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다리는 시간
선생님, 후식 먼저 먹어도 되나요?
이렇게 질문하는 아이들은 99%의 확률로 1학년이다. 6학년은 묻지 않고 알아서 먹고 싶은 순서대로 먹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분명히 선생님은 "밥 먼저 먹어야지"라고 말할 것이고, 괜히 한번 더 유심히 아이들을 단속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애초에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나는 교직 생활 중 대부분을 학교 식당이 따로 없는 학교에서 근무했다. 식당배식이 아닌 '교실배식'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내내 교실배식을 위해 급식차를 교실 안으로 들이고, 먹고 난 후 뒷정리까지 해왔기 때문에 교사가 되고 나서도 그 일들의 고단함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같다. 요즘 근무 중인 학교는 감사하게도 1층에 식당이 있어서 급식과 관련된 부담감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이들을 질서 있게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우아하게 식사를 마치고 퇴식구에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교실로 돌아오면 끝이다. 특히 지금의 6학년들은 밥 먹는 시간이 10분 ~ 15분 사이로 무척 짧기 때문에 40분이라는 점심시간이 꽤 여유 있게 느껴진다.
1학년
학교에 처음 입학한 날 하루를 제외하고, 학교에 오는 날은 대부분 점심 급식을 먹게 된다. 1학년은 학교에 처음 들어와서 어리바리한 만큼, 선생님이 첫날 알려주는 급식 시 주의사항이나 규칙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1년 동안 열심히 지키려고 애쓴다. 학교 생활에 관해서만은 새하얀 도화지인 셈이다.
입학식 다음 날에는 PPT로 잘 정리된 ’점심 시간에 지켜야 할 약속' 같은 것을 보여주고, 4교시를 통째로 할애해가며 적응 교육을 하기도 한다. 줄 서는 순서, 급식판을 잡는 방향, 수저를 동시에 함께 움켜쥐어야 하는 왼손(오른손은 유사시 후식을 집어야 할 수도 있음)의 모양부터 '친구를 밀지 않아요.' '뜨거운 국물을 쏟을 수 있으니 앞을 잘 보고 걸어요.' '새치기를 하지 않아요.' 하는 질서 교육까지 디테일하게 이루어진다. 밥 먹기 전에 손을 꼼꼼하게 씻어요, 싫어하는 음식이 나와도 한 입은 꼭 먹어보아요, 먹을 만큼만 받고 모자라면 더 받아요, 식사 중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아요, 버리기 전에 남은 음식은 국그릇에 모아요, 퇴식구에서는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서 버려요, 뼈다귀나 막대기는 따로 버려요... 등 기억해야 할 주의 사항은 끝도 없이 많다. 하지만 처음 잘 가르치는데 드는 에너지는 나중에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는데 쓰이는 에너지에 비하면 투자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에 많은 1학년 선생님들은 급식의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다.
점심시간이 12시부터라면, 1학년 아이들은 11시 40분부터 손을 씻기 시작하는 게 좋다. 스무 명가량의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도 보고 손도 -배운 대로- 꼼꼼하게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반 아이들도 비좁은 화장실에 몰려들기 때문에 이리저리 치여 마지막에 오는 아이까지 머릿수를 세며 기다리다 보면 20분은 금방이다. 늦는 아이들은 항상 늦고, 대체로 1학년 교실은 식당과 가까운 편이어서 … 나도 먼저 온 아이들만 데려가서 줄 서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여차하면 혼자 낙오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음식을 다 받아서 정해진 자리에 오는 것도 천천히 하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국물이 흔들려서 넘치기도 하고 앞서가던 친구가 급정거를 해서 뒤따라오던 아이들이 연달아 이중 삼중 추돌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모두 앉을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먹기 시작하면 일단 조용해지긴 하는데 1학년 아이들은 다 먹는 데 걸리는 시간도 개인차가 크다. 모든 음식을 마시듯이 후루룩 먹어치우는 아이와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우물우물 한참 동안 음식을 물고 있는 아이, 입이 짧아 거의 모든 음식을 손도 대지 않고 선생님 눈치를 보는 아이, 먹는 것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많아서 수다를 떠느라 바쁜 아이 등 개성이 다양해서 끝까지 모두를 기다리다가는 40분이 금세 다 흘러가버린다. 그렇다고 다 먹은 아이들만 교실로 올려 보내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에 아이들과 '긴 바늘이 6에 갈 때까지는 기다리기' 하는 식의 약속을 해두면 좋다. 그때까지도 다 못 먹은 두세 명의 아이들은 마저 먹을지 의향을 물어본 후 잔반처리 하거나, 다 먹고 나서 셋이 함께 교실로 오라고 당부를 한 뒤 남겨두기도 한다. 선생님마다 원칙은 정하기 나름인데 다른 반의 사정이나 학교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좋다.
