는 장소가 학교일지라도, 주말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글쓰기를 하면서 아이는 분명 약간의 성장을 했을 거라 믿는다. 6학년이기 때문에 자기 숙제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본인이 지는 모습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1학년의 경우는 "엄마가 안 챙겨줬어요." "엄마가 일기 숙제 있다고 말 안 했는데요." 라며 책임을 부모에게 미루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도 1학년 때는 그랬을 것이고 말이다.


  독서기록장

  학교마다 다르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책꿈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서기록장이 있다.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고 같은 페이지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독서를 한 뒤 자유롭게 원하는 페이지를 작성하기도 한다.

  

  독서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데

독후활동에 치중함으로써 독서가 갖는 원래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독서기록장이라는 정해진 틀에 독후 활동을 맞추는 것은 교육적 의미가 적다.

는 의견들이 있어 요즘은 독서기록장을 따로 두지 않고 선생님들이 그때그때 적당한 독후활동을 하시기도 한다.


  독서기록장에는 표지 꾸미기, 주인공 그리기 등 다소 쉬운 부분도 있고 주인공 인터뷰하기, 뒷이야기 이어 쓰기, 친구에게 소개하기 등 글씨를 많이 써야 하고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저학년의 경우 쉬운 내용 위주이고 고학년의 경우 후자가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독서기록장만 한 장 열어봐도 기록장의 주인이 어떤 아이인지 느낌이 온다.

열심히 하는 6학년
대충 하는 (놀랍게도) 6학년

  저학년의 경우 그림에 엄청나게 공을 들여 해오는 아이와 괴발새발 겨우 몇 줄 끄적여 오는 아이가 대비된다. 고학년의 경우 꽤 수준 있는 책을 읽고 깊이 이해한 뒤 긴 글로 적어오는 아이가 있고, 몇 년째 우려먹은 듯한 전래동화 내용으로 대강 휘갈겨 오는 아이가 있다. 1학년 부모님들과 통화를 해보면, 적당히 했으면 하는데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두 시간이나 투자하는 아이가 부모 속을 태우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집은 조금 더 정성껏 하라고 해도 5분 안에 해치우는 모습으로 애를 태우기도 한다. 6학년 부모님들은 아이가 독서기록장을 어떻게 해서 내는지에 큰 관심은 없으시다. 그만큼 잘하든 못하든 알아서 해낸다는 점에서 나는 6학년 아이들의 성장을 느끼곤 한다.


사회, 국어 등의 조사숙제

  3학년부터 등장하는 사회 수업에는 뭔가를 조사하는 과제가 많다. 교과서에서는 조사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인터넷 검색하기’이다. 학생마다 사정이 달라서 더러는 집에 컴퓨터가 없는 경우도 있기에 나는 조사숙제는 웬만하면 학교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편이다. 반마다 배정된 컴퓨터실 사용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교실에 패드를 가져와서 이용하기도 한다.


  6학년 국어책에는 학기마다 ‘적절한 자료를 활용하여 발표하기’가 나온다. 6학년 아이들은 검색 능력과 ppt 제작 능력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 시간 안에 뚝딱 해버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독수리 타법으로 간신히 제목 슬라이드를 만들고 수업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먼저 과제가 완료된 아이들을 보조교사로 붙여주어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정해진 차시에 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 조사 과제가 개인적으로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긴 시간 투자한 만큼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아이들을 보면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인 만큼, 발표에 공을 들이고 서로의 프리젠테이션에 귀를 기울여준다.




  학교에서 가끔 내주는 숙제는 거의 안 해오면서 공부시간 틈틈이 학원 숙제를 꺼내어 푸는 6학년 아이들이 있다. 할 일을 다하고 하는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아직 수업 중인데 그러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왜 학원숙제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니 ”안 해가면 혼나서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학교 숙제는 안 해가도 혼나지 않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아진 모양이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일인으로서 씁쓸한 현실이지만, 내 자녀를 영어 학원에 보내기도 하는 부모로서 숙제가 많을 수밖에 없는 사교육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바다. 숙제를 전혀 안 해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어 요즘은 아예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는 선생님들도 많다. 뭔가 시간이 좀 드는 숙제를 내 주면 ‘엄마 숙제 아닌가요?’하고 민원을 넣는 분들의 항의전화도 한 몫 했을 것이다. 1학년 때 학교 숙제를 미루지 않고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 맞다. 아이가 나중에는 혼자서도 잘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은 바로 ‘엄마(보호자)숙제’가 맞으니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거두어주셨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패들렛 - 링크로 접근할 수 있는 공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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