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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느 바닥을 걷고 있나?

by 지음


독서를 하면 내 삶이 방황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내 삶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방향 없는 막연함과

약간의 절박함이 나를 책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새벽독서를 시작한 지점.

내가 딛는 바닥을 싹 교체하는 작업의 시작점이었다.

서서히 였다.

무디디 무딘 나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 진행되는 일이었다.


바닥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지금은 막연함이 구체적인 확실함 앞에

절박함이 주는 초조함으로 3년의 기한으로 나를 가두기로 했다.


제대로 책을 읽고 글을 써보기로 한다.

평소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선택을 한 것이다.

평소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 길을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완전 눈을 새롭게 뜨고 쳐다보는 새로운 바닥이었다.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읽었던 적이 없는 나는 1년을 처절하게 버텼던 것 같다.

책을 조금씩이라도 읽었던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안 되는 부분을 되게 하려고 애쓰고 힘들게 한고비씩 넘겼다.

아마 그 때는 어쩔 수없이 그렇게 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몸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죽을 만큼 정신은 점점 더 절실해졌던 것 같다.

이렇게 모르고 살았구나. 너무 몰라서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내 행동을 자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 쓸데없이 짜증을 내는구나. 아이들에게 화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는구나.

자제하지 못하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것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에 고쳐지지 않았다.


알지만 고쳐지지 않은 고통.

알면서 그 순간 편하자고 관성대로 해버리고 따라오는 후회와 미련들.

다시 모르던 때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그 생각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바보 같았는데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어떻게 들었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내 아이들은?

그대로 나를 보고 배운다.

더욱 고쳐야 했다.


‘그래, 짜증을 냈더라도 자각했으니 됐어.’

‘그래, 화를 안내는 주기가 길어졌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잖아.’

‘아이들이 바르게 커줘서 고맙다.’

그렇게 나는 내 바닥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관성을 털어내고 바른 방향으로 가는 습관을 만드는 중이다.

모든 사물의 본성은 성장으로 간다.

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의 관성을 거스를수록 성장해 나갈 것임이 틀림없다.

어쩔 수 없다. 바닥을 만들어야 올라간다.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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