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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ul 27. 2022

얼버무리기

과연 누구를 위한 태도일까?


사진을 보며 장미를 스케치하고 있는데 화실 선생님이 쓰윽 훑어보더니,

“여기는 잘 안 보인다고 얼버무리신 건가요?”

“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리고 있었는데 ‘얼버무린다’는 말이 뼈를 때리는 것처럼 몹시 아팠다. 얼버무린다는 말은 ‘얼렁뚱땅’으로 들렸고 그건 내가 ‘어설프다’는 말로 들렸다. 잘 안 보이는 영역은 그렇게 보이는 대로 대충 그리면 되는 거 아닌가? 뭐가 잘못된 거지?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려야 해요?”
“잘 안 보인다고 뭉개지 말고 꽃잎이 겹쳐 엉킨 모습을 추측하며 그려야 해요.”


4B 연필을 내려놓고 숨을 고른 후 복잡하게 꽃잎으로 얽힌 장미의 가운데 부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앗! 보인다! 어느 꽃잎이 앞쪽이고 뒤쪽인지, 어느 방향으로 휘어졌는지 보인다. 아까는 분명 안 보였는데 말이다. 단지 자세히 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가만히 집중하니, 돌연히 눈앞에 나타났다.


시력이 갑자기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보지 못했던 순간을 비유하자면 고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 보듯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말이지 그림은 딱 보이는 만큼 그릴 수 있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초보라서 얼버무리는 일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그러나 얼버무리는 상황을 알았을 때 초보자인 나는 힘들고 귀찮아서 포기하려 했고, 숙련자인 화실 선생님은 오히려 집중해서 관찰하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 순간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듯 했다.

’아, 그저 열심히 그리기만 해서는 절대 그림 실력이 늘지 않겠구나.’

그러나 동시에 거부하려는 마음도 함께 올라오는 것을 감지했다.

‘아, 귀찮다. 뭘 또 애쓰며 봐야 하나?’


그림에 대한 양가감정은
 ‘배우는 태도’를 점검하게 했다.

4B연필이 뭉툭해져 스케치 선이 뭉개지고 있지만 고작 손을 뻗어 연필 깎는 일이 귀찮아 참으며 그리기, 물통이 더러워져도 다시 물 떠오는 일이 귀찮아 그냥 구정물에 붓 씻기, 물감 조색 상태를 확인하고 붓칠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칠하다 엉뚱한 색으로 망치기, 종이 상태를 확인하며 붓칠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칠하다 엉뚱한 영역에 물감이 번져 망치기 등등….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습관들이 뭉게뭉게 그림 영역을 넘어서 삶 속에서도 피어올랐다.

벼락치기 공부, 택배 스티커 안 떼고 버리기, 텀블러 귀찮아서 일회용 컵에 커피 담기, 음식 쓰레기 미루다 버리기, 소파에서 누워 과자 먹기, 밥 먹고 설거지 패싱하기, 자정이 넘도록 SNS 보기, 외출 준비 미루다 약속 시간 늦기 등등….


그림에 대한 나의 태도는
결국 삶의 태도와 다르지 않구나.


모르면 고칠 수 없지만 알면 고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지금 힘들더라도 고치고 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남은 평생 계속 살던 대로 괴롭게 살 것인가?




* 핀터레스트 사진을 참고하여, 내 수준에서 최대한 관찰하며 투톤색 장미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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