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썅! 월요일 아침부터 단체로 XX이네.’
정부 부처 기자실이 분주하다.
“국장님들과 과장님들 인사드리러 오고 계십니다.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기자실장과 대변인실 직원들이 뛰어다닌다. 한 명의 기자라도 더 고위 공무원들과 인사시키는 게 지금 이들의 시급한 업무. 내가 나가려 하자, 대변인실 직원이 잡는다.
“김 기자님, 어디 가세요?”
“보도국에서 전화 연결을 해달라네요.”
“인사 안 하실 거예요? 잠깐이면 되는데.”
“저분들 제가 다 아는 분들입니다. 안 해도 괜찮아요.”
“김 기자님! 김 기자님!”
난 녹음실로 숨었다. 자리를 피한 건 악수하기 싫어서였다. 그것도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에 떼로 몰려와서 악수하는 건 부담이었다. 악수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차단하고 싶었다. 원래부터 악수를 꺼린 건 아니었지만.
기자가 출입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피하는 건 직무 유기다. 일 중독자였던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피하고 봤다. 몇 달 전 일 때문이었다. 그때도 월요일에 단체로 와서 인사했다. 일은, 그들 중 한 명과 악수할 때 벌어졌다.
“어머! 손이 왜 이래요?”
“…”
“손 다쳤어요?”
“…”
“손이 왜 그러지? 다친 거 맞죠?”
“…”
나와 악수한 국장이 눈치 없게 굴자 기자실장이 그를 다른 기자에게 끌고 가 소개했다. 뒤이어 나와 악수하는 사람들이 내 눈치를 살폈다.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친한 척하며 적극적으로 인사했다.
“국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아, 네.”
…
“과장님, 제가 손을 다쳤어요.”
“아프시겠어요.”
…
당시 내 손은 엉망진창이었다. 일에 집중하지 않을 때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물어뜯었다. 무엇이 날 불안하게 했는지 지금도 모른다. 손톱 주변은 너덜너덜했다. 상처 난 곳이 아물어도 또 물어뜯어 상처가 나고 반복되다 보니 굳은살이 생겨 울퉁불퉁하고 거칠었다.
상처 있는 손을 잡았을 때 놀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눈치 없이 손 상태를 떠들어대면 나로서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신경 쓰였다. 입에 손을 가져다 대지 않으려고 냄새가 나는 연고를 손톱 주변에 발랐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사람들을 만날 때 한동안 엄지손가락과 손바닥에 붕대를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과 똑같은 손을 봤다. 그와 손을 잡았을 때였다. ‘이럴 수가!’
그가 말했다.
“너랑 나, 손이 똑같아.”
“오빠도 뜯어? 미쳐. 정신과 의사가 뜯으면 어떡해?”
“우리도 똑같아. 불안해. 그렇다고 모든 의사가 다 뜯는 건 아니지만. 나는 심하지. 근데 너도 심해.”
“뭐가 그렇게 불안해?”
“모르겠어. 넌?”
“나도 몰라. 환장해.”
그는 나한테 살색 테이프를 주면서 붙이라고 했다. 감쪽같았다. 하지만 이걸 떼면 손톱 주변이 더 지저분해졌다.
어떤 이들은 날 부러워했다. 불안으로 인해 업무를 방해받거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지 않냐며 손톱 주변만 물어뜯는 게 어디냐고 했다. 자신들은 불안으로 인해 회사에 다닐 수 없고 가족과 사이도 멀어졌다고.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고비가 꽤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힘들게 일군 삶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만들고 지켜온 건데 감정 하나로 무너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 일이 있어도 해야 할 일들, 내가 속한 조직과의 약속을 지켰다. 삶의 질서, 특히 내면의 질서가 무너지면 삶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심해질 땐, 이 일을 잘 마치고 물어뜯자고 내면의 나를 달랬다.
그럼에도 상처 난 손은 신경이 쓰였다. 연고, 테이프, 매니큐어, 붕대를 이용해 상처가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하다가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냈다. 그 무렵, 또 하나의 손을 봤다.
안국역 입구에는 군밤을 파는 노점이 있다. ‘개동생’ 간식을 위해 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아저씨 손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의 손은 정직했다. 삶에 충실한 그를 대변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튀어나왔고 일부는 꽈배기 같았던 손.
칼집 넣어진 군밤들이 타는 소리. 타닥타닥타닥. 군밤들이 뒹구는 철망 밑에는 숯불이 타고 있다. 다 된 것 같다. 아저씨는 맨손으로 군밤들을 집는다. 달궈진 철망에 손이 델 것만 같다. 아저씨는 피아노를 치듯, 양손으로 밝고 경쾌하게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것 같다.
아저씨의 손놀림을 신기하듯 보다가도 숯 찌꺼기와 재가 박힌 손톱, 굳은살, 곳곳의 상처로 시선이 쏠린다. 손등은 거북이 같다. 먼지와 재, 차가운 바람, 오랜 시간이 만든 거북이 두 마리. 딱딱하고 문양처럼 갈라진 거북이 등 같은 손등.
“아가씨, 다 됐어.”
그가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불렀다.
“아이고! 군밤 봉투를 잡아야지. 내 손을 잡네.”
“아. 죄송합니다.”
손에 집중한 나머지 아저씨 손을 잡았다. 얼른 군밤 봉투를 챙기며 물었다.
“사장님, 왜 장갑 안 끼세요? 뜨겁잖아요.”
“이걸 매일 했다고 생각해 봐. 뜨겁지도 않아.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다치실까 봐요.”
“고맙네. 언제부턴가 괜찮아.”
아저씨 손은 나무토막 같았다. 살아온 세월이 그려졌다. 이 손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했을 것이다. 가끔 볼 수 있는 아주머니도 떠올랐다. 이들에게도 청춘이 있었을 것이다.
군밤 아저씨의 손을 들여다보고 덥석 잡기까지 한 날, 불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감이 잡혔다.
그날 군밤 한 봉지를 들고 있는 상처 난 내 손을 봤다. 난 누군가를 위해 퇴근길 군밤을 사다 주는 사람. 군것질을 일절 하지 않는 나로서는 퇴근길에 들러 기다렸다 사는 게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지만 사랑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
아저씨의 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숯불로 달궈진 철망에서 군밤들을 맨손으로 집는 아저씨. 처음에는 뜨거웠을 것이고 덴 적도 있을 것이다. 요령이 생겼을 것이고, 데어도 예전처럼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상처 난 손도 그렇지 않을까. 불안의 정체가 뭔지 모른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했다.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나도 아저씨처럼 괜찮아질 것 같았다. 불안을 대하는 요령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나도 아저씨처럼 상처를 보는 시선 앞에 당당해지기로 했다.
손을 보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때론 그 사람의 과거가 보인다. 매끈한 손이라고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단정하는 게 아니다. 고운 손에도 인고의 세월, 고통이 있다. 손에 있는 어떤 흔적은 말을 할 때가 있다. 그게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수도.
불안은 일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른다. 나중에 또 나타난다고 해도 괜찮다. 삶의 한 부분일 뿐이고 난 이런 걸 다루는데 아주 노련해졌으니.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건 감정에 굴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 감정은 삶의 일부일 뿐이다. 삶의 일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로 인해 삶의 질서가 망가져선 안 된다. 일부는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건 감정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 자신을 해치는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망치도록 허락하면 안 된다.
회복한 나의 손이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어떤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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