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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단계의 우울감과 선데이블루스

by kleo

낮은 단계의 우울감. 책을 읽다 갑자기 꽂힌 단어예요. 그리고 금방 일요일 오후 시간대가 떠올랐어요. 영어로 Sunday blues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월요일보다 오히려 일요일에 더 우울감을 느낀다는 거죠. 막상 월요일이 됐을 땐 괜찮은데 월요일이 다가오기 전 일요일은 견디기 힘든가 봐요. 제가 일요일 오후를 특히 힘들어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요. 글쎄.. 회사를 다니면서부터였나 싶기도 하지만, 그전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기분 같이 느껴져요. 주로 일요일에는 약속을 잘 잡지 않는 편이거든요. 외출과 모임은 토요일에 몰아 잡고, 일요일엔 아무 스케줄 없이 늦잠을 자고, 아침을 챙겨 먹고, 밀린 빨래를 하는 루틴이 있기 때문이에요. 보통 빨래를 두 번에 나눠서 하기 때문에 빨래를 마칠 무렵엔 늦은 점심시간이 돼있어요. 그리고 늦은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 나면 금세 일요일 오후가 돼버리죠. 그 시간부터는 어느 계절이든 붕 뜬 먼지처럼 공허한 느낌이 들어요. 오히려 깜깜한 밤보다 더 막연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이 기분이 싫어서 카페에 가도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요, 친구를 만나도 여전히 그 기분에 휩싸여 벗어나지 못하곤 해요. 그래서 오히려 센치함에 기대 글이라도 쓰려고 하는 편인데.. 다 쓰고 번뜩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낮은 단계의 우울감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수치스러움이 몰려올 때가 많아 이내 지워버리곤 해요. 사실 매주 일요일 오후만 되면 찾아오는 이 낮은 단계의 우울감을 어떻게 다루는지, 글 쓰는 것보다 더 확실한 묘책을 알고 있어요. 바로 극장에 가는 것이에요. 빨래가 끝나고 대충 점심을 먹고 얼른 극장에 가버려요. 웬만하면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극장으로요. 그러면 준비하고 가는데 일단 1시간을 썼지요. 이 시간대는 보통 예술영화를 많이 보곤 하는데, 그러고 나면 2시간이 또 훌쩍 가있어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 계절에 따라 해가 져있기도 하고, 떠있기도 하지만 괜찮아요.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는 이 낮은 단계의 우울감이 조금은 해소되거든요. 물론 더 깊은 단계의 우울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제 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 외부(영화)의 탓을 하면 되거든요. 이를테면 ‘나는 저런 영화 못 찍겠지..’라든가 ‘나도 영화를 저따위로 찍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식이죠. 분명 일요일 오후의 시간은, 특히 제가 견딜 수 없는 3시에서 4시로 넘어가는 시간, 비로소 4시가 되고도 몇 십 분이 흐른 시간대가 되면 집에 해는 잘 들어오지 않아 어슴푸레해져요. 그건 극장도 마찬가지긴 한데.. 그런데 왜 집에 있을 땐 그 낮은 단계의 우울감은 더 나아질 기미도 없이 깊어질 잠재성만 있는 상태가 되는 걸까요? 좋게 말하면 차분해지는 느낌이기도 한데, 축.. 가라앉는, 심해지면 가라앉다못해 누군가 땅 밑에서 손을 뻗어 제 심장까지 힘껏 팔을 뻗는 기분까지 들어요. 운좋게 그 느낌에서 벗어나면 다행이지만, 속수무책 당하게 되면 그냥 심장을 쿵 내어주고 마는 거죠. 아.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그 느낌을 상상했더니 심장이 또 막 조여와요. 괜히 다급해지고, 온갖 걱정이 되고,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생각하며 불안해져요. 마침 지금 시간도 3시에서 4시로 넘어가는 사잇시간, 하필 또 해가 없는 우중충한 겨울이네요. 분명 낮은 단계의 우울함, 선데이 블루스라는 글감을 떠올리고 신이 나서 이 빈 화면을 켰는데 그때를 복기하며 글을 쓰다 보니 그 기분에 착 달라붙어버린 것 같아요. 아, 씁. 큰일인데. 아직 목요일이고, 일요일까지는 두 번의 오후가 더 남았다는게. 일주일에 한 번만 느껴도 될 기분을 두 번이나 겪게 될 한 주가.. 이번 주엔 꼭 극장엘 가야겠어요. 그리고 이 글도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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