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된 후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단 한 번의 만남인데도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 체취, 때론 몸에 달고 있는 장치에서 ‘그때 그 사람’이 떠오른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허락한 사람. 환자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용달차를 보면서 그를 떠올렸다. 차량에는 의료용 산소통 여러 개가 실려 있었다.
2016년 10월,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폐 기능이 떨어져 호흡이 점점 어려워지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COPD는 담배를 피우던 사람에게서 중년 이후부터 서서히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생긴다. 이 병은 고령자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인터뷰해야 하는 환자는 고령이었다.
환자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확보해 놓았다. 호흡이 힘든 환자이기에,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인터뷰 장소는 외래 진료실, 나는 영상취재기자와 오디오맨에게 핵심만 질문하고 끝내겠다고 했다. 이 병이 가볍지 않다는 것, 중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병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 후배들도 이해한 상태였다. 우리는 그를 기다렸다.
‘삐그덕~ 쾅!’
문이 열렸다. 환자다. 그는 노크 없이 문을 발로 ‘쾅’ 차면서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다. 나와 후배들은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그를 바라봤다. 그의 분위기에 압도됐다.
‘이럴 수가!’
환자 출격이다. 내 눈이 커진 건 그의 숨소리와 몸통 크기의 산소통 때문이었다. 코에 산소 연결줄을 착용한 환자가 거친 숨소리를 냈다.
숨소리는 화산 폭발 전 소리 같았다. 용암이 끓어오르며 주변을 집어삼키려는 소리. ‘호흡 곤란이 이런 거구나’ 보여주는 소리였다. 정상인은 숨을 들이쉴 때 기도가 넓어지고 내쉴 때는 좁아지는데, COPD 환자는 좁아지는 정도가 병적으로 심해져 고르게 숨을 쉴 수 없고 숨이 찬다. 이 환자는 중증인 데다 산소통에 의지해 호흡하다 보니, 소리가 억지스러운 음향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가 인터뷰에 응하겠다며 보호자 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휠체어 바퀴를 밀며 미끄러지듯 내 앞에 섰다. 그의 첫마디는 비장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 줄까요?”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너희들 원하는 게 있잖아. 그게 뭐야? 내가 다 말해줄게.’
나는 인사를 생략했다. 이럴 땐 바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인사하면 맥이 끊긴다. 환자 마음이 바뀔 수도 있기에 틈을 주면 안 된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처음에는 기침하고 가래가 나와도 담배를 피워왔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거예요. 이런 증상이 계속 나타나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바로 병원에 오셨나요?”
“두 달 정도 지나서 왔어요. 조금 지나면 기침이 잦아들고 숨이 찬 증상도 괜찮아지고 해서 지켜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어요. 병원에 오게 되더라고요.”
그는 숨이 차는 걸 간신히 참아 가며 말했다. 들숨과 날숨은 경쟁이라도 하듯 쌕쌕거렸다. 들썩이는 어깨는 그만 마치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가 고정했던 바퀴를 풀고 나한테 가까이 다가왔다. 쓱~
나는 당황했다. 우리를 촬영하고 있던 후배는 반사적으로 카메라 각도를 조절했다.
“COPD라는 병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내 나이 칠십이에요. 평생 담배를 피워왔고 나이도 많아서 죽을 수 있대요. 이 산소통 아니면 숨도 안 쉬어져요. 난 당뇨도 없고 고혈압도 없어요. 이 병만 아니면 멀쩡한 거지요. 이 병이 흡연 때문에 생긴다고 하는데, 난 이 병 자체를 몰랐어요.”
그가 격해졌다. 나도 말하고 싶었다. 이름까지 요상한 이 병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환자분 억울하신 거 당연하다고.
그가 운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의 딸과 사전 인터뷰 때 아버지의 감정 기복이 크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름 각오는 했지만, ‘아버지’가 울 때는 난감하다. 고령의 남자가 소리 내 울 때, 그가 많이 아픈 사람일 때는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후회한다. 병원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했던 것인데,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잠시 후회한다. 슬픔에 약하다.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나까지 울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환자가 울면 그의 손을 잡아주면서 티슈를 준다. 노하우가 생겨 잘 대처하지만 진심인 건 맞다. 처음 본 기자가 손을 잡아주면 환자들은 울음을 멈춘다. 정신이 나면서 현실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스킬이다. 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울음을 멈추고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고 죄송한 사람은 환자분이 아니라며 환자분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아냐고 말했다. 환자들은 대부분 처음 마주할 때 쭈뼛쭈뼛하는데 환자분은 당당하게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고. 우리는 카리스마에 압도돼 인사도 못했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 줄까요?”
내가 문을 발로 차면서 그를 흉내 내는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환자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홍보팀 직원도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마구 웃었다. 그의 어깨는 춤을 췄다. 울다 갑자기 웃으면 큰일 날 거 같다고 하는 순간, 주치의가 들어왔다. 주치의 교수님은 환자분 배꼽을 확인하자고 해서 우리는 한 번 더 웃었다.
그는 주치의 방문에 힘을 얻어 인터뷰를 마저 다 해줬다. 그가 몇 번이나 강조했던 말이 있다.
“너무 늦게 발견하면 치료가 안 돼요. 기침을 오래 하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저처럼 병을 방치하지 마세요.”
환자 인터뷰를 마치면 남녀노소 누구든 꼭 안아준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를 안는 순간, 손끝에 산소통이 닿았다. 차디 차다. 그의 생명선, 산소통이다.
그가 진료실 밖으로 나갈 때 휠체어에 매달린 산소통이 보였다. ‘의료용 산소’라는 글자 밑에 ‘충전 기한 2018년 4월’이라고 쓰였다.
아플 땐 마음속에 자신만으로 가득 찬다. 나는 그렇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기에 상처를 다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분야를 처음 취재했을 때는 환자들은 아프니까 예민해서 인터뷰에 잘 응해 주지 않거나 인터뷰하더라도 소극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자 오해였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 적극적이었고 같은 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었다. 자신들의 투병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특히 중증인데도, 심지어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자신처럼 병을 방치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들은 투병을 통해 깨달은 것을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병을 빨리 발견해 자신들처럼 되지 말라고. 이런 이타심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향한 예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 인터뷰는 병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일로 시작했다. 환자와의 만남이 늘어 갈수록 살아야 하는 이유,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 늘었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너무 괴로울 때는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버티는 이유 중 하나가 이들 때문이다. 이들의 눈동자를 잊지 못하기에.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했던 간절한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도.
나는 그들을 배신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의 일부는 2023년 6월 출간한 『3,923일의 생존 기록』(김지수 지음, 도서출판 담다)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63vve4ceP_p1AGOp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