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 근무:○○병원-컴퓨터로 엑셀작업도 가능해요/직무지도의 어려움
누가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법이야?
취업에 성공한 발달장애인 분이야?
아님 직장인 아닌 아르바이트생 같은 애매한 너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법이야?
(왜 애매한지는 장애인직무지도라는 직업의 특성과 직무지도의 어려움을 글로 쓸 때에 다시 언급하겠다.)
코로나 시기였다.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버거운 시기였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는 장기화되어서 여전히 계속해서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인데요. 낼 병원 어디에서 뵈면 될까요?"
발음도 덜 어눌하고 목소리도 훈훈한 학생이었다.
"네. 그럼. 내일 일단 병원 총무과에 들러야 되니 그 앞에서 뵐까요?"
그렇게 지훈(가명)씨와 첫 전화통화를 했다.
일을 처음 맡을 때에는 대부분 학생과 부모님 전화번호, 근무할 사업체 주소, 업체 담당자명, 시간만 배정받고 간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공단이나 복지관에서 사전면담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미리 얼굴을 익히고 사업체에서 근무할 일을 대략적으로 전달받고 일을 하게 되는 거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일단 내가 맡을 학생이 적어도 어떤 친구인지는 알고 가는 거니까.
그런데 코로나 시기가 되면서 공단에서 훈련생들과 만남을 갖거나 하는 것은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에서 코로나 때문에 최대한 간담회, 사전면담 등등 이런 것들을 자제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고 했다.
그래서 늘 긴장이 되었다.
오늘 나에게 오는 학생은 어떤 친구인지...
그런데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굉장히 예의 바르고 매사가 똑 부러질 것 같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한편 나름의 깐깐함과 고집 때문에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만난 첫날!
우리는 병원 내에 있는
'심평팀(건강보험심사평가위원팀줄임말)'이라는 곳에 갔다.
엥? 여기서 이 친구가 무엇을 하는 거지? 청소업무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심평팀 과장님이 나오셔서 부서 내 다른 분께 우리를 소개하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을 알려주셨다.
병원이 큰 관계로 심평팀과 관련된 우편물이나 문서도 각 부서에 배달해야 되는데 병원을 한 바퀴 돌며 지금부터 길을 잘 외우라고 말씀 주셨다.
'어쩌지! 나 길치인데!!!'
내색은 못하고 병원부서가 빼곡히 적혀있는 지도를 2장 받고 아이처럼 지훈 씨와 함께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게 돌아와서는 컴퓨터 업무로 엑셀작업을 하라고 했다.
몇 장의 종이와 엑셀파일을 열어보이면 일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셨다.
'으악~~~~ 이게 뭐야~~~'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지훈 씨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 문제였다. 오랜만에 엑셀을 다시 해야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르치기까지! 물론 한때 컴퓨터 강사였던 관계로 어느 정도는 하지만 도대체 이것 어디까지 알아야 되고 가르쳐야 되는 거지.
겉으로 티는 못 내겠고 열심히 알려주시는 담당자님 옆에서 하나하나 중요 내용을 쓰고, 하는 방법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해가며 지훈 씨에게는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했다.
그래도 어찌 알아. 이 친구가 잘할지.
"지훈 씨? 혹시 컴퓨터 잘해?"
"네. 자격증이 있어요!"
"오! 그래? 그럼. 방금 담당자님이 말씀하신 것들 어느 정도 이해했어? 혼자 해 볼 수 있겠어?"
"네"
지훈 씨는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었다. 다행히 아주 복잡한 방식은 아니었다. 우편물의 수취인을 확인하고 엑셀파일에 접속해서 간단한 내용이 적힌 것을 가지고 담당 심평팀 이름을 기록하고 문서를 정리, 배달하는 것이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잘못된 점을 알려주면 바로바로 수정하고 잘 기억하려 애썼다.
그런데 심평팀의 일이라는 것이 의료관계자가 아닌 내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그것을 분류해서 각 담당자님께 우편물을 드리고 엑셀에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왠지 우리 둘 다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체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인데 우리 담당자님이 마지막에 검토를 해주시기로 되어 있어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모를 때마다 매번 미안할 정도로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다시 알려주셨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컴퓨터 업무는 발달장애인의 성취감을 위한 살짝 어려운, 교육 아닌 교육이면서 업무인 그런 것이 아닌가도 싶다. 주로는 각 부서에 우편물 접수와 회보, 우편물 배달이 많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다고 아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심평원 부서에는 30명이 족히 넘는 분들이 계셨는데 얼굴을 알아야 담당자께 우편물을 배달하기가 쉬웠다.