6학년
급식차를 교실로 밀고 들어오던 학교에서는 6학년 학생들 힘이 넘쳐서 급식차로 벽을 박거나, 중요한 반찬 하나를 통째로 엎는 사고가 가끔 발생하고는 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급식차가 너무 무거워서 교실 문턱도 잘 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을 뜨는 것도 1학년은 못하지만, 6학년은 - 훈련만 잘하면 - 건더기까지 잘 건져내며 배식할 수 있다.
이번에 맡은 6학년 아이들과의 첫 점심시간에 가장 크게 놀란 부분은 식사의 신속성이었다. 골고루 잘 먹는 아이부터 입 짧고 편식하는 아이까지 모두가 10분 이내에 식사를 완료했다. 1학년 아이들이 죽상을 하고도 식판을 붙들고 앉아있는 것과는 달리, 6학년은 싹싹 긁어먹는 것도 시원시원하고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싹싹 긁어서 버리는 것도 쿨하기 그지없다. 새 학기 첫날 영양사 선생님께서 '6학년은 최소 20분 정도 식판 앞에 앉아있게끔 지도 부탁드려요'라고 당부하셨던 메시지 내용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이런 말을 해두지 않으면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싹 다 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급식도 교육의 연장선으로 보고, 골고루 먹게 하기 위한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있었다. 요즘은 편식에 대한 터치는 최소화하는 추세이다 보니 학교는 잔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루에 배출되는 음식쓰레기 양이 어마어마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비용이 연간 몇백에서 몇천만 원 수준이라고 하니 '먹을 만큼만 받기'를 교육하는 것으로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
처음에는 나도 '20분 규칙'을 지켜보려고 했다. 1학년 아이들과 있을 때에는 내가 거의 제일 먼저 식사를 완료하고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칭찬과 잔소리를 했는데, 6학년 아이들은 내가 다 먹기도 전에 식사를 완료하고 식당에 걸린 시계와 내 얼굴만 번갈아보며 멀뚱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시계를 확인하니 이제 막 10분을 지난 참이었다. 천천히 먹는 아이들까지 기다리면 15분 정도였다. 고민 끝에 4월부터는 15분으로 타협하고, "다 먹은 사람은 천천히 정리해서 교실로 갑니다"라고 말한다. 잔반 처리법도 대부분 몸에 익은 상태여서 별다르게 참견할 것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5층 교실로 돌아와서 양치질까지 끝내도 다음 수업까지 10여분이 남는다. 1학기 초반에는 내가 시간을 착각했나 싶어 수업을 10분 먼저 시작한 적도 있다.
후식
밥은 남겨도 후식은 거의 남기지 않는다는 건 1학년과 6학년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취향을 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1학년 아이들은 손아귀에 힘이 없어서 포장된 상태로 나오는 후식을 스스로 까먹기 어려운 날이 종종 있다. 나는 요구르트(빨대 없이 제공되는 경우), 푸딩처럼 뚜껑을 뜯어야 하는 건 처음부터 한 바퀴 쭉 돌면서 미리 뜯어놓아주기도 한다. 한창 식사 중에 한두 명씩 계속 찾아와서 까달라고 하면 나도 괴롭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런 것도 못해?' 하고 놀란 건 의외로 과일 후식을 만났을 때이다. 1학년 중에는 송편이나 딸기 꼭지를 처음 보는 아이도 있었다. 한 아이는 "우왓!! 책에서 보던 딸기 그대로의 모양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그 아이가 먹어 온 딸기는 꼭지가 제거되고 말끔하게 손질된 상태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고, 그 말을 들은 나와 배식도우미 어르신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날 보니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그런 딸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딸기 꼭지의 처리법을 모르는 아이들은 꼭지째 아삭아삭 씹어서 먹어버리기도 한다.
반으로 뚝 잘라서 제공되는 키위를 처음 만난 아이들은 과도 대신 치아를 이용해 껍질을 갉아서 퉤퉤 뱉은 후 먹기도 하고, 어찌 먹을지 몰라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나는 숟가락을 이용해 동그랗게 파내는 기술을 선보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에게는 가까이 가서 파주기도 한다. 선생님이 단번에 푸딩처럼 파내는 모습을 직관하면 “히야아” 하는 귀여운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나도 해볼래요!” 하며 키위를 파기 시작한다. 아직 껍질이 붙어있는 사과, 복숭아, 배 등의 과일을 먹는 법도 힘들고 씨가 있는 체리나 포도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려 씨만 뱉어내는 것도 어려운 1학년이다.
