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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규 Oct 04. 2024

전원생활의 꿈을 접은 이유

노후 주거의 조건

은퇴하면 거주 이전의 폭이 넓어집니다. 직장 안 다녀도 됩니다. 메인 몸이 아닙니다.  


와이프 고향은 경남 남해입니다. 거제 옆에 있는 섬입니다. 연육교가 있어서 섬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름다운 곳입니다. 와이프는 언제나 남해를 그리워합니다.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객지생활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남해에서 산 기간보다 훨씬 긴 기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객지 같다니 놀랍기도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구에 사는 친구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걸 술자리에서 들었습니다. 서울이 여전히 타향이라고 합니다. 


"아, 시골 출신들은 정서가 다르구나."


와이프는 그전부터 노후에 남해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최소한 마당 있는 집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저와는 취향이 반대입니다. 저는 서울 태생이라서 그런지 대도시가 좋습니다. 아파트가 좋습니다. 아파트만큼 편한 곳이 없거든요. 


부부가 같이 집 근처 목감천을 산책하면 와이프는 아파트를 보면서 흉물스럽다고 합니다. 내게는 멋지게 보이는데 말이죠. 


은퇴기인 60대 초반이 되면서 시골생활을 진지하게 검토해 봤습니다. 와이프가 그렇게 소원이라는데 들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일단 남해를 대상지로 떠올려봤습니다. 그런데 너무 멉니다. 시골로 내려가도 서울에 경조사 등 때문에 자주 올라와야 합니다. 남해라면 당일 이동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남해 말고 수도권 인근을 찾아봤습니다. 파주, 김포, 여주, 이천, 용인 정도가 대상지가 되더군요. 경기도 화성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는데, 너무 공장이 많았습니다. 쾌적한 공기를 위협하는 요소입니다. 화성만이 아닙니다. 경기도, 충청도 일대는 대부분 공장이 곳곳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귀촌할까 검토하던 시점에 전원주택 매매 유튜브 많이 봤습니다. 대상지에 있는 부동산 매매 유튜브는 거의 다 봤습니다. 


시골집은 가격이 안 오릅니다. 노후에 가격 안 오르는 집에 돈 몰아넣고 고생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려면 싼 집을 얻어야 합니다. 


검색어를 촌집, 시골집 이런 단어를 넣으면 비교적 저렴한 주택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집들은 상태가 안 좋습니다. 냉난방에도 문제가 있고, 보안도 취약합니다. 


전원주택 생활을 즐기면서도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했다고 홍보하는 타운하우스도 살폈습니다. 김포, 파주 등에 많더군요. 처음에는 이거다 싶었는데, 자꾸 보니 약점이 보였습니다. 전원주택이라기에는 독립성이 부족하고, 옆집과의 소음 등 약점이 많다는 평가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타운하우스도 답이 아니었습니다. 


약점이 없는 집을 찾다 보면 점차 가격이 올라갑니다. 5억, 6억 등 높아집니다. 서울 아파트 팔고 시골집 사면 남는 돈이 없을 상황이 됩니다. 


용인에 고급주택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멋진 집이 너무 많더군요. 가격도 10억 정도는 훌쩍 넘고요. 쾌적함, 안전감 등을 고려할 10억 이상주어야 마음에 맞는 집을 찾겠더군요. 


그러면 애초에 시골로 이사하는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좀 더 싼 집으로 옮기고 노후에 현금을 확보한다는 게 애초 이유 중 하나인데, 현금 세이브는커녕 지출할 돈을 더 만들어야 하니까요. 


60대인 지금은 불편해도 전원생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70대, 80대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70대, 80대는 텃밭이 있어도 무용지물일 겁니다. 집이 복층이기라도 하면 자기집 계단 오르락내리락하기도 고역일 것입니다. 


그때 되면 가장 필요한 것은 짧은 동선입니다. 가게도 가깝고, 특히 병원이 가까워야 합니다. 쾌적한 곳을 선호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반대가 되는 것이죠. 


지금이라도 콤팩트 시티를 추진해야 합니다. 콤팩트 시티는 노령화, 인구 감소를 대비한 대책입니다. 걸어서 병원, 상점 등 생활이 해결될 수 있도록 작은 원 안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몰아넣는 미래형 도시계획입니다. 


우리나라에 무엇보다 필요한 정책입니다. 그런데 노령화, 지방붕괴, 인구감소 얘기는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콤팩트 시티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60대에 시골생활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10여 년 후에는 서울 등 도시권으로 이사하려고 할 가능성이 거의 백 프로입니다. 그때 집값의 격차 때문에 고생할게 뻔합니다. 10여 년 동안 시골집은 가격이 내리고, 서울은 오르고 하면 갭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냥 지금 사는 구로구 개봉동에 살기로 했습니다. 이사를 안 가기로 결심하니 개봉동이 더 마음에 듭니다. 


귀촌 궁리하느라고 덕분에 시골집 동영상 많이 봤습니다. 덕분에 힐링도 된 것 같아서 좋은 추억 쌓았습니다.  


여생이 30년 남았다고 볼 때 거주지를 이리저리 옮기기보다는 길게 보는 게 바람직합니다. 결국에는 병원 근처에 사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거주지가 산재한 지방도 콤팩트 시티로 작은 원 안에 생활필수시설을 몰아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일본을 보면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콤팩트 시티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 에드먼드 버크 (영국 철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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