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30분쯤, 전화가 왔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또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
학교다.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또 무슨 큰일이 났나?
나는 숨죽인 채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또 창체(컴퓨터) 선생님 시간에 말을 듣지 않아 교실로 쫓겨온 것이다. 방과 후 시간에 컴퓨터를 배운 게 독이 된 것일까. 아이는 자기도 배워서 안다며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 듯했다. 어제 창체(놀이) 시간에도 담당 선생님을 힘들게 한 모양이었다.
나는 죄인이 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네네 하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알고 계시라고 연락드렸어요."
하시며 통화를 마쳤다.
시간이 멈춘다.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다. 이제 화도 나지 않는다. 아이는 학교에 있고 당장 혼을 낼 수도 없다.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휴대폰만 열심히 들여다 보고 검색으로 오전이 흘러간다.
아이가 먹는 약이 효과가 없는 것일까. 아이의 약은 아토목과 아리피졸이었다. 약의 효능과 부작용도 다시 찾아보고 느린 아이들 카페에도 들어가 검색해 본다.
아토목은 효과가 미미하다느니 먹고 짜증이 늘었다는 글이 보인다. 다음 주에 병원에 가서 당장 약을 바꿔야 할까.
그 카페에는 나처럼 아이들 때문에 힘겨운 부모들의 하소연들로 가득했다. 중증 자폐를 가진 아이의 부모들은 절망과 회한으로 삶의 의욕마저 잃어가고 있었고 온갖 약의 종류와 발달치료를 바꿔가며 고군분투하는 ADHD 부모들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개중에도 희망적인 글들은 있었다. 맞는 약을 찾아 많이 좋아졌다거나 중학생이 되니 정상인의 궤도에 올랐다는 이야기들. 그런 글 아래에는 그런 미래와 희망을 붙잡고 싶은 안쓰러운 부모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주의집중이나 충동성은 약으로 조절이 되지만 사회성은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는 글은 나를 더 절망하게 했다. ADHD인 줄 알았지만 사회성 장애인 아스퍼거였다는 글은 나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할까라는 충동이 일고 이전에 다니던 센터에 연락해 사회성 그룹치료를 문의했다.
어제만 해도 아이의 학습을 걱정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을 몇 개를 다니던데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에 전집이며 영어책이며 블로그를 뒤지면서 정보를 모으던 나였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든다. 왜 사회는 이런 아이들을 방치하는 걸까. 모든 책임과 고통은 오롯이 부모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이 때문에 무급 휴직을 쓰고 있지만 바우처와 같은 지원을 조건이 맞지 않아 받지 못하고 있다. 맞벌이일 때야 한 시간에 7만 원 하는 놀이치료를 부모로서 감당해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마음이 아픈 아이나 부모들은 국가에서 조건 없이 지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지 정신과와 같은 병원이나 발달센터로 가는 문턱이 낮아지고 오히려 더 보편화될 텐데 말이다.
왜 우리는 죄인이 되어야 할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지자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오기 전 병원에 문의할 내용과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상담 때 질문할 내용, 아이가 왔을 때 어떻게 지도할 건지를 정리했다.
시간이 흘러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는 이미 주눅이 들어있었다. 마주 앉은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선생님께서 혼내신 거 같은지, 선생님의 기분은 어땠을 것 같은지.
아이는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고 억울하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계속 떼를 쓰고 울고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끝까지 침착하게 묻고 대응했다.
다른 아이들도 컴퓨터를 마음대로 만졌지만 너만 교실로 간 것은 네가 이렇게 울고 떼를 썼기 때문이라고. 다음부턴 울지 말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라고 늘 하던 말이지만 또 할 수밖에 없었다.
흥분하지 않는 나의 모습 때문인지 아이도 곧 차분해졌고 앞으로 노력해 보기로 또 다짐을 했다. 또 어길 경우 받게 될 불이익과 잘했을 경우 받게 될 혜택도 빼놓지 않았다.
그 다음날, 오후에 또 전화가 왔다. 학교였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전화를 받았다.
"내일 오카리나 가져오라고 연락드렸어요. 알림장을 수정했는데 못 보셨을까 봐요."
다행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를 끊으시려는 선생님을 급히 붙잡았다.
"선생님, 혹시... 오늘은 아이가 잘했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오늘은 특별활동이 없어서인지 잘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한껏 높아진 톤으로 감사하다며 통화를 끊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디디는 듯 위태롭다. 말 그대로 일희일비의 삶이다. 하지만 분명 좋은 날도 있다. 나부터 감정을 조절하면서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뒤에 내 아이가 있음을 잊지 말자.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