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싸이퍼
안녕, 나야.
8월을 정리하며 나에게 편지를 써.
기안 84의 <민들레>라는 곡을 듣고 있어.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한 기안 84가 태어난 김에 떠난 이야기,
예상 못한 꽃들을 만나며 느낀 이야기를 담은 곡이더라.
가사는 따라 부르기 쉽고, 기안 84의 음색은 기교 없이 순수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까 윤상의 <한걸음 더>와 조규찬의 <무지개>가 떠올랐어.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은 것은 아냐."(윤상의 한걸음 더 노랫말 중에서)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조규찬의 무지개 노랫말 중에서)
나는 낭만의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해.
19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했지.
중고교 시절 들었던 가요는 '사랑'이 주요 테마였어.
015B의 <5월 12일>만 해도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가 되어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그녀를 처음 만난 날입니다.'라는 스토리가 있거든.
"지금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도 가슴 한편에 묻어둬야 해."(015B 5월 12일 노랫말 중에서)
정석원, 장호일 형제는 서울대 출신으로 엘리트 이미지였고, 윤종신, 이장우 등의 객원가수들이 나왔어.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을 때도 나는 여전히 015B 음악을 좋아했고. 물론 덕후기질은 없어서 그저 테이프 사서 듣는 정도였지.
신승훈의 <소녀에게(hey girl)>는 멜로디와 음색이 모두 신비롭게 다가왔고, 사랑 감정이 잘 표현된 곡이었지.
"한 번만이라도 나를 위해서 말해줄 수 없나 그대여 아주 흔한 말 사랑한다고."(신승훈의 소녀에게 노랫말 중에서)
이승환의 <천일동안>도 노랫말을 봐.
"보고 싶겠죠. 천일이 훨씬 지난 후에라도 역시 그럴 테죠. 난 괜찮아요.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줬잖아요."(이승환의 천일동안 노랫말 중에서)
이런 애절한 사랑 가사가 있는 시대를 살았어. 지금은 사랑 따윈 사치가 된 시대 같아. 남녀를 떠나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고,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지. 여전히 가부장적인 결혼 문화도 존재하고, 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빈부격차도 너무 심하고,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며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지.
나의 꿈은 뭐였지?
기안 84의 초등학교시절 장래희망은 가수였대. 그 꿈을 품고 웹툰도 그리고 방송도 했는데 지난 행적들을 보니까 노래와 춤을 향한 진지한 마음들이 있더라. 그걸 사람들은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태세계 피디님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움을 주었어. 물론 물가에 데려다주는 역할만 한 셈이고 고기는 기안 84가 잡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 초등학생 때 가족 관련 책을 읽고 외부에서 주는 독후감상을 받은 적이 있어. 교내에서 주는 상은 빼놓지 않고 받았지만 외부상까지 받아오니까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기억이 나. 물론 지금으로서는 아무 소용도 없지 뭐.
대학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는 현모양처가 꿈이었고, 결혼해서는 내 집 마련이 꿈이었지.
지금도 꿈은 있는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돼. 하우스푸어의 상황이라서 적게 벌더라도 알뜰하게 쓰면서 건강하게 나를 책임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직장인이 되거나 돈을 많이 벌 자신은 없었지만 적게 쓸 자신은 있었어. 아이들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 투자도 잘 되어야 하는데 예전 같지는 않고.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소액이라도 벌자가 되었어. 지금은 잃지 않는 투자 모드야. 유연한 투자자로 거듭나고 있지.
이번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보니까 힙합의 세계가 신나더라.
힙합은 한풀이인가?
나도 싸이퍼 해봤어.
시작해 볼게.
오십이 코 앞. 세금 내는 내 집만 있는 여자. 혼자 사는 세상이 가능해. 어울리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어울려. 받기도 싫어. 주기도 싫어. 어디든 얽매이기 싫어. 내 맘대로 내 멋대로 산다. 아자자자자. 적게 벌고 적게 써도 내 힘으로 이룬 길을 간다. 아자자자자.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아자자자자.
그거 아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작 이미 알던 사람들에게 도움받는 일은 거의 없다는 거. 그들은 나의 변화를 원하지 않아. 결국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거나 전혀 몰랐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연대를 느끼는 것이 세상인 것 같아. 오늘은 이만 안녕. 편지를 마친다.
글·사진 ⓒ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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