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까지 내려왔던 그 많던 매미가 시나브로 사라졌다. 그가 가고 비가 왔다.가을비 한 번에 옷 한 겹이라 하더니 어쩌면 어른들의 말은 절묘하게 계절을 맞춘다. 허투루 들으면 안 되는 연륜의 힘, 가끔은 꼰대 같아도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교과서 같은 말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이 굴절되어 보이는 그 시선에 날 위한 염려와 조언을 잔소리로 치부했던 그때 노래와 영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문득 생각이 든다.
시절의 가을은 시린 마음에 그 공허한 마음을 영상으로 한 신으로 한눈판 나는 영화에 쉽게 빠져버렸다. 최초의 영화가 학교 벽면에 쏘아 올린 빔이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도시로 이사 나온 뒤 영화는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가 극장에서 본 최초의 영화로 기억한다. 아카데미상은 물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를 기억한다. Tomorrow is another day. 내 좌우명은 이것이었다.
어찌나 스칼렛(고구마였지만 압도적 미모와 연기 그리고 까칠하고 예민함으로 오스카상을 단번에 거머쥔 원동력으로 만들었다.)과 레트(신사적인 외모와 연기는 입 냄새로 키스 신이 괴로웠다는 후문은 있었지만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넉넉한 풍채의 유모(귀엽고 독특한 특유의 표정이 압권이다.)가 좋았던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도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 여운을 더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 상영이 시작되었다. 내리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본 것이다.
꾸물꾸물한 가을, 관절염을 도발하는 주말이 왔다. 친구와 '내일을 향해 쏴라' 영화를 관람했다. C 대학 근처에 있는 C 극장이다. 그 유명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울려 퍼지고 있다. 비를 맞으면서 즐겁게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다. B. J. Thomas의 주제가 Rain drops are falling on my head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우리도 주연 배우들과 함께 비를 맞고 있다. 몰입을 과장했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착각도 전이도 아니다. 극장 천정에 문제가 생겼는지 몰라도 그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 딱 맞춰 물방울이 떨어진 것이다. 지금도 그 영화를 생각하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보다 비를 맞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 반사작용 같다.
영화가 끝나고 밝은 세상으로 나왔더니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마데우스 영화에서 보던 모차르트의 장례식날처럼.
다릴 한나와 톰 행크스의 '스플래쉬'를 보고 싶었다. 문제가 생겼다. 다들 보았거나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단다. 보고는 싶고 동행이 없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 거다. 나 혼자라도 가자. 극장엔 사람이 미어터진다. 좁은 골목까지 줄을 섰다. 이 동네의 젊은이는 죄다 이리로 온 듯하다. J 극장은 젊은이의 성지 한가운데 위치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토요일 오후는 장난이 아니다. 길에 밟힌다.
한나와 톰이 만나는 장면이었을 게다. 좀 전부터 집적거리는 옆 좌석의 남자에게 죽방을 날리고 싶다. 자꾸 혼자 왔느냐고 떠본다. '혼자 왔으면 뭐? 너 보러 왔겠니. 영화 보러 왔지! 제발 꺼져 줄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주고 싶었으나 그냥 귀를 닫기로 했다. 무시로 무관심을 표명하면 제풀에 나가떨어져라. 그러나 나는 곧 한나를 아쉬움으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진드기처럼 말로 달라붙는지 영화를 보는 건지 귀를 쑤시러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귀에서 곰팡이꽃이 나올 것만 같다.
이런,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온다. 찰거머리가 따로 없다. 커피를 마시잔다. '나 카페인 면역이 없거든. 좀 떨어져라. 모르는 남자랑 겸상 안 하거든.' 내 영화를 방해하는 자랑 함께 할 마음 개미 눈곱만치도 없단다. 버스는 왜 이리 안 오는 걸까. 벗어나고 싶다. 에라 모르겠다. 택시를 타자.
완연한 가을이다. 모름지기 가을은 분위기 갑인 트렌치가 생각나는 때다. 영화가 잘 어울린다. 이를테면 '조 블랙의 사랑'이 그렇다. 빵 아저씨의 미모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레오의 미모와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 리즈를 볼 수 있다. 스크린에서 여배우와 함께 연기와 미모로 관객의 숨소리를 앗아가는 마약 같은 영화이다. 따뜻한 모카커피와 떨어지는 가을 단풍, 젊음이 영원하지 않음에 더 빛나는 가을에 잘 어우러진다.
서정주 시인의 시구가 떠오르는 가을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가을바람이 분다. 나는 추녀다. 봄처녀가 아니다. 봄은 타지 않고 가을바람의 등을 타는 가을 여자이다. 이 바람은 면역이 없다. 가슴에 물수제비를 뜨는 조약돌이 돋아난다. 떨어지는 빗방울,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 타이어 비명에 몸을 굴리는 낙엽 이 마음을 쥐고 흔든다. 햇살은 눈이 부시다. 그러나 윙크하지 않아도 눈맞춤 할 수 있다.
아깝다. 이 계절이 줄어들고 있다. 올해는 더 짧을 것으로 예상된다. 책 앞에서 눈이 북끄럽지 않게 보내고 싶다. 보이는 자연의 조각들이 자꾸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