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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린 Jul 19. 2022

기쁘지만 먹먹한, 남매 간 역전의 순간.

육아/육묘 이야기 '오늘의 자식'

느린 아이를 첫째로, 빠른 아이를 둘째로 키우다 보면 종종 속상한 순간이 찾아온다.

둘째를 보며 '아이가 이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커갈 수 있는 존재였나' 싶은 허무한 깨달음이 느껴질 때다. 하필이면 둘째가 새롭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때 느껴지는 감정이어서, 둘째에게 미안하기가 그지 없다. 그리고 아이의 개월 수와 발달 상태를 체크하면서 성장 속도도 비교가 된다.


둘째 아이가 만 17개월이 되던 무렵에는 확실히 느껴졌다. '둘째가 첫째의 발달 상태를 따라잡고 어느 부분에서는 넘어섰구나.' 싶었다.

둘째의 눈부신 성장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대견한데, 한편 첫째의 머물러 있는 발달 상태가 너무나도 안타깝고 속상했다. 우리집 첫째는 말이 늦는데, 그게 결국은 사회성 및 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사소통이 또래 수준만큼은 돼야 사람도 사귀고 배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데다 삶이 너무 퍽퍽해 판단력이 흐렸는지 긴가민가 했는데, 첫째 아이는 정말로 발달이 늦은 거였다. 대략 일년 반 전 아이가 30개월이 되었을 때 그 사실을 병원 검사를 통해 확인했다. 이후 병원에서 권하는 여러가지 치료와 교육과 운동을 병행했지만, 아이의 발달속도 자체가 느리기에 또래와의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졌다. 처음에는 '말이 늦다' 싶었던 것이, 어느새 '사회성과 지식'의 수준 차이가 되어버렸다.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마라톤 같은 장기전이에요.' '엄마의 체력이 중요해요.' '지치지 않아야 해요.' 등등의 이야기를 보면서 발달지연을 인지한 양육이 시작됐다. 그런데 막상 그 느림에 대해서는 둘째를 키우면서 격하게 체감했다. 돌아보면 첫째는 돌 이후부터 또래 대비 발달이 늦어지기 시작했었다. 그러는 바람에 육아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느린 아이만 키워봐서 일반적인 속도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심지어 둘째 아이는 발달이 빨랐던 것이다.


느린 아이와 빠른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음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둘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같고, 두 아이 각각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막상 이름을 붙여놓고 보면 같다.

'미안함', '안쓰러움', '대견함' '기특함', 기타등등.

하지만 이런 단어를 먼저 꺼내놓은 후에 한 아이를 떠올려 보면, 다른 아이를 떠올릴 때 드는 생각과는 절대 같지 않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미안한지, 왜 기특한지, 이든저든 왜 그런 건지가 달라서다. 맥락이 너무 다르지만 명칭은 같은 단어들이 내 안에서 돌아다닌다. 평범하든 그렇지 않든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면 느낄 부모의 마음이겠거니 한다.


다행히 이제는 다소 익숙해져서, 둘째의 성장을 그 자체로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다. 때때로 (사실은 종종, 아니 매일) 첫째를 걱정하지만 누구보다 애쓸 그 아이의 삶을 둘째와 구분하여 바라보는게 두 아이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와 남편)는, 언젠가 첫째가 둘째를 앞서는 '재역전의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해도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열심히 살아가겠지만.  아마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기뻐서 웃지 못하고 울 것도 같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탈도 적잖은 생활이지만, 오늘도 그럭저럭 잘 버티며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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