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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반티카 May 10. 2024

비빔밥 먹고 초콜릿 이야기

2024 21일 루나 디톡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함 명상 에세이 #3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해요.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서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까요. 회사 다닐 땐 같은 팀 사람들이랑 밥 먹는 게 그렇게 별로였어요. 팀에 좋아하지 않는 부장님이 있었거든요. 같이 먹으면 늘 체할 거 같았어요. 그 부장님은 따로 먹으면 따로 먹는다, 같이 먹으면 오늘은 어쩐 일로 같이 먹냐, 말도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팀장님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가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아주 적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생각해요. 누군가랑 같이 밥을 먹으면 좋겠다고. 예전에 그럴 땐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화해 놓고 쩝쩝대는 것도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또 혼자 밥을 먹었어요. 이내 익숙해지더라고요. 조용함 가운데 맛을 음미하는 식사에, 말이에요.


오늘은 이웃집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어요. 작년 21일 루나 디톡스에서도 얘기한 적 있죠? 유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집은 좁고 환기도 잘 되지 않아 마땅히 그릴 데가 없을 때 이웃이 흔쾌히 마당에서 그리게 해 주었다고.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림이 더 많이 늘었답니다. 그린 그림의 개수는 물론, 제 실력도 같이요.


"그림 그릴 때 덥겠어요. 어떡해요?"

"괜찮아요."

"오늘 백반 메뉴는 비빔밥이에요."


식당을 하는 이웃이 차려주는 맛있는 비빔밥을 먹으려면 늦지 않게 내려와야겠다 했어요.

이웃의 걱정과 달리, 덥지는 않았어요. 다섯 시쯤엔가, 다 그려가니 벌써 서늘해지더라고요. 아직 여름이 오려면 조금 더 남았나 봐요. 다행이에요.


그림은 빨래집게로 집어 말리고, 도구를 정리했어요. 이웃이 하고 있는 식당에 내려갔는데, 문이 잠겨있고 재료 소진되어 마감한다는 메모만 붙어 있었죠. 전화를 해보니, 친구 만나러 잠깐 나왔다고, 조금만 기다리래요. 정말로 조금만에 돌아온 이웃이, 식사를 준비해 주셨어요. 둥글둥글한 파마머리에 서글서글한 표정의 친구 분은 밥을 드셨는지,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죠.


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어요. 양념장과 볶음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열심히 비비면서요. 여자들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 요리 수업 얘기에서 과일 얘기, 택배 얘기에서 서리태 얘기로 주제가 껑충껑충 뛰었어요. 계란 후라이가 아닌 부친 두부가 올라간 비빔밥이었는데, 두부를 으깨서 밥에 비비니 그게 또 얼마나 맛있는지!



사진에선 아직 비비기 전이지만.


너무 짜지도 않고, 달거나 맵지도 않고. 양념장과 볶음 고추장의 간도 적절하고, 둘을 넣은 비율도 적당했어요.


"맛있어요!"

"그래요? 다들 그 얘기하더라고요. 비빔밥 다음에 또 해달라고. 이게 그렇게 맛있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웃의 표정이 흥미로웠어요. 생색을 내거나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거든요.


"김 있어요?"

"김밥 김은 있죠."


이웃의 식당은 김밥도 같이 하는 집이에요. 김을 부숴 넣고 먹으니 더 맛있었어요. 저녁을 차리지 않고, 혼자 식사를 하지만 이웃과 친구 분의 이야기가 곁들여진 시간이 행복해졌어요. 맛있는 비빔밥은 혼자 조용히 먹어도 맛있죠, 물론. 그렇지만, 의무나 강제성이 포함되지 않은 자유로운 대화에 끼었다 빠졌다 하면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거 있죠? 누구와도 편안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걸 워낙에 좋아하는 이웃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처음 보아도 대화하는 데 거북살스럽지 않은 이웃의 친구분 덕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 둘이 참 고맙게 느껴졌어요.


순식간에 비운 밥그릇을 주방에 가져다 놓고 돌아왔어요. 이웃이 어버이날 선물로 아들에게 받았다는 초콜릿을 같이 먹자고 했어요.


"그런 소중한 걸 같이 먹어도 되는 거예요?"

"선물 받으면 내 거니까, 누구랑 나눠 먹든 내 맘이죠 뭐."


맞는 말이에요. 이웃이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초콜릿을 망설임 없이 집어들 수 있었어요. 고동색 상자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얌전히 앉아있는 초콜릿 세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죠. 얼떨결에 주방 앞의 2인석 테이블에서 창가 앞 테이블로 옮겨가 이웃과 친구분, 이렇게 두 분과 나란히 앉아있게 됐어요.


"내가 수국을 좋아하니까, 수국이랑 초콜릿을 같이 선물해 줬어."


친구분이 대답했어요.


"아들이 예쁘네."


마음 예쁜 아드님이 아니었다면, 식사한 뒤 달콤한 서프라이즈도 없었겠죠?


"집에 이렇게 두꺼운 초콜릿 바가 있는데, 먹을 엄두가 안나."


친구분이 손으로 두께를 표시하면서 얘기했어요.


"조금 먹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또 꺼내 먹으면 되지 않아요?"

"그래, 그러면 되는데."


제가 제안하자, 이웃이 맞장구를 쳤죠.


"그렇게 초콜릿이 두꺼운 걸 보면 무섭더라고요. 이렇게 상자에 든 작은 초콜릿은 하나씩 집어먹기가 좋은데. 언니, 다음에 여기 가져와도 돼?"

"그럼, 되지."


두꺼운 초콜릿이 무서울 수 있다니, 신선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다 다르니, 각자 무서운 대상도 다르겠지만 이렇게나 다를 수도 있다니,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요. 친구분이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준 초콜릿은 아주 맛있어 보이는 외국 브랜드의 초콜릿이었어요. 두꺼운 초콜릿을 왜 무서워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집에 갈 시간이었어요.


"다음 주엔 화요일에 그림 그리러 올게요. 또 뵈어요!"

"또 뵙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헤어지는 인사지만, 어쩐지 반가운 느낌이 묻어났어요. 한 손에는 그림 도구가 든 가방, 한 손에는 이웃이 선물로 준 볶음 고추장 - 네, 비빔밥에 비벼 먹은 바로 그 고추장이에요 - 을 들고 푸근해진 맘으로 집에 돌아왔어요. 이웃 덕분에 재밌게 그림을 그리고, 편안히 푸짐한 비빔밥을 저녁으로 먹고, 아드님 덕분에 초콜릿도 먹고, 또 친구분 덕분에 누군가에겐 초콜릿이 무서울 수도 있다는 - 두꺼울 때에만 - 것도 알게 되었네요. 곁에 있어주는 이웃과 이웃의 주변 사람들 덕분에, 외로울 틈 없이 즐겁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어요.


다음 주에 그림 그리러 오면 친구분이 무서워한 그 초콜릿을 볼 수 있을까요? 얼마나 두꺼운지, 궁금해지네요!  



오늘, 어떤 감사함이 여러분들의 하루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나요?

발견하신 감사함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나누어주세요!

감사함이 배로 아름다워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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