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와 진단평가
시험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중학교부터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이름으로 학기에 두 번 정도의 시험을 치르고 실기 중심의 수행평가도 다양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초등학교에는 어떤 시험이 있을까?
받아쓰기
초등학교 1학년에서 가장 중요하게 성취해야 할 기능 중 하나가 한글 떼기인데, 입학하기 전에 이름 정도는 꼭 쓰고 가는 것이 좋다. 1학년 1학기 국어(가) 교과서에 ㄱㄴㄷ 부터 한글을 공부하는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혀 모르고 가는 것보다 웬만큼 알고 가는 것이 당연히 학교 생활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모국어를 배우는 순서는 대체로 '듣기 - 읽기 - 쓰기' 순으로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국어책도 '듣기 • 말하기 / 읽기 / 쓰기'로 분권 되어 나오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그 네 가지를 분절적으로 다루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는 의견에 따라 '국어'라는 한 권으로 통합되어 나온다. 그 안에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활동이 통합적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이다. 말하고 읽는 것까지는 웬만큼 잘하는데, '소리 나는 데로 듣고 받아 적는' 활동인 받아쓰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소리 나는 그대로 써야 하는 것도 있고, 소리와 다르게 겹받침 등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1학년에서 받아쓰기를 하는 것은 사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활동이 아니라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재량껏 실시하는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수업 진도와 관계없이 국어책에 나오는 적당한 문장들을 단원별로 골라서 받아쓰기 급수표를 만들어 배포하고, 주 1회 정도 적당한 시간을 내어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요즘은 교사 커뮤니티가 발달하여 1학년 또는 2학년 받아쓰기 급수표가 비슷한 형태로 공유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1학년 아이들이 입학 초기부터 한글을 쓰는 것이 교육과정 순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받아쓰기 시험을 보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당한 사례도 있다.
'받아쓰기가 아동학대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받아쓰기'라는 활동이 아이들의 국어 학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기에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받아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1학년 2학기부터 시작하거나 2학년 1학기부터 하기도 하고, 1학년 때는 받아쓰기 시험 대신 바른 글씨 쓰기 활동을 하기도 한다.
1주일에 한 번, 열 문장 정도를 듣고 받아 적는 10여분의 테스트 시간은 언제나 아이들을 긴장하게 한다. 문장부호만 틀린 것은 △로 표시하고 5점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100점을 맞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학년 담임을 할 때 안타까웠던 것은 전혀 공부하지 않고 와서 매번 10~20점을 받는 아이들이었다. 하교 후에 남겨서 따로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기에는 아이들도 하교 후 일정이 많아 시간이 부족하다. 아이들의 첫 시험이자 자아효능감을 기를 수 있는 '받아쓰기'는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주느냐에 따라 성취도 차이가 크게 난다.
최근 어떤 선생님께서 교육열이 낮은 학교로 발령받은 후, 고심 끝에 받아쓰기 연습 방식을 아예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동안은 '주말에 공부하고 와서 월요일 1교시에 시험 보기'가 효과적이었는데, 그 동네 아이들은 주말 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기에 점수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학교에서 조금씩 단계별 연습을 시켜 (처음에는 초성만 쓰기, 그다음에는 모음만 쓰기, 문장부호만 제시하기, 띄어쓰기만 제시하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셨음) 금요일 마지막 시간에 시험을 보니 점수가 많이 올랐다는 사례를 듣고 받아쓰기 점수는 어른들의 관심의 양과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진단평가
의사가 환자를 처음 만나 청진기로 진찰을 하듯, 해마다 학기 초에 아이들의 학업 수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새로운 담임의 입장에서 진단해 보는 의미로 치르는 시험이다.
당연히 1학년 아이들은 해당되지 않고,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초등 3학년 정도부터는 학기 초에 간단하게 실시한다. 진단평가에는 바로 이전 학년에서 공부했던 국어, 수학 내용 중에서 단원별로 적당한 분량의 기본적인 문제를 출제한다. 요즘은 진단평가를 따로 실시하지 않고 '진단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간단한 활동을 통해 학습부진아를 판별하기도 한다. 과목별로 학습부진아를 추려두어야 나중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튜터선생님이나 키다리샘 등 특별보충수업 등을 지원해 주기 용이하다. 진단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할 필요는 없지만,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 해에 배운 중요한 내용은 완전히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다음 학습에 지장이 없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올해 6학년 담임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3월에 학습부진아가 대량 발견되는 것이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다문화학생이 많고 교육열이 높지는 않은 편이다. 5학년 때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방학 내내 놀다가 왔을 것만 같아서 진단평가가 있기 전에 5학년 전체의 수학 단원평가를 모조리 출력해서 풀게 했다. 하루는 1학기 내용을 전체적으로 풀게 하고 다음날 풀이해 주는 식으로 총 4일에 걸쳐 5학년 내용을 대대적으로 복습한 것이다.
'곧 진단평가가 있을 예정입니다'라는 예고에 사색이 되었던 아이들은 '그래서 선생님이 5학년 때 내용을 총 정리해 주겠습니다'라는 말에 '휴 다행이다!'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간 내용을 공부하는 게 싫은 마음보다 진단평가를 잘 쳐서 새로운 시작을 잘해보겠다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져서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의욕과는 달리 5학년 때 내용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맞은 학생은 한두 명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