'어쩌냐, 나도 큰일이다. 얼굴 잘 못 익히는데. 너는 괜찮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둘 다 얼굴 익히는 것부터 서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자주 인사하며 얼굴을 익히고 외우기 위해 노력했다. 엑셀을 하고 우편물을 각 부서에 전달하고 어찌어찌 잘해나갔다.
지훈 씨는 병원에 취업한 관계로 병원 영상 온라인 교육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업무시간에 해도 된다고 배려해주셔서 사이트에 접속해 같이 영상을 보며 그날의 온라인 교육을 같이 받기도 했다.
배달업무를 할 때, 한 번은 미로 같은 병원 내 근무지에서 부서(환자는 모르는 숨어있는 부서가 많다는)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보다 어쩌면?'
"지훈 씨, ○○과로 가야 되는데 혼자 잘 찾아갈 수 있나? 선생님이 뒤에서 지켜볼게. 혼자 앞장서 가보겠어요?"
이런! 나보다 어찌나 길을 잘 찾던지 뿌듯하고 기특해 보이기까지 했다. 5일 정도 지나니 서서히 익숙해져서 시간도 여유가 생겼다.
다행히 처음 우려했던 것보단 둘 다 큰 문제없이 나름 직장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직무지도의 어려움)
그런데 어느 날 지훈 씨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훈 씨는 현재 대학생인데 대학생 학기말 취업으로 취업돼서 나온 것이라 리포트를 작성해서 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나보고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메일로 리포트 폼을 보내왔다.
"죄송하지만 어머님, 이것은 저의 일이 아닌데요?"
"네? 아니 선생님이 그런 일도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요. 어머님. 저는 사업체에서 지시하는 업무를 알려주는 것만 하는 건데요."
왠지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엔 이해가 되지 않는 화가 잔뜩 묻어났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더 이상 나도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를 몰랐다.
퇴근길에 혼자 고민하다 "알겠습니다. 제가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누구에게 말을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공단에, 복지관에 전화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원칙만 말씀 주시고 실상 조율을 해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결국 중간에 끼어 쩔쩔 맬 뿐이었다. 이런 문제들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도 목적이고, 장애인직무지도원이라는 일을 통해 사업체와 비장애인들, 장애인 학부모님들께 우리가 맡은 업무가 어디까지인지를 알려주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결론은? 할 수 없지.
"해보자! 내 숙제가 된다 할지라도!"
다행히 우리는 매일 시간에 쫓기듯 바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업무를 마치면 교육영상을 공부하든 숙제를 하든 사업체에서 다 배려해주셨다. 원래 이 모든 일들은 전부 본인이 집에서 해와야 하는 일이다.
적당히 바빴고 적당히 쉴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건 지훈 씨가 내가 우려했던 깐깐함이나 고집스러움이 없었다. 엑셀을 가르칠 때 잘못된 점이 있거나 배달 업무시 주변을 잘 살피지 않아서 주의를 주면 항상 예의 바르게 대답하고 고치려하고 노력하는 성실함이 있었다.(당시 병원 1동이 신규 건설 중이라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야 해서 안전의 위험이 있었다.)
병원 내에서의 교육영상을 다 끝내고 리포트 폼을 받은 날, 지훈 씨에게 물었다.
"지훈 씨, 어제 어머님으로부터 지훈 씨 대학교에 낼 리포트가 있다는 것을 들었어. 그런데 그건 사실 선생님 일이 아니야. 지훈 씨가 혼자 해야 되는 건데. 어제 집에서 문서를 보니까 왠지 선생님이 조금 도움을 주면 혼자 해 볼 수 있을 것 같던데... 우리 안 바쁠 때 짬짬이 해볼까?"
"네. 제 리포트니까 제가 해볼께요!"
"좋아! 그럼. 사무행정업무일지(리포트제목) 작성을 시작해 볼까? 오늘의 직무내용은 무엇이 있었는지 먼저 말로 나에게 말해보겠어?"