6학년 아이들은 음료수를 까거나 젤리를 뜯는 것쯤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간혹 낑낑대는 친구가 있어도 그들 사이에서 해결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선생님에게까지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후식에 대한 호불호도 확실하게 갈리기 때문에 어떤 것은 먹기 전에 슬그머니 친구에게 양도하기도 한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면 우리 반 반장 식판 한 칸에 후식이 수북하게 쌓여있을 때가 있다.
"친구 후식 뺏어먹지 마라" 혹은 "자기껀 자기가 먹어야지"라고 한소리 했더니, "친구가 먹기 싫어 버리는 것보다는 제가 먹는 게 낫지 않나요?" 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 번 그런 문화가 정착되고 나면 묘하게 파워게임으로 변질되어서 '내가 먹고 싶지만 쟤한테 주고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아니면 싫어하는 음식을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이에게 떠넘기는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모르면 몰랐지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게 나의 입장이다. 6학년은 이미 채색까지 거의 다 되어가는 도화지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밑그림을 다시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소화력
1학년 아이들은 우유를 먹은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드물게 수업 중에 약간의 음식을 섭취할 일이 있었다면 식사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래서 어떤 수업의 결과물로 간식이 생겼을 때, 바로 먹이지 않고 시간대를 확인하게 된다. 잠시 후 점심을 먹어야 한다면, 그 간식은 식사 후에 주는 것이 좋다.
6학년 아이들과 '찾아오는 직업체험'을 한 적이 있다. 취향에 따라 네 곳으로 흩어져 각자 선택한 직업을 간단하게 체험해 보는 날이었는데, 우리 교실에는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오셔서 (무려!) 햄버거 만들기를 진행했다. 조그마한 미니버거겠지 했는데 보통 크기의 실한 햄버거였다. 꽤 두툼한 참깨빵 사이에 소고기 패티, 치즈, 야채까지 듬뿍 넣어 만든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그 아이들이 점심을 못 먹을까 봐 속으로 걱정했었다. 식당에 내려가서는 해당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지 말고 먹을 만큼만 받으라고 당부했지만, 그 아이들은 '선생님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하는 표정으로 평소처럼 식사를 마쳤다. 3~4교시에 햄버거를 만들어 먹은 아이들이니 애초에 음식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다른 친구들이라는 걸 간과한 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대부분 각 반에서 온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들이자 음식 만들기와 먹기에 굉장한 집중력을 보였던 아이들이었다.
무슨 음식이든 골고루 맛있게 먹는 모습은 복스럽고 사랑스럽다. 공부 시간에는 초롱초롱 빛나던 아이가 점심 시간에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밥에서 콩을 골라내기도 하고, 교실에서는 늘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아이가 식당에서는 눈을 반짝거리며 식판을 싹싹 비워내기도 한다. 가정에서 매일 먹는 식사는 가족들의 입맛에 맞추어져 있겠지만 학교에서 먹는 점심 메뉴는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섞여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는 아이들이 무척 안타깝다. 새로운 음식을 만났을 때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느끼고 '한 입 먹기'부터 시작해 보는 아이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게 닮아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는 버섯 먹기가 너무 싫었는데… 어느 날 급식에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는 거야! 어렸을 때 싫어했던 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맛있어지는 날이 오는데, 오늘이 그 날일 수도 있는 거잖아. 언제까지 꼬맹이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어. 새로운 음식이 맛있어지고 나면 예전에 좋아했던 음식이 싫어지기도 하더라고.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으니, 오늘도 꼭 모든 반찬 한 번씩은 먹어보자! 알았지?"
1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려주었더니, 어느 날은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고백했다.
"선생님, 저 오늘.. 그 초록색 나물 처음 먹어봤는데요.. 선생님 말처럼 그게 생각보다 맛있었어요. 그 나물 이름이 뭐예요? 엄마한테 가서 해달라고 하게요."
글을 쓰다 보니 저절로 내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지금도 생각나는 그 맛있는 나물은 바로 '깻잎순나물'이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어쩌면 깻잎순나물을 처음 학교 급식에서 맛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이 세상의 모든 단맛 쓴맛 그리고 매운맛 떫은맛까지 알아보고 자신만의 취향을 알아내는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생각이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는 … OO 맛이 너무 싫었거든? 근데 말이야.. 어느 날 급식에서 먹어봤는데 그날따라 기가 막히게 맛있는 거야! …
깻잎순나물 어린이가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그날의 달콤 쌉싸름한 맛을 기억하고 용기 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에게 ‘깻잎순나물’과도 같은
작은 도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