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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Oct 06. 2023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필수인가 피싱인가?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보다 이메일, 문자/카톡으로 업무소통을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그래서 전화벨소리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안녕하세요. ㅇㅇ산업안전협회에서 연락드립니다. 안전 관리 담당자님 되시죠? 필수 교육 안내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저희는 노동부 지정으로 교육 진행하고 있습니다. 


협회명은 조금씩 다르고, 내용도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골자는 같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의무교육', '필수'. 대충 이런 단어가 들어있다. 내년도에 개정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우리 회사가 중대재해처벌법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회사 안전관리담당자는 나이기 때문에 일단 긴장하며 전화를 받게 된다. 내가 뭔가 업무상 빠트린건 없을까? 고용노동부에서 전화가 오다니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필수교육을 들어야 한다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런데 가만 보니 가만 보니 이렇게 걸려오는 전화가 한두 통이 아니다. 너무 자주, 너무 다양한 곳에서, 비슷한 이름을 하고, 비슷한 내용으로 전화를 걸어온다. 




처음 연락온 곳은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필수교육을 '무료'로 진행해 주겠다고 했다. 일단 돈을 내어놓으라는 게 아니니 의심을 살짝 거두고 교육을 받아보기로 했었다. 반드시 직원들 전부가 모여야 한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제조업에서 그게 가능하지가 않다. 교육 듣자고 생산라인 다 멈출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우선 절반 이상의 직원만 교육장으로 불렀다. 약속 시간에 강사가 심폐소생 실습용 마네킹을 들고 왔고, 산업안전 관련 교육이 30분 정도 진행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문제는 나머지 20분 동안 '갑자기' 상조 회사 홍보가 진행됐다는 거다. 



당일에 강사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상조회사 홍보가 진행될 줄 모르고 있었다. 강사 말로는 상조회사의 후원으로 교육을 기업들에게 무료로 진행해 주는 건데, 잠깐의 안내만 하고 갈 거라고 했다. 30분간의 교육은 나름 유익했었고, 상조 가입은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분 정도의 시간낭비만 제외하면 큰 손해는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교육을 받은 이후에도 온갖 산업안전 관련 단체에서 '무료교육'을 해주겠다고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는 거다. 우리 회사가 '필수교육'을 이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겁을 줬고, 본인들은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공식 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전화가 왜 걸려오는 걸까? 나는 사무실 전화기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다. 올해 초 회사 안전관리 담당자 연락처에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서 제출했는데, 이 정보가 어디선가 유출이 된 모양이다.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유출한 정부관리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 어디서부터 왜, 연락처 정보가 유출이 되었고, 세상에 수없이 많은 단체들이 나에게 영업을 하게 된 걸까. 이런 식으로 받은 통화만 누적 10통이 훌쩍 넘는다. 


법제도는 자주 바뀌고, 중소기업 경영파트 담당자가 이를 하나하나 모니터링하고 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말하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협회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나?" 하는 마음에 긴장하게 되는데, 이런 기업의 심리를 악용한 협단체가 참 많은 모양이다. 단박에 거절하고 싶다가도 "혹시 진짜 고용노동부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아닌 줄 알면서도 몇 분간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일단 들어보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전화로 영업하지는 않아요.


시도 때도 없이 정부기관명을 내세워 전화를 하는 이 사람들을 내가 믿어도 되는 것인지 진짜 정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이렇게 답을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나 말고도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았다. 고용노동부민원마당에도 유사한 질의가 올라와있었는데, 여기서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노동부에서는 법정의무교육과 관련하여 교육수료를 강요하는 유선안내를 하지 않습니다."



이후로는 영업용 전화가 걸려와도 "이미 교육을 이수 완료했다"라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안전 교육도 하나 신청했다. 내가 직접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내용을 공부해서,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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