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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검은 27화

눈동자

by 혜윰


“우리 눈은 공막과 눈동자로 되어 있잖아. 인간은 공막이 흰 유일한 영장류야. 원숭이나 침팬지를 봐봐. 게네들은 공막이 하얗지 않아. 우리가 흔히 눈으로 말한다고 하잖아. 그 눈빛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공막이 진화한 거지. 그리고 안구의 가장 중심, 홍채로 둘러싸인 동그랗고 검게 보이는 동공 말이야. 동공은 실제로는 투명해. 안구 내부로 들어오는 빛이 반사되지 않아서 검게 보일 뿐이야. 근데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 이 동공이 싫어하는 사람을 보면 수축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확장된다는 거야.”


오래전 동아리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처음 본 그녀의 눈이 유난히 맑고 까맣다면서. 그 말을 들은 후로 그녀는 몇 번 생각했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동공이 수축했다 확장될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의 눈을 확인해 봐야지.’ 그러다 스르르 기억에서 저물었던 이야기가 문득 왜 떠올랐을까.


환한 달빛을 먹구름이 가리듯 그렇게 눈빛을 지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다. 흰 여백이 고스란히 비추는 어둠을 동결시키고 싶다고. 어떤 고통도 번역해 낼 수 없도록. 마음의 지진으로 시간을 갉아먹던 밤의 계절이었다. 하지만 먹구름은 지나갔다. 영원 안에 가둘 수 있는 건 없다는 듯.


시간의 바퀴가 삐거덕거리며 돌았고, 길의 주름마다 엉겨 붙던 어둠도 서서히 걷혔다. 마음의 각질이 눈처럼 내리던 계절에서 건져 올린 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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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