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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식하는 나

아직도 가야 할 길 - M.스캇 팩-

by 지음

사람들이 의식하는 자기 모습은 다소 실제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믿음보다 좀 낫거나 못하다.

그러나 무의식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영적인 발달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주된 과제는

자기가 의식하는 자기 모습을 실제의 그것과 일치시켜 가는 일이다.

이 평생의 과업이 심리 치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비교적 빨리 성취되어 갈 때

사람들은 종종 ‘새로 태어난’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기대나 욕구가 너무 큰 과거가 있었다. 그래서 아마 방황했는지 모른다. 무의식에서는 내 욕구와 기대가 아주 높은 사람이었고, 그것을 현실에 나를 보면 하나도 이루지 못한 나와의 괴리가 심했다. 지금 그것을 맞춰가는 중인 것 같다.

그 괴리를 줄이는 방법은 실천적 행동이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중 모르던 나를 알아가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고 그것을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해 보는 것. 아마 이것이 나를 새로 태어난 느낌을 받게 한 이등공신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을 실천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코칭인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기대만 품고 절망만 하던 나에게 코칭은 실천을 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었던 것 같다.



집단무의식이란

우리가 개별적으로 경험하지 않고도 선조가 경험한 지혜를 물려받음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런 종유의 지식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기괴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우리 일상 언어 중에는 집단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들이 많다.

(중략)

‘인정하다’라는 말은 ‘다시 안다’라는 뜻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때로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 내부에 이미 모든 지식과 지혜가 갖춰져 있는데 그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해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상기설과 무엇이 다른 걸까?

뭔가가 다르니 집단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썼겠지.

'인정하다'는 말이 '다시 안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들이 하는 말들 속에 열쇠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을 때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 말속에는 그 생각의 의미를 '아직 나는 찾을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해 본다. '인정할 수 없다'는 말에 발끈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도 아마 나와 그 말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그 말이 나라고 생각했기에 분노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새날'을 맞이한다.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은 우리의 지혜가 유전된 것임을 시사한다

기억 현상에 관련된 유전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과학 실험에서 밝혀진 바로는

유전자는 지식을 유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중요한 대목은 아니다. 하지만 흥미로워서 눈여겨본다.

어쩌면 지식, 지혜로움에서 엄마의 경험이 축적되어 유전된다면 나중에 태어나는 자식이 그런 부분에서는 유리한 것 아닐까? 건강을 생각해서 노산일 때 힘들다고 하는 것이지 아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늦게 태어난 자식이나 마지막에 태어난 자식이 제일 똑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엉뚱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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