"우편업무를 했고요. 프린트 카트리지를 새 걸로 교체해 왔고요. 복사한 인쇄용지를 책으로 만들었어요."
조용조용 자신이 한 일을 나열했다.
"음, 좋아. 그럼 그것을 오늘의 직무내용에 적어보자. 자, 이번에는 오늘 한 일을 통해서 자기 평가 및 제안을 쓰는 건데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잘했을까? 먼저 말해볼래?"
처음에는 말은 했지만 기록하는 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10일 정도 지나자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 타닥타닥 자판기를 두둘기며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을 쓰기도 하고 잘했던 일을 쓰기도 했다. 스스로 자신의 숙제를 하고 있었다!
지훈 씨와는 약 한 달 정도 같이 근무했다. 끝날 날이 다가올 때쯤 A4용지에 업무내용과 지훈 씨 관련 내용을 적어서 부모님께 보내고 지훈 씨 책상 앞 파일에 꽂아두었다. 전체적으로 일을 잘했지만 엑셀에서 몇 가지 계속해서 틀리는 부분이 있었고 근로지원인 선생님도 나처럼 심평원 내용을 몰라서 멘붕이 올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훈 씨와 잘 지내는 법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지훈 씨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나보다 더 길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았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훈련시킨 후 글로 쓰는 것을 가르치면 비장애인들처럼 글을 잘 쓰는 친구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훈 씨 부모님과의 관계로 내가 해야 될 직무지도의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도 됐다.
기쁘게도 어머님이 마지막 날 감사하다고 '편지와 선물'을 주셨다.
알바 같은 이 직종에 대한 설움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선택한 이 직업에 대한 위축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 듣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대개 부모님들 성향상 숙제와 같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요청하시는 경우,
단 한 번도 '감사하다'라고 말 한적이 없다.
직무지도의 일이 아닌데 선생님이 당연히 다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들 생각하셨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우리가 돈을 엄청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 외 근무를 요청하기도 한다. 그게 아닌데...
그런 오해들이 쌓여 최선을 다했음에도 부모님의 화를 그대로 받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훈 씨 어머님이 나의 일을.
지훈 씨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주신 것 같아 오래만에 감동이 왔다. 자랑 엄청 했다.
그리고 더 좋았던 것은 지훈 씨의 포스트잇에 쓴 나에 대한 감사편지였다.
나도 고마웠어. 덕분에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많이 또 배웠어.
지금도 어디선가 취업해서 일하고 있을 지훈 씨에게 감사와 격려를!
* 발달 장애인도 대학교에 가나요?
내가 만난 발달장애인 중 대학교를 다닌다는 친구들은 나○○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사실 이 부분이 나도 가장 궁금해서 챗GPT에 물어봤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챗GPT의 답이고 정확한 것까지는 잘 모름을 미리 밝힙니다.)
한국에는 장애인만을 위한 '장애인대학교'라는 명칭의 정식 4년제 종합대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발달장애인이나 지적·청각·시각장애인 등을 포함한 다양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특화된 고등교육 기관, 평생교육원, 학과, 특수대학 등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요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대학 및 전문학교
- 한국복지대학교 (경기도 평택)
:국립 특수대학으로, 발달장애인·신체장애인을 위한 학과 개설, 특수교육과, 재활상담과, 보건복지 관련 학과 운영 / 기숙사·학습 지원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음
- 서울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지역 장애인평생교육원
: 대학은 아니지만, 평생교육법에 근거해 장애인 대상 전문 학습과정 운영
- 일반 대학 내 장애학생 지원센터 / 특수학과
: 대부분의 대학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운영해 장애학생들의 학업·생활을 지원
(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부산대 등 주요 대학 모두 설치)
- 한국농아인대학교 설립 논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문대학 설립이 논의된 적 있음
- 사이버대학(예: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서울디지털대학교 등)에서는 장애인 맞춤형 원격 교육 지원이 활발
정리하면, 한국에는 "장애인만 입학 가능한 정규 대학교"는 한국복지대학교가 유일하고, 그 외에는 일반 대학 내 지원체계, 평생교육원, 사이버대학이 주로 장애인을 위한 고등교육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챗GPT 2025.9.10)
=> 사진 : 어느날 출근길에 찍은 꽃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